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듣지 않았던 이야기의 기록 [사람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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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메일을 받았다.
프로젝트 기획과 운영을 맡은 이상민씨(27)는 "참사 이후 주민들이 서로 묻지 않고 듣지 않았을 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동안 정치와 행정, 상권은 조명됐지만 이 공간의 한 축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았다. 그걸 입체적으로 비추고 기록하는 건 주민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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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메일을 받았다. 정중하고 조심스러운 인터뷰 요청이었다. 이태원 참사 당일 현장에서 했던 일을 되짚어 쓴 기사를 보고 연락했다고 했다. 써놓고도 다시 보지 않던 기사였다. 보도 직후 여러 곳에서 인터뷰 요청을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계속해서 되짚고 떠올리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참사 8개월이 지나 인터뷰 요청 메일을 다시 받고는 한구석에 밀어 넣어둔 기억이 밀려왔다. 정중하고 조심스럽게 답장을 쓴 건 며칠 뒤다. 인터뷰를 할 수 없다고 했다. 대신 당신과 또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부탁했다. 마을미디어 〈용산FM〉이 추진하는 프로젝트 ‘이태원 기록단’을 그렇게 마주했다.
마을미디어는 지역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운영하는 미디어다. 라디오와 신문, 잡지 등을 매개로 언론은 다루지 않지만 주민에게는 꼭 필요한 이야기를 전한다. 2012년 서울시 시범사업으로 시작해 2013년 정식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사업 초창기 5곳이었던 마을미디어는 11년이 지나는 동안 70여 곳으로 늘어 서울시 곳곳에 자리 잡았다.
〈용산FM〉은 용산구를 기반으로 운영하는 마을미디어다. 2012년 마을미디어 문화 교실로 시작해 라디오 방송국으로 확장했다. 주민들이 DJ가 되는 방송이 주요 콘텐츠다. 그동안 70대 어르신부터 10대 청소년, 동네 토박이와 이주민들이 마이크 앞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다. 동시에 실시된 선거만 7개라 투표용지만 총 7장이었던 2022년 6월 지방선거에선 용산 지역 기초단체장·의원 후보자들을 방송국으로 초청해 공약과 구상을 듣고 검증하기도 했다. 언론이 물리적으로 조명하지 못한 곳을 비춘 지역 기반 선거 보도였다. 황혜원 〈용산FM〉 대표(57)는 “주민들을 제대로 만나고, 연결해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창구가 되고자 했다”라고 말했다.
〈용산FM〉은 올해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서울시가 지난 3월 마을미디어 사업을 종료했다. 시는 그동안 지원이 충분히 이뤄졌다는 입장이지만, 전임 시장 시절 사업 흔적 지우기의 일환이라는 뒷말이 나오면서 논란이 됐다. 그사이 〈용산FM〉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태원 기록단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4·16재단의 ‘시민 안전정책제안활동 지원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시작됐다. 기록단에는 다큐멘터리 감독, 사진가, 미디어 종사자, 사회활동가 등 다양한 업계 종사자들이 모였다. 대부분 이 지역 주민이다.
용산, 특히 이태원에는 매일 참사 현장을 지나는 주민들부터 참사와 직간접으로 연결된 사람들이 살고, 또 일하고 있다. 프로젝트 기획과 운영을 맡은 이상민씨(27)는 “참사 이후 주민들이 서로 묻지 않고 듣지 않았을 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동안 정치와 행정, 상권은 조명됐지만 이 공간의 한 축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았다. 그걸 입체적으로 비추고 기록하는 건 주민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기록단에 참여한 노호태씨(30)도 “참사 이후 이태원이라는 공간에 대해 이야기할 장이 없었다. 그 장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덧붙였다.
이태원 기록단은 주민들과 참사 희생자 가족, 생존자, 목격자, 기관 및 참사와 관련한 여러 분야 관계자들을 인터뷰하고 있다. 인터뷰는 시리즈로 순차 공개되고 추후 종합편이 제작될 수도 있다. 이르면 7월 중순, 늦어도 8월 초 공개된다.
문상현 기자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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