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깡의 수렁]② 처벌 두려워 음지로 숨는 피해자… “더 큰 피해 보기 전 신고해야”

김유진 기자 2023. 7. 1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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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명의 휴대전화 넘기면 법 위반
불법 조직 “신고 어차피 못 해” 적반하장
신고율 높이기 위해 법령 개정 주장
정부 “대포폰 부작용 더 클 수 있어” 반대
일러스트=이은현

휴대전화깡으로 불리는 ‘내구제대출’(나를 구원하는 대출)의 지난해 신고 건수는 단 7건에 불과했다. 휴대전화깡으로도 알려진 내구제대출의 피해는 청년층을 중심으로 발생하고 있지만,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신고 건수는 미미한 수준이다. 다른 불법사금융과 달리 피해자도 공범이 될 수 있다는 내구제대출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다. 금융·수사 당국에서는 “바퀴벌레 한 마리가 나타났다는 건 이미 엄청난 바퀴벌레가 산다는 것과 같은 이치다”라며 음지에 숨은 내구제대출에 대한 피해자가 다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13일 금감원에 따르면 감독 당국은 지난해 7건의 내구제대출 피해 신고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난해 금감원에 접수된 신고는 7건이지만,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7건이 신고됐을 때는 꽤 큰 피해가 있다고 봐야 한다”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전기통신사업법상 휴대전화를 개통해서 넘긴 사람도 형사처벌 대상이므로 신고를 한다는 것은 자수를 고려한다는 의미다”라며 “본인이 처벌을 받는 게 두려우니까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점이 다른 고금리·미등록 불법 사금융과는 차별화된 부분이다”라고 설명했다.

◇ “피해 봤는데 공범이라니”

추가 납부 금액이 거의 없다는 말에 현혹된 사람들은 내구제대출을 이용한 뒤 개통된 휴대전화을 불법업자에게 제공한다. 이들은 휴대전화 개통 시 받은 현금보다 수배에서 수십배의 통신요금·소액결제 비용 등의 부담을 지게 되고 나서야 내구제대출로 인한 피해를 알게 된다.

그러나 내구제대출을 실행한 이들은 내구제대출 업자와 ‘공범’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신고를 하지 않는 경향을 보였다. 현행 전기통신사업법상 돈을 받고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를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는 행위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구조적으로 내구제대출 피해자이지만, 가해자 취급을 받는 것이다. 이미 빚더미에 앉은 내구제대출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신고하고 싶어도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으로 벌금까지 물 수 있어 신고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일러스트=손민균

피해자가 내구제대출을 실행한 대리점 등에 연락해도 오히려 “본인 신분증으로 마지막에 직접 인증을 했으니 신고해도 별수 없다”라는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다수 있다. 내구제대출 피해 상담기관을 이용한 내구제대출 피해자 10명 중 6명가량이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피해자들은 보이스피싱 등 다른 범죄에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 등이 이용되고 나서야 피해를 인지하는 경우도 있다. 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에 따르면 내구제대출 이용자가 범죄 여부에 대해 인지를 하고 있는 비율은 29.9%에 그쳤다. 이들은 “내구제대출로 본인도 일부 이득을 취했기 때문에 피해라고 볼 수 없다”라며 자신이 내구제대출의 사기 피해를 보았다고 인지하지 못했다.

이러한 경우는 내구제대출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통장, 신분증 등의 정보와 개통한 유심(USIM)·휴대전화가 범죄 조직에 넘어가 보이스피싱 등 다른 범죄에 악용된 이후 수사기관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형사처벌 위기에 처한 뒤에야 피해 사실을 깨닫는 경우가 많다. 경찰청은 지난해 대포폰 적발 건수 5만3104건 중 다수가 내구제대출 과정에서 만들어졌다고 판단하고 있다.

◇ 신고율 끌어올려야 하지만 묘수 없어

내구제대출 피해자의 신고율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사실상 뾰족한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내구제대출 피해자의 신고를 끌어내기 위해 피해자를 공범으로 규정하는 전기통신사업법의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전기통신사업법의 경우 사업자 처벌을 위해 제정된 것이므로, 법 개정을 통해 내구제대출 피해자를 사기 범죄에 가담한 것이 아닌 불법사금융의 피해자로 인식하고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찰에 압수된 대포폰.

그러나 정부 입장에서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을 통해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를 넘긴 이들을 처벌하지 않을 경우 대포폰 등 범죄 가능성이 더욱 커질 것을 우려해 개정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친다. 정부 관계자는 “대포통장은 자금 세탁 등 범죄로 이용할 수 있어 금융 계좌 개설 등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라며 “휴대전화도 개인이 자유롭게 이용하지만 대포통장처럼 범죄에 이용될 수 있다는 부분이 문제다”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개인이 휴대전화를 만들어 자유롭게 (범죄조직에) 넘길 수 있게 법 개정을 통해 처벌 규정을 없애면 부작용이 더 클 것 같다”라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수사기관에서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자수를 하게 되면 처벌할 때 수사에 협력한 이들을 고려하는 측면이 있다”라며 “처벌을 하는 규정을 없애달라고 하는 것보다는 현 시스템에서 운용의 묘를 살리는 쪽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정부는 더 큰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내구제대출 피해자가 신고를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거래내역과 증빙자료를 확보해 금감원 불법사금융 피해신고센터나 경찰에 상담‧신고를 하는 편이 추가적인 피해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추가 피해가 우려된다면 수사기관에 적극적으로 신고하고 주변 피해사례를 확인한 경우 금감원이나 경찰에 적극 제보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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