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톡] 1120만톤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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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과학 연구나 과학계 이슈의 의미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일들을 과학의 눈으로 분석하는 칼럼 '사이언스 톡'이 3주에 한 번씩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정부가 말한 '경험'은 2017년 실제 있었지만, 당시 주입량은 100여 톤에 불과했고 작업 위치도 포항 앞바다였다.
CCS에 도전 중인 한 과학자는 서해 시추를 바라보는 우려에 대해 "연구자들이 안고 가야 하는 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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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자립·국내 저장, 가능성 얼마나
목표치부터 높인 책임은 누구에게
편집자주
과학 연구나 과학계 이슈의 의미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일들을 과학의 눈으로 분석하는 칼럼 ‘사이언스 톡’이 3주에 한 번씩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전북 군산시 군산항에서 165㎞ 떨어진 해상. 육지에서 워낙 멀어 행정구역도 없는 이곳에 과학자들이 기를 쓰고 가려한다. 작년에 나가려다 때를 놓쳐서 올해는 기필코 가겠다 했는데, 일이 마음처럼 풀리지 않는다. 시간이 많지 않은데. 비용을 더 들여야 하나. 무거운 부담감이 연구진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연구진이 가려는 곳은 서해 대륙붕 군산분지. 여기서 해저에 2㎞ 깊이로 구멍을 뚫을(시추) 계획이다. 이곳의 심부 퇴적지층이 이산화탄소를 영구히 저장하기 적합한 곳으로 추정돼서다. 시추공을 통해 땅속 데이터를 확보한 다음 저장소로 괜찮은지, 얼마나 넣을 수 있는지 판단한다는 계획이다. 이 모든 게 확인되면 육상에서 생긴 이산화탄소를 잡아다(포집) 가둬둘 참이다. 바로 정부가 탄소 감축의 주요 수단으로 삼은 이산화탄소 포집·저장(CCS) 기술이다.
연구진은 작년 해상작업대(플랫폼)를 제작했고, 5월 전문업체와 함께 군산분지로 내보냈다. 플랫폼이 설치되면 연구진이 뒤따라 나가 본격 시추에 들어갈 예정이었는데, 사고가 났다(본보 7월 6일자 '탄소저장소 확보 위한 서해시추 중단... 탄소중립 계획 차질 빚을라'). 기기 손상으로 플랫폼 설치에 실패했고 부상자까지 생긴 바람에 시추는 시작도 못한 채 일정이 중단됐다. 당초 시추를 시작하려던 시점은 작년 가을이었지만, 그땐 바다 날씨가 불안정해 나가지도 못했다. 1년 가까이 일정이 늦어지면서 연구진 속은 타 들어간다.
과학자들이 고군분투하는 사이 중요한 ‘숫자’가 바뀌었다. 올 3월 나온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한 세부 이행방안’에서 산업 부문의 감축 목표가 줄어든 대신 CCUS로 감축할 양이 기존 1,030만 톤에서 1,120만 톤으로 늘었다. CCS는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고, 이산화탄소를 붙잡아 산업적으로 활용하는(CCU) 기술 역시 초기인데 정부가 감축량을 불쑥 늘려놓은 것이다.
정부는 “세계 3번째로 이산화탄소 해상 주입에 성공한 경험을 토대로 세계 최대 규모의 탄소 저장소를 운영하겠다”고 홍보해왔다. 정부가 말한 ‘경험’은 2017년 실제 있었지만, 당시 주입량은 100여 톤에 불과했고 작업 위치도 포항 앞바다였다. 망망대해 한복판에서 해저 바닥을 뚫어 탄소 수백만 톤을 가져다 넣겠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CCS를 탄소 감축 기술의 중요한 옵션으로 꼽는다. 다만 기존 유전이나 가스전에 적용하기엔 성숙한 기술이지만, 그 외 분야에서 실질적으로 채택하기엔 다양한 장애요소가 있다고 평가했다. 경제적, 환경적, 사회적 한계와 우려가 적지 않은 만큼 기술 혁신이나 수용성 향상 등의 추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포항 앞바다 탄소 주입만 해도 주민 우려로 설비가 철거됐다.
탄소 감축에 생존이 달린 정유·화학·철강 기업들이 해외로 눈을 돌려 화석연료 생산이 끝난 빈 광구를 물색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이들 기업 사이에선 세계 최대 규모는커녕 탄소 저장소를 국내에서 원활히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상당하다.
그럼에도 과학자들은 서해 시추를 포기하지 못한다. 기존 물리탐사 데이터를 보면 가능성이 없지 않아서다. CCS 기술을 자립화하고 국내 저장소를 운영할 수 있다면 탄소중립 시대에 유용한 경쟁력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정말 가능할지, 경제성과 안전성이 괜찮을지 확신이 서기도 전에 1,120만 톤이 결정됐다. CCS에 도전 중인 한 과학자는 서해 시추를 바라보는 우려에 대해 “연구자들이 안고 가야 하는 짐”이라고 했다. 숫자부터 바꾼 이들이 그 짐을 함께 져야 한다.
임소형 미래기술탐사부장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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