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격 높일 ‘K-라이스벨트’[뉴스와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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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종학자 한상기 박사(전 미국 조지아대 명예교수)는 우리나라보다 아프리카에서, 아니 세계에서 더 이름이 알려진 학자다.
개량 카사바를 아프리카 전역에 보급하는 데도 힘써, 해당 품종은 41개 아프리카 국가(2020년 기준)에 보급됐다.
그랬던 우리나라가 한 박사의 활동 당시 아프리카에선 더 이상 가난한 나라가 아닌 대륙을 기근에서 구한 농학자를 배출한 국가로 알려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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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종학자 한상기 박사(전 미국 조지아대 명예교수)는 우리나라보다 아프리카에서, 아니 세계에서 더 이름이 알려진 학자다.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평생을 바친 종자연구 정리에 여념이 없다. 최근에도 본인의 연구와 삶을 담은 자전적 내용의 신간을 내기도 했다. 코로나19가 창궐하던 시기 그의 수원 광교 자택을 방문했을 때도 종자연구가 왜 중요한지에 대해 역설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좁은 오피스텔 책장을 빼곡히 채운 메모 책자와 사증 도장을 찍을 자리가 없어 외교부에서 1m 가까이 되는 별도 페이지를 만들어 발급한 낡은 여권들은 인상적이었다. 수첩 기록이 일상이고, 취재로 외부를 돌아다니는 게 일과인 기자도 그렇게 하라면 못했을 것이다. 그런 그의 오랜 노력은 병충해에 강한 카사바를 탄생시켜 기아에 허덕이던 아프리카 대륙에 먹거리를 제공했다. 그는 나이지리아의 주식인 카사바를 병충해에 강하고, 마른 땅 어디에서도 잘 자랄 수 있도록 개량·보급해 기근의 땅에서 ‘식량혁명’을 일으킨 주역이다. 그의 개량 카사바는 다른 품종들의 개량형과 달리 병충해 저항력이 단기간에 그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개량 카사바를 아프리카 전역에 보급하는 데도 힘써, 해당 품종은 41개 아프리카 국가(2020년 기준)에 보급됐다.
한 박사의 생애를 살펴보면 한 인간의 헌신과 열정이 얼마나 위대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실감한다. 낯선 대륙에 희망과 감동을 주고 동북아 작은 나라였던 대한민국에 대한 긍정적 인상을 남겼음이 분명하다. 실제로 이런 공헌 덕분에 나이지리아 요루바족 이키레 마을은 1983년 한 박사를 추장으로 추대했으며, 그는 ‘세레키(현지어로 왕)’라고 불리기도 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까지 세계는 한국을 몰랐다. 그 이름도 생소했거니와, 일부 아는 사람은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가난한 나라’라고 인식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랬던 우리나라가 한 박사의 활동 당시 아프리카에선 더 이상 가난한 나라가 아닌 대륙을 기근에서 구한 농학자를 배출한 국가로 알려졌었다. 그의 업적은 그래서 더 위대하다. 한국의 국격은 이런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력이 더해져 지금에 이르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얼마 전 정부가 ‘K-라이스벨트’ 사업에 시동을 걸었다. 지난 10일엔 사업에 관심을 보이는 아프리카 8개국의 장관급 대표가 한국을 찾았다.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세계에서 위상을 재정립하는 한국으로선 아프리카에 대한 쌀 지원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대외원조 사업이다. 국내선 남아도는 쌀을 정쟁 수단으로 삼았지만, 쌀은 여전히 주요 먹거리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인 한국의 국격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수단은 대외원조다. 중국처럼 자본을 대거 투입해 사업권과 이자를 뜯어내는 제국주의적 약탈 원조가 아닌 ‘한상기식’의, 오랜 기간 그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배고픔을 해결해주는 방식처럼 존경받고 국격을 높이는 대외원조가 돼야 한다. 단기적 이익에 집착하지 않고 한국의 농업기술과 식문화를 전파할 수 있는 계기로서 K-라이스벨트 사업이 추진되길 기대한다. 대외원조는 시장이 아닌 친구를 만드는 일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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