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돌아보기] 학습정보 수집, 공론화가 필요하다
교육부가 지난 6월8일 AI디지털교과서(이하 디지털교과서) 추진 방안을 발표했다. 2025년 수학, 영어, 정보, 국어(특수교육) 교과에 우선 도입하고 2028년까지 국어, 사회, 역사, 과학, 기술·가정 등으로 확대한다고 한다. 디지털교과서를 개발하기 위해 교육부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학습데이터를 디지털교과서 개발 업체에 우선 제공하고, 2025년부터는 디지털교과서를 사용한 학생들의 학습데이터를 수집해 디지털교과서 개발 업체에 제공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디지털교과서 추진 방안에 따르면 4가지 분야(개인 특성, 학업성취, 메타인지, 학업 흥미)에서 12개 항목의 24개 이상(2가지 설문조사 영역 포함)의 학습정보를 수집한다고 한다. 특히 개인 특성과 관련해 사회·문화적 배경(지역, 성별, 기타 설문조사)과 정서 및 심리(좋아요, 기타 설문조사) 데이터는 매우 민감한 개인정보이다.
학습데이터를 모으는 디지털교과서 플랫폼은 이번 정부에서는 ‘디지털 교수·학습 통합 플랫폼’ 사업으로 추진되었다. 하지만 2022년 12월 교육부가 총사업비 6000억원의 플랫폼 사업을 돌연 중단했다. 교육부의 플랫폼 사업이 중단되면서 시·도교육청이 독자적으로 플랫폼을 개발해야 할 상황이다. 서울시교육청은 ‘뉴샘’, 경남도교육청은 ‘아이톡톡’이라는 플랫폼을 이미 개발해 운영하고 있지만 다른 시·도교육청은 새로운 플랫폼을 개발해야 한다.
지난달 교육부는 2020년부터 시작한 4세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을 공개했다. 총사업비로 2824억원이 투입된 새로운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이 공개되자 다른 학교의 기말고사 정답지가 출력되는 등 여러 가지 보안 문제가 발생했다. 경기도교육청은 2022학년도 11월 고2 전국연합학력평가 성적자료와 2019년, 2021년, 2022년 학생 성적자료를 유출했다고 올해 2월에 발표했다. 3년간 296만6485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이다.
시·도교육청이 제대로 된 디지털교과서 플랫폼을 개발하고, 플랫폼을 통해 학생들의 학습정보를 수집·관리·폐기하는 작업을 순조롭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
챗GPT를 개발한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상원 인공지능 청문회에서 AI 시스템을 교육하기 위해 자신의 개인정보가 사용되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하고 원치 않는다면 언제든 쉽게 자신의 개인정보를 지울 수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밝힌 적이 있다.
교사들이 디지털교과서를 선택하는 순간 학생들이 자신의 학습정보 수집을 동의하지 않을 방법을 교육부가 마련할까? 비록 동의했더라도 시간이 흘러 학생들이 자신의 학습데이터가 사용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자신의 데이터를 쉽게 삭제할 수 있을까?
개인정보 보호법은 3조 1항에서 ‘개인정보처리자는 개인정보의 처리 목적을 명확하게 하여야 하고 그 목적에 필요한 범위에서 최소한의 개인정보만을 적법하고 정당하게 수집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가 공공데이터를 수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생의 학습데이터를 국가가 수집하는 것이 타당한지 공론화 작업이 필요하다. 디지털교과서를 사용하게 될 2025년 초·중·고 학령기 인구는 510만명 정도 된다. 많은 전문가가 학습정보를 모으기 위해 필요한 재정을 제대로 확보하고 이 사업을 펼치는지 걱정이 많다.
관련 비용을 교육부가 공개해야 한다. 특히 학습정보를 제공받은 디지털교과서 제작 업체들이 관련 정보를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거나 유출하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 방안을 밝혀야 한다.
우리가 선진국이 되기 이전에는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길 중에서 가장 빠른 길을 선택해 달려가면 됐다. 국가 차원에서 모든 학생의 학습데이터를 투명하게 수집·관리·폐기하는 일은 남들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수많은 질문과 토론이 필요한 영역이다. 인공지능 기술 전문가뿐만 아니라 철학자와 다양한 인문학자, 학부모, 교사들이 모여 논의해야 한다. 교육부는 학습데이터 수집 공론화 방안을 포함한 새로운 계획을 발표하길 바란다.
홍인기 교육정책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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