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펼쳐진 사무실⋅헬스장⋅게임방, ‘공간 컴퓨팅’ 시대가 왔다

안중현 기자 2023. 7. 1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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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애플이 쏘아올린 ‘공간 컴퓨팅’이 일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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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확장현실(XR) 헤드셋 ‘비전 프로’를 쓴 남성 앞에 각종 앱이 펼쳐져 있다. 주변 공간에 필요한 앱을 모두 띄워 놓을 수 있고, 손짓으로 앱 크기를 키우거나 줄일 수도 있다. 화면의 제약을 벗어나 사용자 주변의 공간을 모두 작업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애플

지난달 5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플파크에서 열린 애플의 연례 개발자 회의(WWDC). 애플이 그동안 선보인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 애플워치가 세상에 어떤 변화를 이뤄냈는지 이야기가 꽃피었다. 한참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팀 쿡 최고경영자(CEO)는 흥분한 표정으로 “원 모어 싱(하나 더)”을 외쳤다. 순간 행사장에 있던 3000여 명이 환호성을 질렀다. 창업자 고(故) 스티브 잡스가 WWDC 마지막 순서에 가장 중요한 신제품을 공개할 때 썼던 표현이기 때문이다.

쿡 CEO는 “오늘은 컴퓨팅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날”이라면서 애플의 첫 확장현실(extended Reality·XR) 헤드셋 ‘비전 프로’를 공개했다. 그는 “오래전 매킨토시가 개인용 컴퓨팅 시대를 열었고, 아이폰이 모바일 컴퓨팅 시대를 열었듯이, 비전 프로는 ‘공간 컴퓨팅’ 시대를 열 것”이라고 했다.

공간 컴퓨팅(Spatial Computing)이란 용어는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미디어랩의 시몬 그린우드가 2003년 발표한 논문에서 처음 사용했다. 당시엔 현실 공간과 디지털 세계를 연결할 기술이 개발돼 있지 않아서 널리 알려지진 않았다. 하지만 20년이 지나 애플이 비전 프로를 공개하면서 공간 컴퓨팅이란 용어를 사용하자 IT 업계 종사자는 물론, 대중의 머릿속에 순식간에 각인됐다. 공간 컴퓨팅이 무엇이기에 열광적인 반응이 나오는 것일까. 쿡 CEO의 말대로 공간 컴퓨팅은 새로운 시대를 보여줄 수 있을까.

지난달 애플이 공개한 MR 헤드셋 '비전프로'. 당초 연간 판매량 100만대를 예상했던 애플은 최근 목표량을 40만대로 줄였는데, '마이크로 OLED 디스플레이'의 수급 문제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MR, VR 등 고성능 하드웨어가 각광을 받으면서 핵심 부품인 마이크로 OLED도 주목받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손짓으로 공간에 떠 있는 앱을 실행

애플은 공간 컴퓨팅을 ‘디지털 콘텐츠를 물리적 공간과 매끄럽게 혼합하는 기술’로 정의했다. 마치 디지털 콘텐츠가 물리적 공간에 있는 것처럼 보고, 듣고, 상호작용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애플이 비전 프로를 공개하면서 보여줬던 영상은 앞으로 공간 컴퓨팅이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지를 보여준다. 영상 속에선 비전 프로를 쓴 남성의 눈앞엔 사무실 공간이 그대로 존재하면서 동시에 거대한 웹브라우저가 떠 있다. 양옆엔 업무용 앱과 메신저가 떠 있었다. 손짓 한 번에 다양한 앱을 실행하거나 종료할 수 있다.

알레산드라 맥기니스 비전 프로 상품 매니저는 “메모, 메시지 등의 앱을 아무 데나 펼쳐놓을 수도 있고, 딱 좋은 사이즈로 키울 수도 있다”고 했다. PC 화면에 여러 앱을 번갈아가면서 띄우는 게 아니라 사용자가 존재하는 공간 자체에 필요한 여러 앱을 동시에 띄워놓고 작업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공간 컴퓨팅이 기업에서 업무 효율을 높이는 데 우선 활용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평가된다. 컨설팅회사 IDC의 톰 메이넬리 부사장은 “무한한 디스플레이 구현이 기업에서 즉각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부분”이라면서 “가장 멋진 사용 사례는 아닐지 몰라도 단기적으로는 가장 현실적인 사용 사례”라고 했다.

엔터테인먼트 역시 공간 컴퓨팅이 활용될 수 있는 대표적인 분야로 꼽힌다. 바로 눈앞에 거대한 화면이 펼쳐져 영화, 게임 등을 실감 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IT 전문 매체 시넷은 “비전 프로로 영화 아바타를 포함한 다양한 영상을 체험했는데, 아바타의 장면이 너무 생생해 오싹할 정도였다”고 전했다.

그래픽=김의균

꺼져가는 메타버스 되살리나

IT 업계에선 가상현실(VR)·증강현실(AR)을 포함하는 확장현실(XR)과 메타버스, 공간 컴퓨팅을 비슷한 개념으로 본다. 하지만 애플은 비전 프로를 공개하면서 메타버스라는 단어를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가상 혹은 초월을 의미하는 ‘메타’와 우주를 의미하는 ‘유니버스’를 합성한 메타버스는 작년까지만 해도 IT 업계의 가장 큰 화두였다. 그러나 제대로 된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 데다, 챗 GPT의 등장으로 인공지능(AI) 분야가 주목받는 사이 메타버스라는 용어는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시장조사 업체 피치북에 따르면 올해 1~5월까지 메타버스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된 금액은 6억6400만달러(8606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77% 감소했다.

IT 전문가들은 애플이 꺼져가는 메타버스를 되살릴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애플은 이전에도 새로운 분야를 되살린 적이 있다”면서 “애플이 아이팟을 출시하기 전인 2000년 휴대용 디지털 음악 플레이어 시장 규모는 330만대에 불과했지만 2004년엔 2640만대로 급성장했다”며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반면 포리스터의 수석 애널리스트인 토머스 허슨은 “애플의 비전 프로는 비싼 가격(3499달러·452만원)을 고려할 때 한동안 틈새시장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단기간에 비전 프로가 메타버스를 되살리거나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그래픽=김의균

콘텐츠를 얼마나 갖추냐가 관건

공간 컴퓨팅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대중화되기 위해선 아직 갈 길이 멀다. 에릭 우드링 모건스탠리 애널리스트는 “(공간 컴퓨팅이) 진정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킬러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 역시 “다음 경쟁은 공간 컴퓨팅의 용도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애플은 기존 앱이 비전 프로에서 잘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개발자들이 비전 프로용 앱을 개발할 수 있도록 개발 도구를 배포하며 콘텐츠 확보에 힘을 쏟고 있다. 수전 프레스콧 애플 부사장은 “공간 컴퓨팅은 새로운 유형의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는 방법을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면서 “개발자 커뮤니티가 어떤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낼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전 세계 수많은 개발자가 뛰어들면서 콘텐츠 확보는 물론, 가격 하락도 빠르게 이뤄질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웨드부시 증권의 댄 아이브스 애널리스트는 “앞으로 소비자들이 게임, 건강, 피트니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앱이 수천 가지가 될 것”이라면서 “2~3년 내에 수천 개에 달하는 앱이 생겨나고,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비전 프로 가격도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시장조사 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21년 190억달러 규모였던 글로벌 XR 시장 규모는 2026년엔 1008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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