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 군함도와 후쿠시마 오염수…일본을 믿자고요?

송현숙 기자 2023. 7. 13. 03: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달 초 일본 규슈 나가사키항 근처의 군함도(일본명 하시마)를 보러 갔다. 일본의 조선인 강제동원과 노동착취 현장인 군함도 탐방은 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가 주최한 ‘잊어선 안 될 역사의 현장들-근대 일본에서 한국을 보다’ 답사 여행의 한 순서였다. 아쉽게도 폭우와 높은 파도로 배가 못 떠 군함도 디지털 박물관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송현숙 후마니타스연구소장·논설위원

가상현실(VR) 체험관에선 군함도 건물들을 VR로 날아다니듯 샅샅이 살피고, 탄광 갱도 구조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벽면 가득 화려한 프로젝션 영상엔 군함을 닮은 작은 섬이 일본 산업화의 원동력이 됐다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어느 곳에도 조선인 강제동원 얘긴 없었다. 그러다 전시실 한쪽 영어와 일본어 안내 소책자를 본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누가 역사를 조작하고 있는가. 군함도는 지옥도가 아니다’라는 제목, 한국이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적반하장이었다.

한국에 돌아오니 더욱 기가 막힌 부조리극이 펼쳐지고 있다. 한국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면죄부를 주는 일본 대변인 역할을 자임하는 중이다. 정작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보고서에 일본 요구에 따른 검토로 결과에 책임지지 않겠다고 명시했고,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더불어민주당과 면담하며 “결과를 일본이 책임져야 하느냐”는 질문에 “모두의 책임”이라 답했다고 한다. IAEA는 거듭 책임을 빠져나가고 있는데, 우리는 IAEA 보고서를 존중한다며, 일본도 하지 않는 일일브리핑을 날마다 열어 오염수 안전을 강변하고 있다. 정부는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피해를 본 수산업계 지원을 위해 올해 3500억원 상당의 예산 집행까지 결정했다. 일본은 3000억원(초대형 탱크에 오염수 장기저장), 많게는 1조원(오염수를 모르타르처럼 굳히는 방안)을 아끼자고 340억원의 싼값으로 오염수를 투기하려는데, 우린 ‘대변인 역’만 하며 10배 많은 3500억원 예산을 짜놓은 판이다. 대체 제정신인가.

정부와 여당은 ‘과학 대 괴담’ 프레임으로 몰아가고 있다. 필자에겐 명확한 증거도 없이 확신에 차서 말하는 원자력 전문가들의 태도가 불안하다. 사고 원전 오염수를 해양에 흘려보내는 일 자체가 초유의 일이다. 방류를 시작하면 최소 30년이 걸린다. 미량·저농도 방사능이 장기간 축적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연구된 것은 거의 없다. 불확실한 건 “모른다”고 말하고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과학이다. ‘무시할 수준이니 먹고 마셔도 된다’와 ‘안전성에 확신이 서지 않으니 조심하자, 오염수를 방류하면 안 된다’ 중 어느 것이 괴담이고 과학인가. 일부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과학의 이름으로 시민들의 불안을 비난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세계적인 과학저널 ‘사이언스’와 ‘네이처’엔 많은 해외 전문가들이 오염수 방류에 심각한 우려를 전하고 있다.

IAEA 보고서는 도쿄전력이 제공한 데이터를 토대로 오염수 방류 방식을 검토한 것이다. 그러나 도쿄전력은 잦은 은폐 전력으로 일본 내에서도 불신이 깊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 직후 핵연료가 녹아내리는 노심용융(멜트다운)을 두 달 뒤에야 인정했고, 방사성 물질을 걸러내는 핵심 장비인 다핵종제거설비(ALPS·알프스)는 수시로 고장났음에도 제대로 알리지 않았으며, 2013년 알프스 시운전 당시 오염수 정화 수준을 장담했지만 방사성 핵종인 탄소-14를 거르지 못한다는 사실을 2020년까지 감춰왔다. 1차 처리 후에도 백혈병·골수암 등을 유발하는 스트론튬-90이 기준치보다 최대 2만배 높게 검출된 사실도 지역언론 폭로 후에야 밝혔다.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는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을 어떻게 믿나. 한국 등 인접국들은 감시체제는커녕 핵심 정보 접근권도 없다.

2015년 7월 일본은 강제동원 피해자를 기리겠다고 공언하며 군함도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조건부 등재에 성공했다. 그러나 등재 후엔 유네스코가 현지조사까지 벌여 약속 이행을 거듭 촉구했지만, 일본은 되레 유네스코 조사단이 당시 징용정책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반발하기에 이르렀다. 국제사회 약속도 헌신짝처럼 던지는 일본이다.

지난 3월 한·일 회담 당시 한국이 한 통 큰 양보의 대가는 오염수로 돌아왔다. 왜 백해무익한 일본의 오염수 방류에 우리 국민들이 갈등해야 하나. 진정 국익을 위한다면 일본에 끌려다닐 게 아니라, 여야가 함께 오염수 해양투기를 하려는 일본을 국제해양법재판소에 유엔 해양법협약 위반으로 제소하고 방류 금지 잠정조치를 청구해야 한다. ‘국민 건강을 위한’ 최소한의 상식이다.

송현숙 후마니타스연구소장·논설위원 song@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