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소송' 묵묵부답 헌재에 전달할 국민의견서 [붉은 점]
3년 전 시작된 헌법소원
여전히 답 없는 헌법재판소
인권위도 헌재에 의견 전달
국민의 목소리 더 듣도록
국민참여의견서 전달할 계획
2022년 여름 비가 그렇게나 많이 쏟아지던 때. 우린 기후위기로 일상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그 때문인지 반지하에 수해방지시설을 설치하는 일들이 진행됐지만, 진짜 '기후위기'를 해결하려는 발걸음은 더디기만 합니다. 하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더스쿠프 같이탐구생활 '붉은점', 이번엔 '기후소송'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기후소송. 우리에게 더 이상 생소한 말은 아닙니다. 2020년 3월 기후위기 운동단체 '청소년기후행동' 소속 청소년 19명이 헌법재판소에 기후 관련 헌법소원(이하 기후소송)을 제기한 이후 총 4건의 소송이 이뤄졌습니다. 골자는 비슷합니다. 정부가 만든 온실가스 감축정책이 실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는 겁니다.
2020년 기후소송에서 청소년기후행동 측이 주장한 내용을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볼까요? 첫째,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관련한 사항을 행정부에 백지위임해 포괄위임금지원칙을 위반했다. 둘째,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 규정으로 2020년 목표치를 자의적 폐지했다. 셋째, 매우 소극적 목표치를 설정해 기후재난 예방에 실효성이 없다.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이나 탄소중립기본법 등을 알고 있는 누군가에겐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들 법만으론 충분하지 않다는 게 소송의 핵심입니다. 기후소송이 청구된 건 3년 전이지만 헌재는 아직 결론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이런 기후소송에 정부의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측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전달했습니다. "저탄소 녹색성장이 구현될 수 있도록 대통령(정부)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청구 이유 중 일부가 헌법소원의 적법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하지만 해외의 상황은 다릅니다. 2013년 네덜란드에서는 기후위기 운동단체 '우르헨다(Urgenda)'가 정부가 제시한 온실저감책이 불충분하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2019년 6년 만에 최종 승소했습니다. 2021년 독일 헌법재판소도 정부의 탄소저감책이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기고 있기 때문에 연방기후변화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는 지난 4월 '탄소중립 1차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 계획에 따르면, 2023년부터 2030년까지 8년간 우리나라는 2억4970만톤(t)의 온실가스를 줄여야 합니다.
단순 계산하면 이 감축량을 8등분해 똑같이 감축해야겠지만 감축량은 시간에 따라 달라집니다. 2023년부터 2026년까지 총 4년간 탄소 감축량은 33.4%입니다. 나머지 같은 기간(4년) 내 줄여야 하는 건 66.6%입니다. 미래로 갈수록 탄소 감축의 부담이 커지는 겁니다.
정부는 여전히 온실가스 감축의 부담을 짊어지지 않기 위해 감축 조치조차 최대한 미루고 있습니다. 청소년기후행동을 비롯한 기후위기운동단체들이 탄소중립 1차 계획을 두고 "우리가 비판해왔던 것들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변한 건 아무것도 없는 걸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청소년기후행동은 6월 12일 국가인권위원회 제8차 전원위원회 회의에서 '우리 정부가 만든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ㆍ녹색성장 기본법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이 났다'고 알렸습니다.
전원위원회 위원 중 1명이 기권, 1명이 반대하고 7명이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문제가 없다'며 반대표를 던진 1명의 논리는 "최선을 다했고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정부의 입장과 같았습니다. 반면, "문제가 있다"며 찬성한 7명의 논리도 굳건했습니다. 정부가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보고서의 내용보다 소극적으로 탄소감축정책을 세웠다는 겁니다. 인권위는 헌재에 이 내용을 담은 의견서를 제출할 계획입니다.
이 의견서는 기후소송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알 수 없지만, 그 영향력을 가늠해 볼 순 있습니다. 인권위의 '의견서'는 가장 강력한 조치는 아닙니다. 인권위가 제기할 수 있는 조치 중 가장 강력한 건 '권고'입니다.
의견서 제출 등의 '의견 표명'은 권고보다 무게가 가볍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르면 인권위의 권고를 받은 기관은 일정 기간 내에 권고 이행계획서나 권고 불수용 사유를 인권위에 제출해야 합니다. '의견 표명'에는 그런 후속 절차가 강제돼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청소년기후행동 측은 국민이 직접 헌재 판결을 촉구할 수 있도록 '국민참여의견서'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한줄짜리 메시지부터 개인 또는 공동체가 작성한 의견서까지 시대적 요구를 모아 보겠다는 겁니다. 구체적인 계획은 7월 중 홈페이지, SNS, 청소년기후행동의 소식지(기행레터) 등을 통해 공개할 계획입니다.
김보림 청소년기후행동 사무국장은 "2020년 3월 헌법소원을 청구할 당시에는 국민참여의견서를 별도로 받지 않았다"며 "유명인들의 참여의견서까지 받아 헌재에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국가정책ㆍ법리학ㆍ과학ㆍ인권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기후법정자문단의 최종 보고서도 수백개의 국민참여 의견서와 함께 헌법재판소에 전달할 예정"이라며 "기존 기후위기 운동단체뿐만 아니라 사회 다양한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모으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2020년 3월 정부를 상대로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책임 있게 대응하라'고 외쳤던 건 청소년기후행동 소속 19명의 미래 시민들이었습니다. 그로부터 3년이 흐른 지금, 이 목소리는 더 커졌습니다. 미래세대뿐만이 아니라 일반 시민까지 의견을 낼 수 있는 '공론의 장'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헌재는 과연 어떤 판단을 내릴까요?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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