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논단] 영아의 생명존중권에 대하여

정훈진 대전지방변호사회 회장 2023. 7. 13.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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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진 대전지방변호사회 회장

생명은 어떤 대우를 받아야 마땅한가. 생명을 잉태하는 것과 유지하는 것은 아직도 많은 부분이 미지의 영역에 속한다.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생명에 대한 존중은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져야 하는 가치이고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1년 전쯤에 '냉장고에서 발견된 아기'라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기사는 제목만 보기에도 잔혹하고 끔찍한 뉴스여서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 난다. 역사 속에서 전쟁이나 궁핍함이 더해지는 시기에 약자에게 강요되는 희생은 처절했고 그중에 영아들은 양육할 수 없어서, 경제적 능력이 없어서, 명예를 위해서, 신체적 결점 때문에, 심지어는 원하는 성별이 아니어서 등 희생의 이유는 다양했다. 자신을 방어하거나 표현할 수조차 없는 존재였던 영아는 오직 생명을 부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터라 그 희생의 숫자는 집계조차 어려웠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발표 자료에 의하면 출산자료는 있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193건에 대해 수사 중인데 이 중 11명은 이미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출생신고 되지 않은 모든 영아가 범죄의 대상이 되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상당수가 희생되었다고 추측된다. 영아는 범죄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전혀 없는 존재이고, 영아에 대한 범죄가 비교적 은폐하기 용이하기 때문일 것이다. 형법 제251조는 '직계존속이 치욕을 은폐하기 위하거나, 양육할 수 없음을 예상하거나, 특히 참작할 만한 동기로 인하여 분만 중 또는 분만 직후의 영아를 살해한 때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형법은 살인죄와 별도로 영아살해죄를 규정하고 있는데 살인죄의 법정형은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임에 반해 영아살해죄는 10년 이하의 징역으로 살인죄에 비하여 처벌이 가볍다. 영아살해죄는 1953년 형법 제정 당시부터 있던 규정으로, 살인죄에 비해 법정형을 감경한 근거에 대해서는 동기나 상황으로 인하여 행위자의 책임 비난이 감소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독일의 경우 1998년 형법 개정을 통해 영아살해죄를 폐지하였고, 영미법의 경우 특별히 영아살해에 대하여 살인죄를 적용하는데 미국은 영아 살해에 대해 엄벌주의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영아살해죄를 적용함에 있어 실무상 참작할 동기로 거론되는 사유를 살펴보면, 치욕을 은폐하기 위한 경우로서 강간으로 임신한 경우, 미혼모의 출산, 양육할 수 없음을 예상한 경우다. 이는 경제적 능력, 참작할 만한 동기로서 불구 또는 기형아 출산의 경우가 있으나 거론되는 어떤 사유도 갓 태어난 생명을 침해한 범죄인에 책임을 감경시켜 주기에는 합리성이 없고, 명분도 부족하다. 생명은 그 자체로 존중되어야 하고 상황이나 시기에 따라 달리 평가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영아에 대한 범죄를 사람에 대한 범죄와 달리 평가해야 할 합리적인 이유가 없고, 참작할 동기나 사정은 법원이 재판 과정에서 양형에 고려할 사항인 점에서 영아살해죄 규정의 법리적 또는 윤리적 존재 이유도 없다. 같은 이유에서 영아유기죄의 존재 이유도 없는 것이 명백하다. 영아에 대한 범죄를 감경하여 처벌하는 형법은 전쟁 직후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하던 시대적 유물인데 현재는 의료, 복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후견적 기능 등에 많은 발전이 이루어져 특별한 동기나 참작할 사유를 고려하여 책임을 감경하기에는 설득력이 없다. 인간의 생명은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없고 시간에 따라 달리 평가되어서도 안 되고, 그 존중에 선후를 가릴 수 없는 그 자체로 고귀하기 때문이다. 형법의 영아살해죄, 영아유기죄는 존재할 기초와 명분이 없으므로 삭제되어야 하고 생명은 영아, 어린이, 장애인, 노인 구별하거나 그 가치를 평가함이 없이 그 존재 자체로 동일한 생명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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