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력존엄사의 인권적 쟁점과 대안은?

박효순 기자 2023. 7. 13. 09:5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조력존엄사(의사조력사)의 인권적 쟁점과 대안에 관한 토론회가 국가인권위원회 주최로 12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센터에서 열렸다.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가 원하면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는 조력 존엄사 법안이 발의된 지 1년을 맞아 열린 이번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품위 있는 죽음(웰다잉)이 제대로 정착하려면 임종을 앞둔 말기 환자를 대상으로 호스피스의료를 확대하는 등의 사회적 안전망 확대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뉴시스> 등의 보도에 따르면,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한국건강학회 이사장)는 조력존엄사 입법화 추진을 통한 사회적인 웰다잉 논의가 필요하다며 사회적 안전장치 마련, 호스피스·연명의료결정 확대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윤 교수는 “규제 중심의 연명의료결정과 ‘협의의 웰다잉’(호스피스 및 연명의료 결정)에서 벗어나 국가적 차원에서 ‘광의의 웰다잉’(호스피스·연명의료 결정 확대·독거노인 공동 부양 등)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대전환 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이지효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은 여명이 얼마 남지 않은 말기 환자에 한해 조력존엄사를 법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건강보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연구관은 “이미 연명의료중단 논의에서 스스로 인생을 마감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져 충분한 사회적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돼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면서 “다만 의사조력자살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의료보험 제도를 개선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석배 단국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교수는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강조하면서도 경제력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갖춰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임종기 이전 환자라도 의료 행위를 거부하는 경우 의사를 존중해야 하는 것은 자기 결정권의 핵심”이라면서 “환자의 상태와 관계없이 자기 결정권을 온전히 보장하는 것부터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선 의료비 때문에 가족이 연명의료중단을 요청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의료비 걱정 없이 연명의료 지속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했다.

박은호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장은 해외에서 조력존엄사를 법제화한 사례들이 있긴 하지만, 조력존엄사는 인권 향상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며 입법을 반대했다. 박 소장은 “발전된 국가는 모든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받고 힘없고 가난한 이들이 쉽게 삶을 포기하거나 도구화되지 않는다”면서 “의사조력자살과 안락사를 마지막까지 법제화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우리나라의 전통과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율리 도쿄대 박사(사생학·생명윤리전공)도 “의사조력자살이 허용되면 애초 취지와 달리 최후수단이 아닌 조기개입 수단으로 변질될 우려가 충분히 있다”며 조력존엄사 입법화를 반대했다. 그러면서 말기 환자를 돌볼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 확충이 시급하다고 언급했다. 김 박사는 “말기 환자에 대한 의료시설, 재정적 지원이 부족한 한국의 현실에서 과연 의사조력자살이 선택 가능한 치료가 되어도 되는가, 자살이 환자가 합법적으로 의료체계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되어도 되는가” 라고 반문했다.

조력존엄사 입법 추진에 앞서 사회적 공론화가 더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백수진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생명윤리센터장은 “사회적 공론화가 없는 성급한 법제화는 우리 사회 또는 국가의 안전망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고 돌봄을 제공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또 다른 인권의 사각지대만을 양산하게 될 것이라는 비판과 우려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

■윤영호 교수 주제발표 요약

―의사조력사망에 대해 종교계와 의료계가 말기환자의 남은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하며,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죽음을 강요하는 ‘사회적 타살’의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지만, 정치, 종교, 양심의 자유를 존중하듯이 말기환자의 참기 힘든 고통으로 인한 비참한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자발적이고 합리적이며 진정성 있는 개인의 선택을 옳고 그름의 판단이나 죄와 벌로 단죄할 것이 아니라 존중해주어야 한다.

―회복 가능성이 없고 해결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 말기환자의 경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자발적이고 합리적이며 진정성 있는 의사결정에 의한 절차를 통해 담당 의사의 조력을 받아 자신이 스스로 삶을 종결할 수 있도록 하는 조력존엄사 입법화는 헌법 제 10조에 근거한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를 위한 자기 결정권을 보장하는 헌법적인 요구이며 휴머니즘의 구현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호스피스 부족과 질병 종류에 따른 호스피스 선택권 제한과 말기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지 않는 법체계는 헌법정신에 위반된다는 취지로 헌법재판소에 헌법 위반 의견을 제출해야 한다.

―호스피스와 사회적 말기 돌봄 확대의 선행 주장은 시효가 끝났다. 책임있는 정부와 국회가 나서서 신속하고 정확한 죽음의 현실을 파악하고 의사조력사망과 웰다잉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국민의 존엄한 삶의 권리로서의 웰다잉에 대해 개인과 국가가 감당해야 할 책임의 사회적 합의에 따라 호스피스·연명의료결정 확대 등 광의의 웰다잉과 조력존엄사 법제화를 병행해야 한다.

―호스피스 이용과 연명의료중단결정시, 절감될 것으로 예상되는 건강보험 의료비를 재원으로 웰다잉기금과 재단을 마련해 호스피스 인프라와 취약계층 말기환자의 사회경제적 지원을 확대하고, 유산기부, 정신적 유산 남기기, 마지막 소원 들어주기, 생전 장례식 등의 광의의 웰다잉 문화를 확산하는 데 투자해야 한다.

―국민 여론조사결과처럼 국가가 책임지고 웰다잉을 필요로 하는 말기환자들과 그들의 마지막 생애를 돌보는 가족과 전문가들 그리고 봉사자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지원을 통해 국민의 품위 있는 죽음을 책임지는 국가를 만들겠다는 정부(대통령)과 국회(국회의장)의 공동선언이 필요하다.

박효순 기자 anytoc@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