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교육 탐방] ① 코펜하겐의 학교들 "학교는 공동체다"
팬데믹 이후 봉쇄되고 개인화된 교육 현실 대책 골몰
[※ 편집자 주 = 연합뉴스는 세이브더칠드런, 연세대 산학협력단과 함께 지난 4월 팀을 꾸려 호주와 덴마크에서 아동의 균형적인 성장과 발달을 위한 전인 교육의 현장을 탐방했습니다. 공동체 문화를 중시하고, 교육의 웰빙 등을 추구하는 선진 교육 사례를 성취 중심의 개인주의적 한국의 교육 문화 개선을 위한 본보기로 제시하기 위해 3건의 기사로 송고합니다.]
(코펜하겐·캔버라=연합뉴스) 이동경 성도현 기자 =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육아 명언으로 흔히 인용되는 아프리카 속담을 효율적으로 구현하는 나라가 북유럽의 선진국 덴마크다.
지역 사회와 학부모가 아이들 교육에 능동적으로 참여함으로써 '학교는 커뮤니티'(community·공동체)라는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
덴마크의 국민 행복지수가 세계 1,2위를 오르내리는 이유가 근본적으로 이러한 교육 체계에서 비롯됐을 수도 있음을 짐작게 한다.
수도 코펜하겐 인근에 있는 초등·전기중등학교인 팅비에르 스콜레의 교장 마르코 담고르는 "학교는 건물이나 교실과 같은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학교는 교사, 학부모, 지역 사회가 학생 개개인이 직면한 어려움과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기 위해 동참하는 공동체"라고 정의했다.
교사, 학부모, 지역사회 3주체의 상호 작용이 핵심이다.
말 그대로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동원된다.
한 학생이 잘못을 저지르면 학부모가 교사와 함께 적극 참여해 문제 해결을 도모한다.
어려움을 겪는 학생이 공동체의 지원을 받으며 성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학생들에게 자신의 책임과 협력의 가치를 어릴 때부터 심어주게 된다고 팅비에르 스콜레는 설명했다.
호주 캔버라의 이저벨라 플레인스는 유아교육과 초등학교 저학년 교육이 결합한 형태의 학교다.
이 학교는 '키즈 호프'(kids hope)라는 독특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지역의 교회 청소년들이 매주 한 차례 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의 점심을 차려 같이 먹으면서 정서적인 안정에 어려움을 겪는 아동들과 '1대1 멘토'를 제공한다.
특히 이 학교의 '그랜즈 프로그램'(grands program)이 이채롭다.
지역사회의 요양시설에 거주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자원봉사자로 학교에 방문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학습활동도 함께 한다.
이저벨라 플레인스는 이를 '세대 간 경험, 돌봄과 정서의 공유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시몬스 교장은 이 학교를 "모든 아이가 성장하고 소속감을 느끼는 배움의 장소"라고 정의한다.
코펜하겐 중심부에 있는 공립학교인 뤼센스텐 귐나지움(한국의 고등학교급)에서는 글로벌 시티즌십 프로그램(GCP)을 운영한다.
GCP는 학생들이 스스로 세계시민으로 인식하게끔 국제적인 맥락에서 학습 과정과 결과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이 학교는 세계 각국의 14개 학교와 파트너십을 체결해 실질적이고 생동감 있는 세계시민교육을 운영한다.
코펜하겐에서 200km 떨어진 올레룹 지역에 있는 자유학교인 베르테르 스케르닌케 프리스콜레에는 유치원생부터 9학년까지 다닌다.
이 학교는 매일 아침 200명의 학생과 교사 모두가 강당에 모여 모닝 어셈블리(morning assembly), 즉 조회를 하면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
학생과 교사 모두가 계단식 의자가 있는 강당에 층층이 앉고 교사의 피아노 연주에 맞춰 저학년부터 고학년까지 하나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학부모도 몇몇 눈에 띄었다.
탐방팀도 함께 앉아 그들의 활기찬 조회 모습을 지켜봤다.
이 학교는 저학년과 고학년이 짝을 이뤄 놀이기구를 타는 등 쉬는 시간을 활용하도록 장려한다.
공동체 내에서 관계를 형성하고 갈등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배우는 법을 익히는 데 여러 노력을 기울인다고 토마스 비스뷔 교장은 설명했다.
비스뷔 교장은 "학교는 학부모, 교직원, 학생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시민사회(civil society)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이 학교 학비의 76%는 정부가 지원하지만, 나머지는 학부모가 부담한다.
학부모 중에서 학교 이사회의 구성원이 선출되고, 이들은 교장 임용, 교육 내용 선정 등 학교의 크고 작은 결정에 권한과 책임을 가진다.
학부모들은 조회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시설 보수 등 일손이 필요하면 적극적으로 돕는다.
이러한 '함께하기'(togetherness)는 올레룹에 있는 자유학교 교원 양성기관인 덴 프리 레레스콜레에서도 중시하는 가치다.
이 기관에 재학 중인 예비교사 3명과 탐방팀이 인터뷰하던 중 전인 교육을 위해 교사가 배워야 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망설임 없이 '공동체'라고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이 기관도 조회 시간에 모여 노래를 하는 것이 일과의 시작이고, 점심시간에는 모든 학생과 교직원이 함께 식사한다.
탐방팀도 함께 한 식사시간은 활기차고도 유쾌했다.
'함께하기'는 교과 과정에도 적용된다.
덴 프리 레레스콜레 학생들은 졸업 전에 그룹 소논문을 작성하는데, 초점은 '소논문'이 아닌 '그룹'에 있다.
원하는 주제에 대해 함께 공부할 동료가 없다면 해당 주제를 포기하고 어느 그룹에든 소속돼야 한다.
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고집하기보다는 기대하지 않은 일에서도 협력하고 타협할 줄 아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브릿 스토크홀롬 교장은 "이러한 체계에 대해 처음에는 다소 불만이 있었지만, 끝난 뒤에는 함께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는 학생이 여럿 있었다"고 했다.
전인 교육을 지향하는 선진 국가의 교육 당국은 팬데믹 이후 사회적 고립으로 인해 개인화로 치닫는 현상을 치유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소셜미디어(SNS)의 홍수 속에서 코로나19라는 팬데믹을 거치며 공동체라는 가치가 상실되고 있는 데 따른 위기감이 반영됐다.
스코트홀름 교장은 SNS 등 온라인 소통의 확산과 코로나19 이후 사회적 고립 등으로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많다고 진단했다.
학생들이 공동체나 사회적 관계에 대한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호주 ACT주 교육부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봉쇄를 겪은 뒤 학생들의 웰빙 문제가 두드러지게 강조되고 있다고 한다.
교육부는 학교별로 상담가, 심리전문가, 청소년 지도사, 사회복지사 등으로 구성되는 웰빙팀을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일부 고등학교에는 간호사를 파견해 학생들의 정신 회복 등 건강을 보살피고 있다.
캔버라에 있는 성공회 계열의 사립학교인 레드퍼드 칼리지는 3명의 전문 심리상담사를 배치해 웰빙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팬데믹 이후 학생들이 겪는 심리적 불안이나 우울증, 섭식 장애 등의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목표다.
비스뷔 교장은 "팬데믹 이후 사회가 잃어버린 것들, 개인화된 사회에서 교육이 가진 가치를 다시 살펴봐야 한다"며 "무엇보다 '함께하기'를 재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hopem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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