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시장에 풀 ‘메기’를 낳을 수 있을까
(지디넷코리아=이균성 논설위원)이 정부 눈에는 국내 통신시장이 마뜩찮아 보인 듯하다. 3개 주요 사업자가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데, 이를 문제로 여기는 것 같다. 통신요금이 비싸다는 여론이 끊이지 않고, 그 원인을 따져보니 과점이 문제라고 진단했기 때문일 터다. 대통령이 지난 2월에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통신시장의 과점 문제를 비판한 뒤에 이 시장의 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특단 대책을 지시한 대목이 이를 입증한다.
대통령이 지시했으니 주무부처는 방안을 마련해야겠다. 주무부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다. ‘통신시장 경쟁촉진 정책방안 태스크포스(TF)’를 꾸린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찾아낸 해법의 핵심은 제4의 이동통신회사를 만드는 거다. 낯익은 해법이다. 과거 정부에서도 꺼내든 방법이기 때문이다. 한두 번 그런 것도 아니다. 정확히 조사해보진 않았지만 한 보도에 따르면 무려 일곱 번이나 그랬었다.
과거에 이미 일곱 번이나 실패했다는 뜻이다.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실패한 정책을 계속 반복하는 근거와 태도는 무엇일까.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속담을 모든 것에 적용될 진리로 믿는 걸까. 하지만 이 말은 진리가 아니다. 이 속담은 해야 할 일이라면 지치지 않고 노력하는 성실성의 자세를 강조할 때 의미 있는 것이지,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 도움이 되는 이치는 아니다.
성실성과 오기(傲氣)는 다른 문제다. 오기는 잘못된 판단과 선택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에서 나온다. 사람은 ‘좋은 선택’에 대해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많은 경우의 수 가운데 최상을 뽑는 게 좋은 선택이라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경제와 사회 문제에서 최상을 알아본다는 것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최선을 선택하고 싶지만 경제와 사회 문제에서는 시행착오가 있을 수밖에 없다.
좋은 선택을 위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실행(실행은 사실 선택이기도 함)은 반드시 시행착오를 낳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렇게 확인된 시행착오를 다음 실행에서는 하나하나 제거해가는 방식을 취하는 일 뿐이다. 혁신은 그런 점에서 없던 걸 만들어낸다는 의미보다 발견된 많은 것 중에서 쓸 모 없는 것을 하나씩 버려가는 과정에서 획득된다고 보는 게 옳다. 최상은 버림을 통해 드러난다.
정부로 하여금 제4 이동통신회사에 대한 열망을 갖게 했던 것은 아마도 ‘메기효과’라는 믿음 때문일 터다. 메기 효과는 바다에서 잡은 성질 급한 정어리를 죽지 않은 상태로 내륙까지 운송하기 위해 수조에 메기를 넣었더니 효과가 있더라는 사실을 사회와 경제 문제에도 적용한 법칙이다. 천적(혹은 경쟁자)을 같은 공간에 풀어놓으면 긴장감이 높아지고 그로인해 기존 유기체에 활력이 생긴다.
메기효과는 그러나 자연계에서든 사회경제에서든 ‘절대 진리’라 할 수 없다. 메기 효과가 통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법칙에만 매몰되어버리면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게 된다. 너무 좁은 공간에 메기까지 집어넣으면 정어리는 물론이고 메기까지 다 더 빨리 죽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약은 사실 독약이고 제한된 경우에만 효과가 있다.
제4 이동통신 해법에 그다지 기대가 되지 않는 까닭은 메기효과에 대한 지나친 믿음으로 몇 가지 오해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첫째 마음만 먹으면 메기를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오해다. 경제와 시장의 메기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어쩌다보니(수만 가지의 조건이 맞아떨어져) 무엇인가가 메기가 되는 것이다. 메기 효과는 뒤늦게 발견되는 것이지 의도되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오랫동안 기존 사업자에겐 채찍을 들고 새 사업자에겐 당근을 주겠다며 안타까우리만치 메기 후보자를 찾고 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기업은 엄밀히 말해 메기가 되기 위해 사업을 하는 게 아니다. 비용대비 효과가 있어 지속가능하다면 선택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생존이 더 문제인 것이지, 시장경쟁을 활성화해 통신요금을 내릴 목적으로 사업을 하지는 않는다.
기업을 하는 사람들은 다 안다. 정부의 비대칭적인 혜택을 기반 삼아 누군가 지금 통신 시장에 뛰어든다면 그게 메기일 수는 없고 잘 해봐야 피라미가 될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어떤 기업이 더 이상 물이 나오지 않을 땅을 수조 원을 들여 파겠는가. 메기가 나오려면 새로운 조건이 형성될 때를 기다려야 한다. 대개 그 조건은 기술 의존적이다. 무슨 기술이 새로운 진짜 메기를 태어나게 할까.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할 일은 그것이다. 비싼 통신요금과 과점체제가 진짜 문제라면 그건 사실 과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책의 업보이고 이제 그 해결은 공정거래위원회의 몫이어야 한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3개 회사의 담합 등 불공정행위를 엄밀하게 들여다보는 일 뿐이다. 그것부터라도 잘 해야 한다. 기술 부처 책임은 저절로 새로운 메기가 나올 수 있게끔 기술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균성 논설위원(sereno@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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