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문 앞 기념촬영…아프간 향한 선교단, 2명은 돌아오지 못했다 [뉴스속오늘]

류원혜 기자 2023. 7. 13.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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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2007년 7월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됐던 한국 선교단이 탑승했던 버스./사진=뉴시스
16년 전인 2007년 7월13일.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샘물교회 배형규 목사와 교인 19명은 단기선교를 목적으로 분쟁 지역인 아프가니스탄으로 출국했다. 정부의 경고를 무시하고 여행 제한 국가로 향한 것이다.

14일 카불에 도착한 선교단은 현지에서 활동하던 한국인 선교사 3명과 합류했다. 이들 23명(남자 7명, 여자 16명)은 봉사활동 등 일정을 마치고 23일 귀국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19일 카불에서 남부 지역 칸다하르를 향해 버스 타고 이동하던 중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에 납치당했다.

탈레반 대변인은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된 한국군이 21일 정오까지 철군하지 않을 경우 인질들을 살해하겠다"고 협박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이들의 생환을 위해 많은 자금과 인력을 투입했지만, 결국 모두 다 살아 돌아오진 못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피랍 사건으로 기록된 이 사건은 배우 황정민과 현빈이 주연을 맡은 영화 '교섭'(2023)의 모티브가 됐다.
인질 2명 피살…'피랍 42일' 만에 나머지 21명 무사 귀환
영화 '교섭' 스틸컷.
한국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파견 한국군의 철군에 대해 "연말에 철수할 것"이라고 하자 탈레반은 새로운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22일까지 한국인 인질과 같은 수의 탈레반 수감자(포로)를 석방하라는 것이었다.

한국 정부 대책반은 22일 현지에 도착해 25일까지 협상을 하루씩 연장했다. 하지만 탈레반은 25일 협상이 결렬됐다며 배형규 목사(당시 42세)를 살해했다. 31일에는 심모씨(당시 29세)도 살해했다. 두 사람 모두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 탈레반은 수감자 석방에 대한 긍정적인 답이 없을 경우 나머지 인질들도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외교통상부는 8월7일 아프가니스탄을 여행 금지 국가로 지정했다. 10일에는 한국 정부와 탈레반의 대면 협상이 시작됐다. 탈레반과의 대치는 대면 협상 이후에야 해결될 기미가 보였다. 마침내 13일, 건강 상태가 좋지 않던 여성 인질 2명이 풀려났다. 피랍 25일 만이었다.

한국 정부는 "탈레반 수감자 석방은 권한 밖의 일"이라며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피랍자들을 석방해 달라고 요청했고, 협상이 타결돼 남은 인질 19명은 피랍 42일 만인 30일 모두 풀려났다. 이들은 9월2일 한국에 무사히 도착했다.
5가지 석방 조건에 합의…'몸값 지불' 여부는 분분
2007년 7월13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샘물교회에 모인 피랍자 가족들이 인터넷과 뉴스를 주시하며 석방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사진=뉴시스
한국·탈레반 협상팀은 석방 조건으로 5개 조항에 합의했다. △아프가니스탄 파견 한국군의 연내 철수 △아프가니스탄 내 비정부기구(NGO) 활동 한국인 8월 내 철수 △아프가니스탄 내 한국의 기독교 선교 활동 금지 △한국인 철수 과정의 안전 보장 △탈레반 수감자 석방 요구 철회 등이다.

당시 한국 정부가 협상 조건으로 인질들의 몸값을 탈레반에 지불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알자지라방송의 카불 특파원은 아프가니스탄 고위당국자 말을 인용해 "한국이 탈레반에 약 2000만파운드(한화 약 333억원)를 지불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로이터 통신은 "몸값으로 2000만달러(한화 약 260억원) 이상을 받았다"며 "무기를 구입하고 통신망을 재정비해 더 많은 공격을 위한 차량을 살 예정"이라는 탈레반 고위 인사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한 아프가니스탄 관계자는 일본 아사히 신문을 통해 "한국이 인질 석방 대가로 200만달러(한화 약 26억원)를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여행 자제' 경고문 앞 기념사진도…일방적 선교 활동에 비판
2007년 9월 기자회견을 갖는 아프가니스탄 피랍자들./사진=뉴시스
사건 이후에는 현지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개신교의 선교 활동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이미 사건 5개월 전에 외교통상부가 '탈레반이 수감자 석방을 위해 한국인을 납치한다'는 첩보를 입수, 아프가니스탄을 여행 제한 국가로 분류하고 방문 자제를 권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샘물교회는 이를 무시하고 단기선교 참가자를 모집해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했다. 선교단이 출국 당시 인천국제공항에 설치된 '아프가니스탄 여행 자제' 경고문 앞에서 브이(V) 포즈를 취하며 기념사진을 촬영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분이 일기도 했다.

2007년 9월9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샘물교회 앞에서 열린 '개신교 선교 방식 폐기 촉구' 기자회견에 참여한 시민들이 항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사진=뉴시스

정부가 희생자들 운구비용과 귀환자들 항공료, 치료비 등에 사용한 비용은 약 1억원으로 추산됐다. 이중 정부는 샘물교회에 약 6만2000달러(당시 한화 약 5693만원)를 청구했다.

사건 이후 3년이 지난 2010년 7월, 희생자 유족은 "정부가 여권 사용을 제한해 아프가니스탄 방문을 막았어야 한다"며 국가를 상대로 3억5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하지만 2011년 4월 법원은 "국가가 배상할 필요 없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류원혜 기자 hoopooh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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