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기로에 선 방송미디어 산업, 규제혁신이 답이다

2023. 7. 13.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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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엽 고려대 교수

정부 발표에 따르면 케이블, IPTV, 위성방송 등 유료방송 플랫폼 가입자는 2022년 상반기 3601만명 대비 하반기 3625만명으로 0.67% 상승했는 데, 가입자 증가율이 1% 미만으로 떨어진 것은 역대 처음이다. 2016년 인터넷광고 시장규모가 방송광고 시장규모를 넘어선 이후 가입자 시장까지 정체국면에 돌입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넷플릭스·유튜브 등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국내 시장 잠식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국내 OTT인 웨이브·티빙·왓챠는 글로벌 OTT 경쟁 구도에서 완전히 밀려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해 웨이브 1200억원, 티빙 1191억원, 왓챠 555억원 적자를 기록하며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다.

글로벌 OTT는 가입자 및 콘텐츠 유통 시장 뿐만 아니라 막대한 자금력으로 우리나라 콘텐츠 제작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넷플릭스의 국내 콘텐츠 투자는 국내 영상 콘텐츠 제작 시장에 활력이 되고 있지만, 국내 콘텐츠 제작비 상승으로 인한 미디어 플랫폼의 경쟁력 약화, 국내 콘텐츠 제작 산업의 글로벌 OTT의 하청기지 전락이라는 우려도 낳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서 방송은 공공성, 사회·문화적 영향력, 여론형성기능 등을 가졌다는 이유로 보도기능이 있는지, 공영인지 민영인지에 대한 구분없이 모든 방송사업자에게 엄격한 공적 책임을 요구해 왔다.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하는 것이 합리적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것을 동일하게 취급하는 우를 범해 왔던 것이다. 또한 OTT 등 융합 미디어는 상대적으로 규제가 거의없이 세계를 상대로 글로벌 경쟁을 하고 있지만, 국내 방송사업자는 엄격한 규제를 받음으로써 역차별 문제는 물론 국내 방송미디어 산업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 '미디어 특성에 따른 형평적 규제',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합리적 규제'가 방송미디어 규제혁신의 방향이다. 규제유형별로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진입규제다. 진입규제는 사업의 인가, 허가, 특허 등 시장에 참여할 자를 정부가 선별하는 규제로 그 절차는 허가, 승인, 등록, 신고 등 최초 진입규제 방식을 결정하고 사업자의 신청을 받아 허가 등을 하면서 이에 부수해 일정한 조건을 부과하는 절차로 진행된다. 허가 발급 이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재허가를 통해 사업의 계속 여부가 결정된다.

현행 진입규제는 일반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는 등록이며, 홈쇼핑, 보도, 종편 PP는 승인이다. 케이블TV, 위성방송, IPTV 등 유료방송 플랫폼은 허가다. 케이블, IPTV 등 플랫폼의 경우, 학문적(강학상)으로 특허로 분류되는 강한 진입규제인 허가로 신규진입이 허용되나, 지상파 등과 같이 국가자원인 주파수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이제 OTT 등장으로 사회적 영향력이 중차대하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특허제도를 유지할 근거가 없다. 일정한 물적 설비 및 자본금 등 법적 요건을 구비하는 경우 진입을 허용하는 등록제로 전환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PP도 실시간 TV의 경우는 등록제를 유지하되, 그 밖의 라디오, 데이터, VOD PP는 등록제에서 신고제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음 재허가, 재승인의 취지는 행정기관이 허가사업에 대한 정기 점검을 시행해 허가사업운영의 적법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주파수라는 국가 소유 자산에 대해서는 소유권 이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정한 이용 기간의 설정이 불가피하므로 주파수 재할당이 필수적이나, 재허가, 재승인 제도는 정기적으로 방송사업을 감시, 감독하는 권한을 규제기관에 부여하는 것일 뿐 법적, 정책적 타당성이 부족하다. 적법성 감독은 이미 법 위반행위에 대한 허가취소, 업무정지 명령 등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 제도를 유지할 근거를 찾기 어렵다.

다음 진입규제에 수반하는 조건에 관한 것이다. 흔히 정부는 허가 등을 하면서 투자, 공정경쟁, 이용자 보호 의무 등을 부과하는 조건을 붙인다. 이때 조건은 행정기본법상 해당 처분의 목적에 위배되지 아니할 것, 해당 처분과 실질적인 관련이 있을 것, 해당 처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일 것이라는 한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현행 조건은 이러한 법원칙과는 부합되지 않는다. 허가취소 등을 볼모로 당해 허가 등과는 관련이 없는 부당한 내용의 조건을 부과하는 관행을 중단해야 한다.

둘째, 소유규제에 관한 것이다. 소유규제의 목적은 소유권의 분산을 통해 여론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한편 국내 방송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과도한 소유규제는 자본의 유입을 통한 방송산업의 성장을 저해한다. 이제 매체 환경이 다원화되고 있고 여론 영향력이 약해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소유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2009년 방송법을 개정해 여론독과점을 막기 위해 매체합산 시청점유율 규제를 도입했기 때문에 그 외 다른 소유규제를 계속 유지할 실익이 없어졌다. 대표적으로 케이블, 위성, IPTV 등 전체 유료방송가입자 1/3 초과 금지 규제와 일반 PP의 특정 PP의 전체 PP 매출(홈쇼핑 제외) 중 점유율 49% 이하라는 규제는 폐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음 외국인 소유제한을 보면 종편이나 보도전문 PP, IPTV, 케이블에 대해서 각각 20%, 10%, 49%, 49% 외국인 지분 소유가 허용되어 있고 지상파는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지상파 방송사의 위상 약화, 한류 콘텐츠의 글로벌 생산·유통을 위한 글로벌 콘텐츠 기업과의 합작이나 협업 가능성을 고려하면 지상파의 경우에도 외국인 소유제한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다른 유료방송의 경우에도 현행보다는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 한편 대기업의 지상파방송 10% 소유제한 규제는 민영방송 기준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는 없는 제도로서 타당성에 의문이 있다. 지상파 매체 영향력과 형평성 등을 고려해 상향할 필요가 있다.

셋째, 채널구성 및 편성규제다. 유료방송 플랫폼은 특정 분야 편중금지, 다양성 확보, 특수관계자에 대한 채널임대 제한, 공공·공익채널 의무편성 등 다양한 채널규제가 적용되고 있다. 예컨대 유료방송의 경우 의무편성 채널이 15개에 이르고 있다. 케이블TV는 지역채널 1개 이상 송출의무가 있으나, IPTV는 사업자가 직접 운용하고 사용하는 직접사용채널이 금지되고 있다. 방송편성에서도 방송사업자는 다양성과 국내 콘텐츠 시장 보호를 위해 규제를 받고 있다. 특히, 일반 PP에 대해서는 주된 방송분야 편성비율을 70% 이상으로 정하고 있고, 방송사업자에 대해서는 국내제작 프로그램을 40% 이상 방송하도록 정하고 있다.

채널규제의 개선 방향으로는 방송의 다양성·지역성 등 채널 구성 원칙을 법률에서 제시하면, 사업자가 그 준수방법과 기준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하되, 정부는 사업자가 정한 기준이 현저하게 원칙과 불일치하는 경우 개선을 권고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일종의 원칙기반(principle-based) 규제방식을 도입하는 것이다. 편성규제의 경우에는 모든 PP를 대상으로 할 것이 아니라 주요 업체를 지정해 이들만 규제하되 규제방식은 양적규제가 아니라 자율규제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할 수 있다. 또한 케이블TV 지역채널의 경우 해설, 논평을 허용하고 IPTV의 경우에도 보도, 논평을 제외하고는 직접사용채널을 허용하는 것이 타당하다. 사실 보도를 허용하면서 해설, 논평을 금지하는 것이나, 전국 서비스라는 이유로 IPTV의 자체 채널 운용을 금지하는 것은 비합리적이고 과도한 규제이다.

넷째, 광고규제다. 현행 방송법은 시청자 보호를 위해 지상파, 유료방송 구분 없이 방송광고의 유형·횟수·시간 등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방송사업 재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광고에 대한 규제를 개선하지 않으면 방송사업이 지속될 수 없다는 점에서 광고규제의 개선은 필수적이다. 특히, 유튜브 등 인터넷은 물론 넷플릭스 등 OTT와 광고경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방송광고 규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전체 일 방송시간 중 17%로 되어 있는 광고총량을 20% 이하로 완화하고, 현재 방송프로그램광고, 토막광고, 자막광고, 시보광고, 중간광고, 가상광고, 간접광고로 구분된 방송광고유형을 기술발전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폐지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다만, 시청자 보호를 위해 방송과 방송광고는 명확히 구분하고, 청소년 보호 등을 위해서는 사업자 자율규제 방안 검토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글로벌 OTT에 대응하는 유료방송 플랫폼 규제혁신이다. 현재 OTT는 전기통신사업법 부가통신사업(온라인동영상서비스)으로 규정되어 있고 이런 OTT 콘텐츠 제작비에 대해서는 조세특례제한법상 세액공제가 허용되어 있어 최소규제만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의 경우 제작비 300억원 미만으로 1조 2000억원 효과를 달성했는 데, 이는 제작사로부터 IP를 양도받음으로써 가능했다. 글로벌 OTT의 국내 IP 독점을 방지할 제도적 장치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 시청각미디어서비스지침(Audio Visual Media Services Directive)에는 글로벌 OTT의 투자 콘텐츠 IP 독점 기간을 3년으로 제한하고, 제작사는 3년 뒤 리메이크 등 IP 활용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인기작 '더글로리'는 선정성과 폭력성으로 논란이 되었음에도 방영이 가능했던 것은 자율등급제를 실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 방송에서는 내용규제로 인해 방영이 불가능했을 것인데, 내용규제 완화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

2차대전 후 빈민국에서 개발도상국을 넘어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단계에서 한국이 강점을 가졌던 반도체, 조선, 자동차, 휴대폰 등 주력산업을 제외하면 이제 미디어·콘텐츠가 미래 유망산업이므로 이를 지원하는 정부의 정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단, 정부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임무는 규제혁신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는 정말 방송 규제를 혁신할 때이다.

방송미디어 규제혁신 방안

〈필자〉이성엽 교수는 고려대 법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미국 미네소타대 로스쿨을 졸업한 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고, 서울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하버드 로스쿨 방문학자를 거쳤다. 1991년 제35회 행정고시 출신으로 정보통신부, 국무조정실과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거쳐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20년부터 한국데이터법정책학회장을 맡고 있고 고려대 기술법정책센터장/데이터·AI법센터 대표를 겸임하고 있으며, 국무총리 소속 미디어·콘텐츠산업융합발전위원회, 국가데이터정책위원회 위원 및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규제심사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행정 경험과 법률 실무를 기반으로 행정규제, 방송, 통신, 인터넷, 데이터·AI 분야 법과 정책에 정통한 권위자이다.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dysylee@korea.ac.kr 이성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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