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오른 현대百, 정지선 회장 일가만 공개매수 참여할 듯… 대주주 평가손실 불가피
지주사 전환 위해 공개매수 추진 영향
공개매수가 낮아 소액주주는 외면할 듯
정지선 회장 일가 단독 참여 가능성도
12일 종가 기준 180억원 넘는 손실 예상
정부 조세 특례로 양도차익 과세는 이연
주요 기관투자자들이 현대백화점 주식을 집중 매수하면서 이 회사의 주가가 이달 들어서만 15% 가까이 급등했다. 개인투자자는 주식을 매도하고 있지만, 기관은 현대백화점 상승에 베팅했다.
현대백화점의 주가가 상승하는 배경은 다소 복잡하다. 현대백화점은 그룹 지주회사인 현대지에프홀딩스가 지분 12%가량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정지선 회장과 정몽근 명예회장 등 일가가 20% 가까이 보유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지주회사 현대지에프홀딩스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계열사 현대그린푸드에서 분할된 회사이고, 그러다 보니 자금 여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증권시장 일각에서는 지주회사는 아예 현대백화점 지분을 팔아버리고, 정지선 회장이 별도로 보유하는 법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었다. 즉, 현대지에프홀딩스가 현대백화점 지분 공개매수를 선언하면서 이 같은 ‘불확실성’이 해소된 것이다.
지배구조의 안정성이 강화되는 것이 기관투자자 투자 심리를 개선한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주가가 너무 빠르게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기관의 투자 때문에 그룹이 제시했던 공개매수 가격보다 주가가 8% 가까이 올랐다. 주가가 이 상태로 고공행진을 하면 소액주주 대상 공개매수가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렇게 되면 정몽근 명예회장과 정지선 회장 등 최대주주 일가만 헐값에 현대백화점 주식 공개매수에 응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이 경우 수백억원의 평가손실이 예상된다. 다만 정지선 회장 일가가 현대백화점 주식을 현대지에프홀딩스 주식으로 교환하면서 양도차익에 대한 세금은 이연된다. 이같은 혜택 때문에라도 정 회장 일가는 다소 속이 쓰리지만 공개매수에는 응할 전망이다.
13일 금융감독원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12일 현대백화점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3.62%(1900원) 오르며 장을 마쳤다. 종가는 5만4400원이다. 장 중에는 전 거래일보다 4.38% 상승한 5만4800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현대백화점이 장중 4% 이상 움직인 것은 지난 1월 9일 이후 처음이다.
특히 기관투자자가 현대백화점에 베팅했다. 12일 하루에만 14만1265주(76억5500만원)를 순매수했다. 현대백화점은 기관이 이날 순매수한 종목 중 13번째로 순매수 금액이 많은 종목이다. 개인이 14만8307주를 순매도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주가는 지난달 마지막 거래일인 6월 30일에 4만7550원까지 하락하며 52주 신저가를 경신한 후 반등을 시작했는데, 보름도 안 돼 14.7%(6850원)가 올랐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기관투자자의 적극적인 매수를 현대백화점그룹이 추진하고 있는 지배구조 개편에 따라 동시에 진행되는 현대백화점 공개매수와 현대지에프홀딩스 유상증자의 영향이 적지 않다고 본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지난 6일 지주회사를 현대지에프홀딩스로 단일화하기 위해 현대백화점 주주를 대상으로 상장주식의 20%(466만9556주)를 공개매수하기로 했다. 현대지에프홀딩스는 지난 3월 지주회사로 출범했다.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는 상장사인 자회사 또는 손자회사 지분을 30% 이상 보유해야 한다. 최장 2년간의 지분 정리 유예기간이 주어지는데 이 기간 안에 지분율을 높여야 한다. 그런데 현대지에프홀딩스는 현대백화점 지분을 12.05%(281만9226주)만 보유하고 있어 법의 저촉을 받는 상태였다.
서민호 한국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공정거래법을 지키기 위해 지분율을 높이거나 아니면 이 지분을 제삼자에게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이번 지주사 유상증자와 현대백화점 공개매수를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해니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지주사가 보유한 지분을 매각하는 것 아니냐는 잠재적 매도 대기 물량에 대한 우려도 주가가 오르지 못하는 이유였는데 이번 공개매수로 이런 우려가 해소됐고 주가가 오르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공개매수는 오는 8월 11일부터 9월 1일까지 청약을 받는다. 1주당 5만463원의 주가로 평가해 주식을 받은 후 현대지에프홀딩스가 발행할 신주로 바꿔주겠다는 것이 그룹의 계획이다. 아직 현대지에프홀딩스의 신주 발행 가액이 결정되지 않았지만, 현재의 주가로 보면 현대백화점 1주를 공개매수 신청하면 현대지에프홀딩스 주식 14주가량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주가 상승은 오히려 현대백화점그룹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그룹이 공개매수가 결정된 지난 6일 제시한 1주당 공개매수 가격은 5만463원이었다. 12일 종가(5만4400원)보다 7.8%(3937원)나 낮은 금액이다. 하반기부터 면세점 매출 회복 등으로 이익마저 개선될 것으로 전망돼 주가는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소액주주 입장에서는 굳이 헐값에 공개매수에 응해 현대지에프홀딩스 주식으로 교환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
더구나 개인투자자는 공개매수에 응하면 이익의 22%를 양도차익으로 내야 한다. 지금 시세보다 7% 넘게 낮은 가격에, 그것도 본인이 직접 양도세를 신고한 이후 납부해야 하는데 굳이 증권사 지점을 방문해 공개매수에 참여하는 개인은 없을 것이라는 게 증권가의 추측이다.
이렇게 되면 최대주주 일가가 보유한 현대백화점 지분만 공개매수에 응할 가능성이 높다. 정몽근 명예회장은 현대백화점 지분 2.63%(61만6644주)를, 정지선 회장은 17.09%(399만8419주)를 보유하고 있다. 정 명예회장과 정 회장의 합산 지분율은 19.72%라서 공개매수 목표 지분인 20%를 대부분 채울 수 있고 공정거래법상 최소 지분율인 30%도 무난히 충족할 수 있다.
이와 관련 현대백화점그룹 관계자는 “현재 대주주의 참여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고 다른 지주사의 현물출자 과정에서도 대주주가 보유하고 있는 지분 전량을 참여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현대지에프홀딩스가 발행하는 신주는 현대백화점의 공개매수 수량에 따라 변할 수 있다”라며 “일반 주주 참여가 늘어나면 그만큼 최대주주 등 특수관계인의 지분은 희석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대주주 일가는 공개매수 참여와 동시에 적잖은 손해를 봐야 한다. 공개매수가(5만463원)를 기준으로 정 명예회장과 정 회장이 보유한 현대백화점 주식 전량(461만5063주)을 반납하고 이들이 지주사 주식을 받으면 12일 종가 기준으로 추산해도 181억6900만원(1주당 3937원)가량의 평가손실이 발생한다. 주가가 더 올라가면 평가손실액은 더 커질 수 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공개매수와 유상증자를 공시하기 전 5거래일(6월 29일~7월 3일)간의 가중산술평균주가를 기준으로 현대지에프홀딩스의 신주 발행가액을 1주당 3605원으로 정했다. 이 가격이 큰 변화가 없으면 현대백화점 주식 1주를 5만463원에 반납하면 현대지에프홀딩스 주식을 14주(13.9980583주)가량 받는다. 앞으로 현대백화점 주가가 아무리 올라도 공개매수 가격이 정해졌기에 지주사 주식을 더 많이 받을 수는 없는 셈이다.
다만 정 회장 일가는 세금 이연효과의 혜택은 톡톡히 누릴 수 있다. 현행 세법에 따르면 대주주 일가 등이 현물출자로 지주사로 전환할 때 세금 이연효과가 발생해서다.
원칙적으로 현물출자는 그 양도차익(최대주주가 수령한 지주회사 주식 시가-출자한 자회사 주식 취득가)에 대해 법인세와 양도소득세가 부과된다. 대주주의 경우 국내주식 등 양도차익 과세표준이 3억원을 초과하는 경우 25%를 양도세로 부과(1년 미만 30%)한다. 그러나 정부는 올해말까지 지주회사 전환시 현물출자 양도차익 발생분에 대해 대주주가 출자로 취득한 지주사 주식을 처분할 때까지 과세를 이연해주는 조세특례를 적용한다. 정 회장 일가가 새로 취득하는 현대지에프홀딩스 지분을 매각하기 전까지는 과세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현대백화점 주가가 오르더라도 공개매수 가격을 올릴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안다”라면서 “처음부터 소액주주들이 대거 공개매수에 참여하는 것보다 정지선 회장과 정몽근 명예회장 등 최대주주 일가만 참여해 지배구조를 단일화하고 정리할 목적이 컸던 것으로 안다”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소액주주 참여 여부와 관계없이 지배구조를 단일화하고 법적 리스크를 제거하는 게 더 중요한 상황이어서 정 회장 일가가 참여하지 않을 수는 없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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