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밀가루 이은 정부의 우윳값 잡기, 이번에도 통할까
물가 잡기에 나선 정부의 시선이 라면, 밀가루에 이어 우유로 향한 가운데 원윳값 협상에 따라 유제품 가격이 어떻게 바뀔지 관심이 모인다. 흰우유 원료인 원유를 생산하는 낙농가도, 원유를 받아 제품을 만드는 유업체도 “남는 게 없다”며 울상을 짓고 있어서다. 이에 정부는 유업체에 이어 낙농가는 물론, 사료업체까지 가격 인하를 압박하고 나섰다.
13일 정부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7일 서울우유, 매일유업, 남양유업, 빙그레 등 유업체 10여곳을 불러 제품 가격 인상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12일에는 낙농업계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열어 원유 가격 인상을 최소화해달라고 당부했다.
낙농가와 유업계 관계자로 구성된 낙농진흥회는 지난달 9일부터 원유 기본 가격 조정을 협상 중이다. 1ℓ당 996원인 음용유(마시는 우유)의 경우 69~104원 범위 안에서 얼마나 값을 올릴지 논의하고 있다. 새 음용유 기본 가격은 1065~1100원 사이에서 결정되는 셈이다. 당초 8월부터 조정된 원유가격을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협상 기한을 지난달 30일로 잡았지만, 접점을 찾지 못해 이달 19일까지 연장했다.
유업계는 원유값이 오르면 흰우유 제품가도 올릴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흰우유를 팔아 남는 이득이 크지 않은 데다, 저출생 심화로 우유 소비가 줄고 있다고 토로한다. 지난해 푸르밀이 사업 종료를 선언했다가 철회한 사례에서 보듯 유업계의 생존 고민이 커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줄어드는 우유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대체유, 외식사업 등 신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다만 유업체들은 소비자단체로부터 “원유 가격 상승폭에 비해 유가공업체의 흰우유 가격 인상이 과도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유업체들의 소비자가격 인상률이 원유가 상승률보다 2~3배 높다고 지적했다.
낙농가의 한숨도 깊다.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국제 곡물 가격이 급격히 뛰어 사료비 부담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최근 곡물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서긴 했다. 정부는 낙농가 간담회에서 이 점을 언급하며 생산비 감소 요인이 있다는 걸 감안해달라고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곡물 가격 하락이 곧장 사료값 인하로 이어져 낙농가의 부담을 덜어주진 않는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지난 6일 배합사료 제조업체를 만나 곡물 가격 하락분을 사료 가격에 조기 반영해달라고 주문했다. 사료업체들은 아직 고점에 들여온 곡물을 쓰고 있는 만큼 원가 부담이 여전하다고 말한다.
앞서 라면업체와 제분업체 역시 밀 가격 인하를 체감하기까진 시간이 걸린다며 가격 인하에 난색을 표한 바 있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가 거론되는 등 정부의 ‘압박’이 지속되자 결국 라면업체들이 가격 인하를 결정하고 제과·제빵·제분업체가 동참했다.
일각에선 “자유시장경제“를 내건 윤석열 정부가 사실상 직접 가격을 통제하려 나서는 게 모순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계속 가격 인상 자제 신호를 보낸다면 유업계도 라면업계처럼 울며 겨자 먹기로 호응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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