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사태 바라는 뉴라이트 김영호, 정작 김정일 사망 때 드러난 무능 민낯
2011년 12월 19일 월요일 오전 7시 45분, 수석비서관회의에 앞서 직원들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깜짝 파티를 해줬다. 그날은 이명박 대통령의 칠순 생일이자 결혼기념일, 대통령선거승리 4주년이 겹치는 ‘3중 기념일’이었기 때문이다.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이 “대통령께서는 직원들이 준비한 생일 케이크를 자른 뒤 수석비서관 회의 주재했다”고 알렸다. 출입기자들에게 기념 떡도 돌렸다. 낮 12시엔 청와대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함께하는 점심식사 행사도 마련했다.
신동아는 사태가 어느정도 정리된 뒤 내보낸 2월 보도에서 당시를 이렇게 묘사했다.
‘청와대 직원 200여 명이 일제히 결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일부 직원들은 고깔모자를 썼다. 참모들은 이 대통령 활동사진과 비서관실별 축하 메시지 사진이 담긴 대형 카드를 생일선물로 건넸다. 이 대통령은 “고맙다”며 생일케이크를 잘랐다. 참 화기애애하고 태평스러운 풍경이었다.’
낮 12시, 청와대는 발칵 뒤집혔다. 북한 조선중앙TV에 검은 상복을 입은 아나운서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17일 오전 8시 30분 서거했다’고 알리며 흐느꼈다. 구내식당엔 청와대 직원들이 이명박 대통령 축하 오찬을 위해 대기중이었다. 이 대통령은 구내식당으로 가다가 발길을 돌렸다.
당시 청와대를 출입했던 기자는 13일 “황급히 NSC회의를 열고 회의 중인 사진을 기자들에게 배포했는데, 원세훈 국정원장이 못와서 없었다. 나중에 원 원장이 참석한 뒤 찍은 사진으로 다시 배포하는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청와대나 장관들이 일상 업무를 보다가 일반 국민과 똑같이 12시 뉴스 속보를 보고 알았다는 데에 국민은 충격을 받았다.
당시 김관진 국방부 장관(현 대통령직속 국방특별혁신자문위원장)은 발표 시점에 여의도 국회에 있었고, 정승조 합참의장은 동해 부대 시찰, 김황식 국무총리는 크리스마스 실 증정식,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대외 직명대사 임명장 수여식, 류우익 통일부 장관은 통일교육유공자 포상 일정 중이었다. 당시에도 ‘실세‘로 통했던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현 국가안보실 1차장)은 전날 맹장염 수술을 받아 입원 중이었다.
당시 한 신문은 “부처 고위관게자들도 여느 때처럼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가 12시 사망 소식이 보도되자 황급히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다음날인 12월 20일, 국회에서는 국정원을 상대로 질의하는 정보위와 외교·통일부 상대로 외통위, 국방부 상대 국방위가 일제히 열렸다. 국회의원들은 이런 일을 어떻게 51시간 30분동안 우리 정부가 전혀 모를 수 있는지 추궁했다.
원세훈 국정원장은 물론, 청와대 외교·안보라인에 있는 담당자들을 경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비등했다. 이는 여야를 가리지 않았다. “정보 수집 능력이 인터넷 검색 수준”이라는 질타는 여당인 한나라당에서 나왔다. 한나라당 정옥임 의원이 “휴민트가 붕괴됐다”고 개탄했고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1조원 예산을 받는데 아무것도 몰랐다니 원세훈은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현 권영세 통일부 장관도 당시 정보위원장이었다.
정보는 없어도 분석은 할 수 있다. “그런 정보는 너무나 극비라 북한 내에서도 극히 일부만 안다”(정부 관계자)고 한계를 호소하지만, 당시 외교·안보라인 및 정부의 무능과 안일함이 질타를 받은 이유는 오전 10시부터 12시 사이, 2시간 때문이었다.
국정원이 알아낸 특급정보가 없더라도, 공개된 정보를 보고 분석, 판단하는 단계에서조차 실패한 게 더 심각하다는 것이다. 분석실패는 김영호 당시 통일비서관 책임과도 직결된다.
이날 북한은 정오에 ‘특별방송’을 하겠다고 아침부터 수차례 예고했다. 오전 10시, 북한 조선중앙TV, 조선중앙방송, 평양방송 등 전 매체들이 일제히 “오늘 12시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특별방송이 있겠습니다”라고 방송했다. 이어 오전 10시 23분, 10시 30분 ‘특별방송‘ 예고가 반복됐다. 북한이 ‘특별방송’이라는 용어를 쓰며 방송을 예고한 것은 17년만이었다. 바로 1994년 김일성 사망 발표 이후 처음이었다. 특급정보가 없어도 단서는 많았던 셈이다.
문제의 2시간 동안 청와대나 통일부, 외교부 기자들이 곳곳에서 북한의 ‘특별발표’가 무엇일지 문의했을 때 청와대와 정부 관계자들은 “북한 비핵화와 관련된 것 아니겠느냐”, “우리도 봐야 안다”라고 했다는 기록이 수두룩하다. 종종 나오는 ‘중대 방송’이란 용어와 ‘특별 방송’이란 용어의 차이도 전혀 포착하지 못한 모습이다. 결국 예고된 정오, 조선중앙TV에 나온 아나운서가 검은 상복을 입은 것을 보고서, 또는 김정일 사망이란 문자를 받고 혼비백산해 점심을 먹다 복귀했다는 후일담이 넘쳐난다.
“장례위원 발표까지 하는 등 내용을 다 준비하고 녹화했으니 움직임이 있었을 텐데 몰랐다면 심각하다”(윤덕민 당시 외교안보연구소 교수, 현 주일대사), “민간기업들까지 사실을 알아보려고 했다는데 정부의 능력이 의심스럽다”(당시 민주당 신낙균 의원) 등 지적이 이어졌다.
또 “통일문제 및 국제관계 전문가로서의 학문적 지식, 현 정부 통일정책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통찰력을 바탕으로, 정부의 통일 정책과 남북관계를 책임있게 추진해 나갈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음”이라고 덧붙였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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