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플라자] 특성화高 현장실습, ‘호신술’이 필요하다
공고를 졸업했다. 2008년 당시 내 모교에서 수능 시험 보고 4년제 대학 간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대부분 취업하거나 전문대에 진학했고 일터에서 온갖 수모를 다 겪어야만 했다. 나 또한 전문대 현장실습 첫날 섭씨 400도의 수지를 발목에 붓고 3도 화상을 입었다. 큰 사고를 겪었음에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전혀 몰랐다. 사장은 산재처리는커녕 다친 근로자한테 입원비며 치료비를 지급하는 공상처리조차 해주지 않았다. 결국 사고 다음 날부터 욱신거리는 발목을 절며 출근해야 했다. 그땐 내 권리를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에, 오롯이 자기 과실인 줄만 알았다.
온 나라가 ‘수능 킬러 문항’으로 시끄럽다. 온갖 말이 나왔지만 본질은 빡빡한 명문대 입성을 두고 벌이는 경쟁 룰 설정 이야기. 한마디로 나와 전혀 상관없는 주제였다. 이를 먹고살 만한 사람들만의 이야기라며 깎아내릴 마음은 없다. 수능 잘 치고 못 치는 차이로 삶이 달라지므로 모두가 민감할 수밖에 없는 주제임을 안다. 다만 킬러 문항 국면에서 언급되지 않았던 학생들, 경쟁선에 처음부터 못 낀 학생들의 교육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지난해 서울시의회는 본예산 심사에서 서울시교육청이 노동인권교육 명목으로 올린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고 한다. 올해 7월 5일 2차 추경에서 예산을 절반 가까이 줄여서 올렸지만 이마저 무산됐다. 나라에 돈이 없으니 예산을 깎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예산이 그저 이념분쟁 때문에 집행되지 않은 건 전혀 다른 문제다. 2022년 11월 25일 교육위원회 회의록 중 어느 서울시의원은 노동인권교육 교재(더불어 사는 민주시민)를 언급하며, “사회적 경제만 강조하고 자유시장경제라는 내용이 없다. 책임 없고 권리만 강조하는 편향된 노동인권을 강조한다”라고 말했다. 본 교재의 정치적 편향을 지적할 수 있고, 잘못됐다고 발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책임 없고 권리만 강조하는 노동인권’이란 말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실제 일터로 나간 학생들 대다수는 권리는 못 찾고 부당한 책임만 진다. 노동 현장은 보통 노동자의 권리를 먼저 존중해 주지 않는다. 대부분 개인이 ‘알아서 찾아 먹어야’ 한다. 4년제 학사 이상의 ‘가방끈 긴’ 노동자들은 권리를 배울 시간과 기회가 더 많이 주어졌기에 그나마 자기 권리를 지키기 수월하다. 청소년 노동자들은 그러기 어렵다. 심지어 이들 대다수가 영세 업체에 취직한다. 그나마도 노동법 사각지대인 5인 미만 사업장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그곳에서 숱한 차별을 겪는다. 최저시급을 못 받는다. 폭언을 듣고 월급까지 떼인다. 근로 시간을 초과해 일하다 다쳐도 아무 말도 못 한다. 심한 경우 죽기까지 한다. 그런데 좀처럼 부당함을 따지고 들 수가 없다. 내 권리가 어디까지인지, 어떻게 챙겨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에서 노동인권 교육이 절실하다. 이런 현실을 알기에 이번 예산 삭감 결정이 더 아쉽다. 단지 이념이 문제라면 정치편향은 제거하되 노동인권은 살리는 방향으로 교육 예산을 심의해 봤으면 어땠을까?
물론 교육만으론 청소년 노동의 현실을 다 바꿀 수 없다. 결국 제도가 우선하고 인식이 뒤따라야 할 문제다. 하지만 최소한 회사가 부당한 대접을 하거나 부당한 업무를 시킬 때 저항할 ‘호신술’ 정도는 가르쳐줘야 한다. 특성화고 학생들의 현장실습 사망 사건을 찾아보면 공통의 특징이 있다. 회사가 말도 안 되는 일을 시키고, 학생들은 저항하지 못해 일어난 일이라는 점이다. 단지 어리고 대학 못 나왔기 때문에 노동법조차 적용받지 못하는 현실. 이런 현실이 잘못되었으므로 학생들이 스스로 보호할 방법을 알려주자는 진단에, 어찌 보수와 진보의 대답이 다를 수 있겠는가.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음악 찾는데 두 달 걸렸다” 오징어게임 OST로 2등 거머쥔 피겨 선수
- “이재명 구속” vs “윤석열 퇴진”… 주말 도심서 집회로 맞붙은 보수단체·야당
- 수능 포기한 18살 소녀, 아픈 아빠 곁에서 지켜낸 희망
- 이재명 “우리가 세상 주인, 저는 안 죽는다”…野대규모 도심 집회
- [단독] ‘동물학대’ 20만 유튜버, 아내 폭행하고 불법촬영한 혐의로 입건
- [단독] ‘제주 불법숙박’ 송치된 문다혜, 내일 서울 불법 숙박 혐의도 소환 조사
- ‘58세 핵주먹’ 타이슨 패했지만…30살 어린 복서, 고개 숙였다
- 美검찰, ‘월가 마진콜 사태’ 한국계 투자가 빌 황에 징역 21년 구형
- 아이폰부터 클래식 공연, 피자까지… 수능마친 ‘수험생’ 잡기 총력전
- “사법부 흑역사…이재명과 함께 끝까지 싸울 것” 野 비상투쟁 돌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