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노조 19년만 총파업 돌입···인력기준 마련·간병비 해결 요구
간호사와 요양보호사 등 다양한 의료 종사자들이 속해있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13일 총파업에 돌입했다. 노조는 간호인력 적정기준 마련과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 등 공공의료 확충을 요구했다. 파업 영향으로 일부 병원에선 진료차질을 빚었으나 병원마다 파업 참여 규모가 달라 전국적인 ‘의료 대란’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부는 노조의 파업이 “국민을 겁박하는 것”이라며 철회를 촉구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이날 오전 7시부터 전국 127개 지부 145개 사업장(의료기관)에서 조합원 4만5000여명이 참여하는 산별총파업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파업 사업장은 사립대병원지부 29곳, 국립대병원지부 12곳, 특수목적공공병원지부 12곳, 대한적십자사지부 26곳, 지방의료원지부 26곳 등이다. 이른바 ‘서울 빅5’ 병원(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신촌세브란스,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은 파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서울의 경희대병원, 고려대 안암병원, 고려대구로병원, 이대목동병원, 한양대병원과 경기의 아주대병원, 한림대성심병원 등 전국 20곳 안팎의 상급종합병원은 동참했다.
노조는 파업 첫날인 이날 오후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총파업대회를 열었다. 폭우 속 집회에 2만여명(주최측 추산·경찰 추산 1만7000명)이 집결했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대회사에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진 주무부서가 어떻게 이렇게 무책임할 수 있냐”며 “‘국민들의 간병비 고통 해결하자’, ‘국민 생명을 살려낸 공공병원 살려내자’라는 것을 정치파업이라고 한다면 이런 정치파업은 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오후 3시 같은 장소에서 열린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 합류해 집회를 이어갔다. 이어 14일에는 서울, 부산, 광주, 세종 등 4곳의 거점 지역에서 집회를 연다.
보건의료노조의 총파업은 2004년 이후 19년만이다. 노조는 2021년 ‘9·2 노정합의’를 통해 추진하기로 한 사안들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며 파업에 나섰다. 구체적으로는 비싼 간병비 해결을 위한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 확대, 환자 안전을 위한 간호사 대 환자 비율 1:5 제도화와 적정인력 기준 마련, 무면허 불법의료를 근절하기 위한 의사인력 확충, 필수의료 책임지는 공공의료 확충, 코로나19 전담병원 정상화를 위한 회복기 지원 등이다. 노조는 이런 요구안을 내걸고 지난 5월부터 사측과 교섭했지만 타결에 이르지 못했다.
총파업 기간에도 응급실, 수술실, 중환자실, 분만실, 신생아실 등 환자 생명과 직결된 업무에 종사하는 필수인력은 파업하지 않는다. 노조는 또 의료기관 내 응급상황에 대비해 응급대기반(CPR팀)을 구성해 가동 중이다.
일부 병원은 수술 연기 등 의료차질···‘강경 대응’하겠다는 복지부
파업 규모가 큰 만큼 일부 병원에선 진료에 차질이 빚어졌다. 국립중앙의료원은 이날 홈페이지에 “빠른 예약 업무가 부득이하게 지연될 수 있다”고 공지했다. 국립암센터도 13~14일 이틀간 예정된 수술 일정을 모두 미뤘다.
전국에서 가장 파업 참여율이 높은 병원으로 꼽히는 부산대병원과 양산부산대병원에선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거나 퇴원한 환자 수만 각각 1000명에 달했다. 간호사·간호조무사·임상병리사 등 의료직군뿐 아니라 미화나 시설 등 지원업무를 담당하는 조합원들도 대거 파업에 참여했다. 양산부산대병원 관계자는 “현장에 남아있는 직원들이 거의 없을 정도라 정상적인 운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필수·응급의료 인력이 남아있긴 하지만 그 역시 제 역할을 다하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합원 4분의 1이 파업에 참여한 전북대병원은 일부 수술을 연기하는 등 비상 진료 체계에 들어갔지만 원광대병원과 군산·남원·진안의료원 등은 정상 운영 중이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의료원 산하의 병원마다 100여명 정도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 중”이라며 “현장에서 진료에 차질이 빚어질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보건의료노조 파업 관련 현안점검회의를 마친 뒤 “보건의료노조가 민주노총의 파업 시기에 맞춰 정부 정책 수립과 발표를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며 “노조의 합법적인 권리행사는 보장하지만, 정당한 쟁의행위를 벗어나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막대한 위해를 끼칠 경우 법과 원칙에 따라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도 이날 오전 YTN 라디오에서 “노조가 정부에 당장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라는 것은 국민을 겁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는 13~14일 이틀간 파업을 하고 요구사항이 수용되지 않으면 17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복지부는 이날 자체위기평가회의를 열고 보건의료재난 위기경보를 ‘관심’에서 ‘주의’ 단계로 상향했다. 박 차관은 “필요하다면 업무개시 명령에 대해서도 면밀히 검토해나가겠다”고도 했다.
민서영 기자 mins@kyunghyang.com,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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