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원 '나토 가입'은 빠졌지만…젤렌스키 빌뉴스行 절반의 성공
G7 안보보장 등 실질적인 경제·군사적 지원 약속 받아
젤렌스키 "터무니없다" 반발하다 "전에 없던 안보" 수위 조절
(서울=연합뉴스) 최인영 기자 =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폐막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크라이나가 가장 원하는 것은 나토 가입이다. 하지만 러시아와 전쟁 중인 상황에서 당장 집단방어 체제에 가입할 수 없다는 것은 젤렌스키 대통령도 잘 알고 있다.
그는 최소한 나토가 우크라이나를 언제, 어떻게 가입시킬 것인지 구체적인 시간표라도 제시받기를 기대했으나 이는 일찌감치 무산됐다.
지난 11일 나토가 이번 정상회의를 통해 우크라이나의 가입 일정을 제시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지자 젤렌스키 대통령은 소셜미디어에 "전례 없고 터무니없다"며 다소 격앙된 반응을 내놓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반발에도 나토는 우크라이나 가입을 구체화하지 못하고 정상회의를 마무리했다.
우크라이나가 언젠가는 나토에 가입될 것이라는 점은 확인했지만, 정확히 언제, 어떤 조건에서 가입하게 될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11일 채택된 공동성명에서 나토 동맹국들은 "우리는 회원국들이 동의하고 (가입에 필요한) 조건이 충족되면 우크라이나에 가입 초청장을 보낼 수 있는 위치에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우크라이나는 전쟁이 끝나면 나토 동맹국이 될 것이라는 분명한 선언을 바랐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궁극적인 보상을 받지 못한 채 리투아니아를 떠나게 됐다"고 진단했다.
특히 가입 조건이 모호하게 언급된 점에서 우크라이나가 큰 실망을 하게 됐다고 짚었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도 나토가 우크라이나에 많은 것을 줬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제외했다면서 "가장 낮은 수준의 공통 분모 메시지를 내놓은 것에 그쳤다"고 평했다.
또 2008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나토 가입 가능성을 열어둔 것을 반복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부쿠레슈티 선언이 되려 러시아를 자극해 우크라이나 침공의 계기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 싱크탱크인 유럽정책분석센터(CEPA)의 캐서린 세닥은 나토의 이번 성명에 대해 "러시아가 나토 확장을 막기 위해 분쟁을 계속 일으킬 동기를 부여한다"며 "러시아에 무한한 타임라인을 제공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나토는 현재 진행 중인 전쟁의 해법을 제시하는 데도 실패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나토 지도자들이 이번 정상회의에서 정전이나 한국식 휴전을 위해 러시아와 협상하는 방안을 한 차례도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는 데 주목했다.
이는 우크라이나는 협상에 나서기 전 더 많은 영토를 탈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러시아는 영토를 되돌려줄 의향이 없다는 것을 나토가 암묵적으로 인정한 결과라고 NYT는 분석했다.
그러나 젤렌스키 대통령이 빈손으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오히려 우크라이나가 이번 정상회의에서 많은 것을 달성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나토는 12일 '나토-우크라이나 평의회' 창설을 약속하며 우크라이나를 달랬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처음으로 나토의 공식 파트너로서 회의에 참석하기도 했다.
또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절차가 시작된다면 신청국이 원칙적으로 거쳐야 하는 '회원국 자격 행동 계획'(MAP·Membership Action Plan) 절차는 면제하기로 했다. 단계를 축소해 가입까지 기간을 단축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구체적인 일정은 없지만, 우크라이나가 미래에 나토의 일원이 될 것이라는 점은 더욱 분명해졌다.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벤 월리스 영국 국방부 장관은 "이제는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해야 하는지 묻는 나라는 없다"며 시기의 문제만 남았다고 말했다.
경제적·군사적 지원도 쏟아졌다.
나토에서 만난 주요 7개국(G7) 정상들은 이번 전쟁이 끝난 뒤에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을 저지할 수 있도록 더 많은 방공시스템과 장거리 미사일, 전투기, 훈련 지원, 정보 공유, 사이버 기술 원조 등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우크라이나의 경제 안정과 회복을 돕겠다고 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G7이 우크라이나 안보를 위한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프로그램을 약속한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면서 "러시아가 버티기만 하면 서방의 결의가 무너질 것이라는 믿음을 깨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밖에 독일의 7억유로(약 9천962억원) 규모 군사 원조 패키지와 11개국이 지원하는 F-16 제트기 조종 훈련 프로그램 등도 우크라이나가 챙긴 선물이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마음이 누그러진 듯 12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나 아낌없는 지원에 감사를 표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과의 기자회견도 실망한 표정이 아닌 신중하고 진지한 태도로 임했다.
다만 나토 가입을 원한다는 재촉 메시지는 끊임없이 전달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성명에서 "안보 상황이 진정되는 대로, 간단히 말해 전쟁이 끝나는 순간 나토에 합류할 것으로 믿는다"고 강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3일 밤 나토 정상회의 일정을 마무리하며 소셜미디어에 올린 화상 연설에서는 "독립 이후 처음으로 우크라이나는 나토에 가입하는 안보 기반을 구축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G7이 약속한 안보 보장에 대해 "이전에는 절대 가져보지 못했던 것"이라고 환영했다.
또 나토 가입 여부에 대해서도 "어떤 의심이나 모호함도 제거했다"며 "그렇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abb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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