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이끈 템플기사단은 스위스 은행의 원조"

송광호 2023. 7. 13.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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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기사단은 신비로운 존재다.

책은 템플기사단 외에도 사회적 불공평을 없애려 노력한 고대 그리스의 개혁, 초인플레이션 탓에 멸망한 로마제국의 경제사, 유럽을 약탈했지만 동시에 유럽의 경제를 발전시킨 바이킹족, 왕실은 가난해지고 영주만 부유해진 아이러니한 중세의 경제 상황, 한때 유럽을 제패했으나 국가 기간산업을 육성하지 않아 몰락한 스페인의 침몰 과정, 재정 파탄으로 촉발한 프랑스혁명, 제1차 세계대전을 둘러싼 영국과 독일의 금융전쟁 등 경제와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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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금융학자들이 쓴 신간 '세계사의 향방을 가른 금융의 힘'
중세 기사들의 전투 모습 재연 [EPA=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템플기사단은 신비로운 존재다. 십자군의 중심으로 예루살렘을 탈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 기사단은 14세기 초 와해했다. 갑작스러운 몰락은 여러 전설을 낳았고, 이들의 이야기는 게임, 영화, 소설 등으로 확산하며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

중국의 유명 금융학자인 천위루와 양동이 함께 쓴 신간 '세계사의 향방을 가른 금융의 힘'(사이)도 템플기사단의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책에서 템플기사단은 중세 아랍의 암살자 집단 '어쌔신'의 라이벌 조직도, 용맹한 기사도, 신실한 종교인도 아니다. 저자들이 묘사한 템플기사단은 조직적인 금융가집단이다.

스위스의 한 은행 [EPA=연합뉴스]

템플기사단은 십자군 참전을 위해 1119년 조직됐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침공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재물을 수중에 넣었다. 성지를 참배하러 오는 이들에게서도 이득을 챙겼다. 셀주크튀르크의 반격에, 예루살렘에서 쫓겨난 그들은 전장에 나서는 대신 금융업에 투신했다. 교황과 왕실로부터 돈을 받아 그 돈을 밑천으로 새로운 십자군에 대출해주기 시작한 것이다. 당대 기사들은 방패와 갑옷, 무기, 말 등을 모두 자기 비용으로 구입해야 했기에 많은 돈이 필요했다.

십자군 원정이 여러 차례 진행되는 동안 템플기사단의 사업은 번창했다. 유럽과 중동 지역에 걸쳐 분점만 1천100곳에 이르렀다. 원정에 참여한 기사들은 템플기사단의 분점에서 증명서 한 장으로도 쉽게 현금으로 바꿔쓸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반 상인들도 기사단의 송금체제를 이용했다. 프랑스와 영국의 영주들도 기사단에 거액을 빌렸다.

유럽의 고성 [연합뉴스 자료사진]

템플기사단의 이런 성공에는 '예금자의 허락 없이는 누구에게도 돈을 인출해주지 않는다'는 명확한 원칙이 있었다. 예컨대 템플기사단은 프랑스왕 루이 9세가 적에게 붙잡히자 보석금 마련을 위해 왕의 예탁금 환급을 요구한 프랑스 신하들의 요청을 거절했다. 저자들은 이 같은 템플기사단의 원칙이 오늘날 고객 당사자 이외에는 그 누구도 돈을 인출할 수 없게 한 스위스 은행 내규의 원조 격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이 같은 명확한 원칙과 시장의 신뢰 속에 승승장구하던 템플기사단은 프랑스왕 필리프 4세의 뜬금없는 체포령으로 멸문의 길을 걸었다. 필리프 4세는 1307년 10월 18일 금요일, 우상숭배와 동성애 등을 이유로 기사단 138명을 체포했고, 기사단이 소유한 동산과 부동산을 압류했다. 이는 금융업계에서 아무런 예고 없이 갑자기 찾아오는 재난을 의미하는 '검은 금요일'이란 말의 기원이 됐다.

전쟁 등으로 돈이 궁했던 필리프 4세는 템플기사단이 보유한 막대한 자산을 노렸으나 그가 획득한 돈은 기사단 자산의 극히 일부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의 자산은 숨진 단장의 조카가 가져가 몰래 숨겼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때문에 여전히 기사단의 보물창고를 찾으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고, 각종 대중매체에서도 기사단이 남긴 유산을 다루고 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책 표지 이미지 [사이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책은 템플기사단 외에도 사회적 불공평을 없애려 노력한 고대 그리스의 개혁, 초인플레이션 탓에 멸망한 로마제국의 경제사, 유럽을 약탈했지만 동시에 유럽의 경제를 발전시킨 바이킹족, 왕실은 가난해지고 영주만 부유해진 아이러니한 중세의 경제 상황, 한때 유럽을 제패했으나 국가 기간산업을 육성하지 않아 몰락한 스페인의 침몰 과정, 재정 파탄으로 촉발한 프랑스혁명, 제1차 세계대전을 둘러싼 영국과 독일의 금융전쟁 등 경제와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진이 옮김. 532쪽.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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