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명 대기하던 병원 '텅텅'…환자들 "파업 빨리 끝나길"[르포]

김지성 기자, 고양(경기)=최지은 기자 2023. 7. 13.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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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전 서울 성북구 고려대안암병원 창구에 '대기인원 0명'이라고 표시돼 있다. /사진=김지성 기자


'대기 0명, 대기시간 0분'

13일 오전 10시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고려대안암병원 원무통합창구 전광판에는 창구별 현황과 함께 대기인원이 없다는 표시가 떴다. 창구 앞 대기석은 네 자리 중 세 자리가 비어 있었다.

무인수납·번호표 발행기 앞에서 환자들의 키오스크 이용을 돕던 한 직원은 "평소에는 평일 오전에도 창구 대기인원이 30~40명 정도는 있는데 오늘은 대기가 아예 없다"고 말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은 이날 19년 만에 대규모 총파업에 돌입했다. 고려대안암병원을 비롯해 이대목동병원, 아주대병원, 한림대성심병원, 경희대병원, 한양대병원 등 상급종합병원 20여곳이 파업에 참여했다.

파업에 대비해 미리 병원 측에서 환자들의 진료 일정을 조정한 데다, 당초 예상보다 파업 참여인원이 적어 우려했던 만큼 큰 혼란은 빚어지지 않았다.

고려대병원의 경우 안암, 구로, 안산 등 3개 병원에서 모두 파업에 들어갔다. 간호사, 간호조무사, 의료기사, 치료사 등 의료계 다양한 직종으로 구성된 조합원 4300명 가운데 5분의1이 채 안되는 800여명이 파업에 참여했다. 그마저도 상당수는 이날 근무가 아닌 '비번'이었다.

응급실, 수술실, 중환자실 등 환자 생명과 직결된 업무에는 필수 인력이 배치됐다. 기존에 잡힌 수술이나 외래진료도 취소하기보다 진료 예약을 추가로 받지 않는 선에서 정리가 됐다.

조햇님 보건의료노조 서울지역본부 조직부장은 "필수 인력은 남았기 때문에 응급실, 수술실 등은 원활히 돌아가고 있고 중증도가 떨어지는 환자들은 전원 또는 퇴원시키는 방향으로 병원 측에서 처리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정형외과 진료를 위해 병원을 찾은 김모씨(67)는 "진료실 앞에 평소대로 간호사가 앉아 접수를 받고 있었고 외래환자라 잠시 진료 보고 가니 큰 불편은 못 느꼈다"며 "입원병동에는 상주하는 간호사 수가 줄었는지 병실에 계신 분들은 불편을 겪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13일 가장 붐벼야 할 평일 오전이지만 보건의료노조의 파업 여파로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 수납 창구 앞은 한산했다. 국립암센터의 하루 평균 외래 진료 환자 수는 1700명에 이르지만 이날 10시30분쯤 수납 대기 환자는 20명이 채 되지 않았다./사진=최지은 기자


경기 고양시에 있는 국립암센터 상황도 비슷했다. 가장 붐벼야 할 평일 오전이지만 파업 여파로 수납 창구 앞은 한산했다. 평소 국립암센터의 하루 평균 외래 진료 환자 수는 1700명에 이르지만 이날 오전 10시30분쯤 수납 대기 환자는 20명이 채 되지 않았다. 환자가 없어 한동안 비어 있는 창구도 많았다.

국립암센터는 당초 총파업 기간 예정된 수술 100여건과 외래진료 2000여건을 취소했다. 그러다 전날 병원과 노조 측이 '환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공감대로 합의를 이루면서 최소 인원만 총파업에 참여하기로 했다.

국립암센터 직원 2200명 중 노조원은 1100명 정도다. 노조원의 90% 정도가 13일 파업에 동참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실제로는 4분의 1 수준만 광화문으로 향했다. 이날 국립암센터 본관 앞에 모인 노조원 230여명은 서울에서 열리는 보건의료노조 집회 현장에 가기 위해 버스에 차례로 올라탔다. 대부분은 이날 '비번' 근무자였으며, 근무일인데도 빠지고 파업에 참여하는 인원은 100여명이 조금 넘었다.

한성일 보건의료노조 국립암센터 지부장은 "13일 총파업 출정식이 예정돼 있었지만 (이런 행사를 하면) 환자들과 보호자들의 불안감이 높아질 것 같아 취소했다"며 "환자들에게 미칠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사 공동의 목표가 있었다"고 밝혔다.

노사 간 의견이 조율되면서 지난 12일까지 병원에 붙어 있던 서홍관 국립암센터 원장의 파업 관련 담화문, 노조 측 입장문을 담은 대자보와 현수막은 모두 철거됐다. 또 총파업으로 취소됐던 수술과 외래 일정도 재개했다. 입원 환자 수는 500명에서 230명까지 떨어졌으나 이날 오전까지 270명으로 회복됐다.

서홍관 국립암센터 원장은 "병원 의료 인력은 정상화된 상태지만 취소했던 일정들은 하나하나 다시 복원해야 한다"며 "총파업 기간 완전 정상화는 어렵겠지만 다음 주에는 무리 없을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13일 보건의료노조 총파업에 참여하는 국립암센터 노조원들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으로 가는 버스에 탑승하고 있다./사진=최지은 기자


총파업으로 마음을 졸이던 환자들은 치료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항암 주사를 맞기 위해 병원을 찾은 신모씨(68)는 "항암 주사실에서 일정을 잡아주는데 전날 병원에서 차질 없이 진행될 거니 오면 된다고 문자가 왔다"며 "정부와 조율이 잘 돼서 파업이 얼른 마무리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수납 창구 앞에서 만난 김선아씨(55)는 "암 검사는 1년간 예약이 꽉 차 있어서 오늘 못 받으면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데 다행히 검사는 받았다"며 "(총파업 때문에) 검진 결과를 언제 들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파업할 건 해야 하니 빨리 매듭이 지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일부 환자들은 총파업에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기도 했다. 국립암센터에서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전날 입원했다는 이영국씨(64)는 "입원 일정이 잡혀 있었는데 병원에서 안 받아준다고 해서 집으로 돌아갔다가 어제 입원했다"며 "치료나 수술이 취소된 환자들은 얼마나 낙심이 되겠나. 보건의료종사자들의 노고는 잘 알고 있지만 이런 부분은 아쉽게 느껴진다"고 밝혔다.

김지성 기자 sorry@mt.co.kr 고양(경기)=최지은 기자 choij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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