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영 “지금은 금융위기 준하는 전시체제”

박민우 기자 2023. 7. 1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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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하반기 위기 왔다고 보고 대응”
7개 카드사중 유일하게 연체율 줄여

“전선에 적군이 보이면 전투가 시작되지 않았다고 해도 이미 전시와 다름없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카드는 지난해 하반기(7∼12월)에 금융위기가 왔다고 보고 움직였다.”

4일 서울 영등포구 현대카드 본사에서 만난 정태영 부회장(63·사진)은 현재 카드업황을 금융위기에 준하는 ‘전시체제’라고 진단하며 이같이 강조했다. 정 부회장은 인터뷰 내내 고금리에 따른 카드 연체율 상승, 정부의 수수료 인하 압박과 규제 등 리스크가 카드사들의 숨통을 죄고 있다면서 “전시 상황은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 부회장은 1987년 현대종합상사에서 처음 일을 시작해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과 기아자동차 등 제조업에서 오랜 시간 근무한 뒤 2003년 현대카드 대표이사를 맡았다. 오랫동안 ‘볼트와 너트’ 문제를 고민해 온 그가 생소한 금융 분야로 갑작스럽게 업을 옮긴 지 한 달 만에 ‘카드대란’이 터졌다. 꼬박 2년간 사태를 수습했다는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3년 저축은행 사태 때도 연체율을 걱정했고 늘 전시체제였다”고 회고했다.

최근 전 금융권의 연체율이 치솟고 있지만 현대카드는 올해 1분기(1∼3월) 신한·삼성·KB국민·현대·롯데·하나·우리 등 7개 카드사 가운데 유일하게 카드론 연체율이 줄어들었다.

“카드업 본질 바꿔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생사 걸어”

현대카드 ‘20년 사령탑’ 정태영 부회장
회원수 3위-결제액 2위로 약진
“직원 45%가 DT 업무에 관여
3,4년새 고객 450만명 유치 성과”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4일 서울 영등포구 현대카드 본사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하며 답변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올해 3월 애플의 간편결제 서비스 애플페이를 국내 최초로 도입한 것에 대해 “기대만큼 성과가 있었다”며 “한국에 처음 EMV 콘택트리스(비접촉 결제) 시스템을 들여왔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현대카드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 중에 하나가 바로 ‘최초’라는 타이틀”이라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정 부회장은 탁월한 브랜딩 능력으로 후발주자였던 현대카드를 업계 3위로 끌어올렸다. 이른바 ‘하차감’ 좋은 자동차처럼 개인의 취향을 절묘하게 타기팅한 ‘결제감’ 좋은 카드로 고객을 사로잡은 것. 정 부회장은 최근 애플페이와 가장 먼저 손을 잡고 국내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여전히 금융업계에서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20년간 현대카드를 이끌어온 그에게서 카드업계의 현재와 미래를 들어봤다.

● “연체율과 수수료 압박, 당국 규제 3중苦”

“수수료가 11년째 내려가면서 카드사들은 사실상 대출업자가 됐다. 대출 외에 돈을 벌 길이 없는데 연체율 리스크에 대비할 사업 구조가 없다는 게 가장 큰 위기다.”

정 부회장은 당장 치솟는 연체율보다 더 근본적인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대출로는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금융 테크 등 신규 사업에 투자하기 힘들다”며 “플랫폼 회사들은 4∼10% 수수료를 받으면서 안정적으로 인재를 양성하고 신사업에 진출하는데 카드사들은 금융당국의 수수료 인하 압박에 리스크를 대비할 사업 구조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부회장은 또 금융당국의 과도한 규제가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는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금융당국이 보안 문제를 이유로 EMV 콘택트리스(비접촉 결제) 도입을 망설이다가 글로벌 혁신 경쟁에서 뒤처졌다는 것. 애플페이와 구글페이 등이 사용하는 EMV 콘택트리스는 유로페이·마스터카드·비자의 약자를 딴 국제 근접무선통신(NFC) 결제 표준이다. 그는 “금융당국이 너무 보수적으로 접근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우리도 결제에 있어 글로벌 표준을 따라가야 한다. EMV 콘택트리스는 훨씬 빠르고 안전하고, 청결한 결제 방법”이라고 말했다.

애플페이는 올해 3월 21일 현대카드를 통해 국내에 처음 도입된 이후 카드업계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5월 말 기준 현대카드 전체 회원 수는 1173만4000명으로 회원 수 3위였던 KB국민카드(1172만6000명)를 제치고 3위에 올랐다. 현대카드는 올해 1∼5월 개인 일시불 카드 누적 금액 37조7911억 원으로 신한카드(40조6363억 원)에 이어 2위를 꿰찼다.

● “목숨 걸고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해야”

정 부회장은 5년 전부터 대규모 언어모델(LLM)에 주목하며 인공지능(AI)이 바꿀 미래를 점치고 있다. 그는 “LLM 관점에서 현대카드는 오래전부터 시퀀싱(sequencing) AI 개발에 착수해 상당한 진척을 이뤘다”고 했다. 현대카드는 시퀀싱 AI를 통해 ‘오전에 특정 장소에서 브런치를 먹은 사람은 오후에 어디서 쇼핑할까’ 같은 물음의 해답을 찾고 있다.

“AI의 미래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고 예측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챗GPT를 비롯한 생성형 AI가 신적인 존재라는 믿음도 내년쯤엔 깨질 수 있다.”

현대카드는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T)’을 통해 대응하고 있다. 정 부회장이 정의한 DT는 ‘CEO가 생사를 걸고 관여하는 업의 본질과 정체성을 바꾸는 작업’이다. 그는 “DT를 하고 있는 금융기관은 전 세계적으로도 드물다”며 “현대카드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를 비롯해 전 직원의 45%가 DT에 관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카드는 DT를 기반으로 코스트코, 스타벅스, 야놀자 등 18개 상업자표시신용카드(PLCC·일반 기업이 카드사와 제휴해 출시하는 신용카드) 파트너사에 데이터 솔루션을 공급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현대카드가 개발한 마케팅 플랫폼과 데이터 분석 솔루션 덕분에 최근 3∼4년간 약 450만 명이 고객으로 유입됐다”며 “이미 DT가 큰 효과를 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 부회장은 또 미래 세대이자 고객인 MZ를 특정 집단으로 규정 짓는 것도 거부했다. 그는 “현대카드는 MZ세대를 따로 타기팅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세대나 나이보다는 취향을 타기팅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취향이 뚜렷하지 않은 타깃을 놓치고 있다는 건 반성해야 한다”며 “초신성만큼이나 중요한 블랙홀(무취향 고객)을 공략할 상품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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