수목원에서 만난 연꽃, 여름에 ‘싱그러움’을 더하다
[서울&]
심청전 등서 볼 수 있는 친근한 식물인
‘연꽃의 비밀’ 설명해 주는 프로그램
14~16일 열리는 ‘수목원 축제’와 연계해
16일까지 개인·가족 신청받아 운영
창포·노랑어리연 등 갖가지 여름꽃도
향기 맡고 만져보며 ‘해설에 고개 끄덕’
연잎차 먹고 만들기 체험으로 마무리
“작은 것에 아름다움 느끼는 감동 선사
“와, 시원하다~!”
햇볕이 쨍하게 내리쬐는 오후, 버드나무 그늘로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담당 해설가가 “나무가 있어서 우리가 더운 날에도 시원하게 쉴 수 있는 거예요”라고 말하자, 아이들은 “나무가 고마워요”라며 해사한 웃음을 지었다.
7일 오후 3시, 구로구 항동에 있는 푸른수목원 잔디마당에 아이 여섯을 포함해 열댓 명이 모였다. 서울시가 기획한 체험 프로그램 ‘여름꽃을 만난 하루’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이 행사는 연꽃의 숨은 비밀과 특징을 설명해주는 생태해설 프로그램으로, 14~16일 푸른수목원에서 열리는 ‘2023 사계 축제 꽃 기억해 여름’과 연계해 꾸려졌다. 지난 4일 시작된 행사는 16일까지 총 12회 진행되며, 행사일마다 오전 10시(성인 대상)와 오후 3시(가족 대상)에 한 번씩 하루 두 번 운영된다. 참가 인원은 시간별 15명씩, 참가 신청은 서울시 공공예약서비스 누리집에서 가능하다. 참가비는 무료다.
“머리, 어깨, 무릎, 엉덩이, 배꼽, 만세!” 잔디마당에 있는 커다란 버드나무 앞. 푸른수목원 소속 김윤주 해설가가 아이들에게 차례대로 하이파이브를 건네는 것으로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김 해설가가 아이들에게 “수목원 와서 본 것 있어요?”라고 묻자 곧바로 “장수풍뎅이!” “오리!” “거북이!”라는 각양각색의 대답이 들려왔다. “연못에 피는 꽃은 뭐가 있을까?”라는 질문에 아이들이 금방 “연꽃!”이라고 답하자 김 해설가는 손뼉을 치며 “맞아요. 오늘 선생님이랑 연꽃보러 갈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꽃은 우리 역사와 함께해왔기 때문에 굉장히 친숙한 꽃”이라며 “심청전에도 나오고, 장화홍련전에도 나오고, 고구려 벽화에도 나온다. 절에 가면 기와에도 문양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 해설가가 잔디마당 근처 화분에 식재된 하얀 연 앞으로 참가자들을 이끌었다. 그는 “이건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일반 연”이라며 꽃을 기울여 아이들 한 명 한 명 향기를 맡게 해줬다. 이어 “연잎은 미세한 돌기가 빽빽하게 나 있어서 물이 떨어지면 흡수되지 않고 또르르 굴러간다”며 연잎에 생수를 붓고, 동그랗게 고인 물방울을 아이들 손바닥에 한 번씩 흘려줬다. 아이들 사이에서 “우와!” “나도 나도!” 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새어 나왔다. 아이들은 사뭇 긴장한 표정으로 연 줄기에 난 가시를 손으로 만져보기도 하고, 주변 야외수조에 있는 열대 수련을 이리저리 관찰하기도 하며 프로그램에 빠져드는 모습이었다.
다양한 수생식물을 볼 수 있는 항동저수지에 들어서기 전 김 해설가가 미리 잘라둔 수련 줄기를 꺼내 참가자들에게 내밀었다. 김 해설가는 줄기 내부의 구멍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공기가 통하는 통로다. 물에 있는 식물은 썩으면 안 되기 때문에 이렇게 공기구멍이 다 크다”고 설명했다. “구멍이 네 개야!” 하며 신기해하던 아이들은 김 해설가의 지도 아래 줄기를 직접 잘라도 보고 줄기에 입으로 바람을 불어 넣기도 했다. 그러던 중 한 아이가 “엄마 침 나왔어요!”라고 외치자 현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저수지 산책로를 거닐면서는 수목원에 있는 각종 수련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김 해설가는 직접 프린트한 꽃 사진을 참가자들에게 하나하나 보여주며 해설에 열을 올렸다. 가장자리가 하늘을 향해 직각으로 구부러진 채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잎들이 눈길을 끌었다. 야간에만 개화하는 열대 수련인 빅토리아수련의 것이라고 했다. 김 해설가는 “낮에는 꽃봉오리가 물에 가라앉아 있어 지금은 볼 수 없다”며 “꽃이 피는 밤에도 한번 방문해보시라”고 추천했다.
저수지를 빠져나와 시작점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김 해설가는 여러 수생식물을 소개해줬다. 특히 노랑어리연을 보여주면서는 “얘는 ‘물속 청소부’라는 별명이 있다. 수질을 개선해주는 엄청 고마운 식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는 동안 몇몇 아이가 식물 씨앗을 주워 와 “이건 뭐예요?” 하며 호기심을 드러냈다. 아이들의 질문에 김 해설가는 하던 말을 멈추고 “그건 창포인데, 창포는 물을 깨끗하게 정화해줘요”라며 친절하게 답해주곤 했다. 아이들은 돌아오는 내내 샘플 식물을 손에 꼭 쥐고 김 해설가 뒤를 따랐다.
수목원 내 북카페로 자리를 옮긴 참가자들은 수목원 쪽에서 준비한 연잎차를 시음하며 더위를 식혔다. 곧이어 프로그램의 마지막 순서로 연꽃을 주제로 한 공예품 만들기 체험이 진행됐다. 아이들은 부채 만들기, 어른들은 연꽃 모양 종이접기를 할 수 있도록 재료가 미리 준비돼 있었다. 이날 프로그램에 참여한 네 가족은 다 함께 둘러앉아 만들기 체험에 열중하는 모습이었다. 두 자녀와 함께 방문한 최아무개(39)씨는 “수목원 인스타그램을 보니 행사한다고 적혀 있어 신청하게 됐다”며 “땡볕인 시간대라 아이들이 너무 빨리 지쳐버린 점은 아쉬웠지만, 지금 계절에 맞게 연꽃과 관련한 주제로 만들기 체험하는 시간이 아이들에게도 저에게도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투명한 부채에 연꽃 그림을 열심히 그려넣던 강수연(8)양은 무엇이 제일 기억에 남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한참을 고민하다 “꽃 냄새 맡는 거요”라고 답했다. 동생 강수민(6)양은 “분홍색 꽃, 우리 같은 꽃 보는 거!”라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옆에 있던 자매의 어머니 김효은(42)씨는 “꽃에 대해 듣고 싶어서 신청했다”며 “저도 몰랐던 사실들이었다. 제가 아이들에게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을 선생님께서 다 설명해주시고, 쉽게 볼 수 없는 꽃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냄새도 직접 맡아볼 기회가 돼서 좋았다”고 호평했다. 백승우(6)군의 어머니 조신형(38)씨도 “책에서는 연꽃만 볼 수 있는데, 여기서는 씨앗도 볼 수 있어서 아이들한테 설명해주기 좋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만들기 체험이 끝나자 김 해설가는 조동화 시인의 시 ‘나 하나 꽃 피어’가 적힌 유인물을 참가자들에게 한 장씩 나눠줬다. 프로그램은 김 해설가가 “한 사람, 한 사람이 변화하면 공동체가 변화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면서 종료됐다. 뒷정리가 끝나고 만난 김 해설가는 “더운 데 있다가 시원한 나무 그늘로 가면 나무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추운 데 있다가 따뜻한 햇볕 쪽으로 가면 햇빛의 소중함을 알게 되지 않느냐”며 “이런 힐링 프로그램을 통해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작은 것에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감동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시 최초의 시립 수목원인 푸른수목원은 2013년 개원한 뒤 2018년 서울시 1호 공립 수목원으로 지정됐다. 개원한 지 10년이 됐지만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편이라고 한다. 행사를 기획한 서울식물원 푸른수목원운영과 박민지 주무관은 “연령대별로 대상을 나눠서 (해설을) 진행하다보니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며 “식물과 같이하는 프로그램에는 다들 좋은 마음으로 오셔서, 기분 좋게 가시는 것 같다. 가을이 되면 또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 예정이다. 계절마다 프로그램이 달라지는 만큼 푸른수목원에도 많은 관심 가져주시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글·사진 이화랑 객원기자 hwarang_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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