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국민 여러분, 아프면 큰일 나요

기자 2023. 7. 1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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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의료체계가 붕괴하는 조짐이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다. ‘응급실 뺑뺑이’와 소아과 진료대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번에는 조기 진통으로 병원을 찾은 임신 9개월 산모가 미숙아를 받아주겠다는 병원이 없어 1시간 이상 분만이 늦어지는 일이 벌어졌다. 그것도 수도권에서 일어난 일이다. 소방방재청 자료에 따르면 이 같은 응급실 뺑뺑이는 지난해에만 약 8200건 발생했으며, 지난 5년 동안 1.6배 늘었다. 안타깝게도 이런 사건은 적어도 앞으로 몇년 동안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에서 지난 10여년간 간신히 버텨 온 응급환자와 중환자 진료체계가 최근 대학병원과 종합병원 의사들이 동네 병·의원으로 대거 빠져나가면서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지금 당장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해도 배출되기까지 10년 넘게 걸리니 당장 의료체계가 붕괴하는 것을 막기 어렵다. 최근 의사들이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을 그만두고 동네 병·의원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근본적인 원인이 기형적인 의료체계에 있으니 해결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이제까지 의사와 병원이 반대하는 정책은 아무리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라 해도 해본 적이 거의 없고, 땜질식 처방으로 문제를 덮는 데 익숙한 보건복지부가 과연 의료체계의 판을 새로 짜려고 할까 의문이다.

의사가 부족한 상태에서 아슬아슬하게 버텨 온 응급환자와 중환자 진료체계에 회복 불능의 치명타를 날리는 것이 비급여 진료다. 지난 정부에서 동네 병·의원은 도수치료와 피부미용, 초음파 검사, 건강검진 같은 비급여 진료를 크게 늘렸다. 비싼 비급여 진료가 늘면서 동네 병·의원 의사 수입은 대학병원과 종합병원 의사 월급의 거의 2배가 되었다. 대학병원 교수라는 사회적 지위만으로는 연봉이 2억원 더 많고 워라밸이 더 좋은 동네 병·의원으로 의사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지난 5년간 동네 병·의원 의사는 6500명 넘게 늘어난 반면 대학병원과 큰 종합병원 의사 수는 거의 늘지 않았다.

복지부는 지난 수십년 동안 비급여 진료를 방치했다. 선진국 의사들은 의학적 근거가 없어 거의 하지 않는 비급여 검사와 치료를 동네 병·의원들이 남용해도 관리하지 않았다. 같은 비급여 검사와 치료를 해놓고도 다른 병원에 비해 진료비를 몇배씩 더 받는 것도 방치했다. 비급여 진료가 폭발적으로 늘어도 관리할 방법이 없는 ‘이상한’ 실손보험도 문제다. 그 결과 동네 병·의원에서는 환자에게 “실손보험 있으시죠?”라고 묻고 비급여 진료로 돈을 버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돼 버렸다.

의사와 병원에 유리하면 규제하고 의사와 병원에 불리하면 필요한 규제도 하지 않는 뒤틀린 의료제도 역시 의사 부족 문제를 악화시킨다. 응급의료법은 응급의학과 전문의만 응급센터 전담전문의가 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는데 최근 개원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늘면서 응급실에 의사가 부족해지고 응급실 뺑뺑이는 늘고 있다.

병원이 자유롭게 병상을 늘리고 진료 범위를 정할 수 있게 허용하면서 의사 수는 자유롭게 늘리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심장병을 진료하는 병원이 환자 수요에 비해 3배 더 많다보니 심장병을 진료하는 의사는 분산되고, 많은 병원이 24시간 365일 심장병 응급환자를 진료하지 못하고 있다. 응급의학과 의사가 동네 의원을 개원할 수 있으면 다른 과 의사도 응급실 전담전문의로 인정해주는 게 맞다. 병원이 자유롭게 병상을 늘리고 진료 범위를 정할 수 있게 허용해줬으면 의대 정원도 자유롭게 늘릴 수 있도록 허용해주는 게 맞다.

의사와 병원 말만 듣고 엉뚱한 대책을 남발하는 복지부의 무능력도 의사 부족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 응급환자 수가 미국의 3분의 1, 영국의 2분의 1에 불과하고 경증환자가 외국에 비해 많은 것도 아닌데, 의사들 말만 듣고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는 경증환자 탓으로 돌리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응급실 뺑뺑이의 진짜 원인은 미국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응급실 의사 수와 대학병원이 가진 의사와 병상의 80% 이상을 외래를 통해 입원한, 응급하지도 않고 중증도 아닌 환자를 보는 데 쓰는 병원에 있다. 응급실 전문의 수를 늘리고 응급환자 수에 비례해 병상을 배정하고 응급수술을 할 당직 의사를 배치하는 게 응급실 뺑뺑이의 진짜 해결책이다.

아직 시간은 있다.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붕괴하기 전에 의료체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 복지부가 의사와 병원 눈치 보지 않고 비급여를 관리하고, 필요한 규제를 도입하고, 국민과 전문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투명한 공론의 장에서 정책을 결정해 나가길 기대한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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