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89] 복날 듣는 음식 노래
엊그제는 초복이었다. 장맛비와 무더위가 번갈아드는 여름에는 잘 먹어 몸을 보양해야 한다. “음식에 대한 사랑보다 더 진실한 사랑은 없다”는 조지 버나드 쇼의 말처럼, 음식 노래를 들으며 잠시나마 즐거운 상상에 빠져보는 것도 이 뜨거운 여름을 견딜 수 있는 한 방법이리라.
1938년에 발매한 김해송의 ‘선술집 풍경’과 이규남의 ‘눅거리 음식점’에는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잔뜩 이어진다. 곱창, 너비아니, 추탕, 선짓국, 뼈다귓국, 매운탕, 장국밥, 설렁탕, 육개장, 비빔밥, 빈대떡, 개피떡, 수수팥떡, 인절미, 녹두죽, 보리죽, 콩나물죽, 시래깃국 등을 통해 광복 이전 서민들의 음식 문화를 엿볼 수 있다.
광복 이후에는 더욱 다채로운 음식 노래의 향연이 펼쳐진다. 라면을 노래한 악동뮤지션의 ‘라면인 건가’를 비롯해 우동, 칼국수, 막국수, 냉면, 쌀국수 등 웬만한 면 요리는 모두 노래 소재가 된다. 박향림의 ‘오빠는 풍각쟁이’(1938년)에 등장한 궁중 떡볶이가 DJ DOC의 ‘허리케인박’(1996년)에서 신당동 떡볶이로 이어지는 데서는 유구한 떡볶이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옆구리가 터지지 않게 잘 말아줘야 하는 ‘더 자두’의 ‘김밥’을 포함해서 순대와 만두, 어묵 등의 분식도 노래에서 왕왕 맛볼 수 있다.
고급 음식으로 취급하는 간장게장, 전복, 장어도 노래에 출현해 눈길을 끈다. “너에게 좋은 것만 주고픈 마음”을 담은 영탁의 ‘전복 먹으러 갈래’와 “밥 도둑 맘 도둑”인 간장게장에 설레는 마음을 표현한 캔의 ‘내 사랑 간장게장’이 대표적이다. 그래도 몸보신에 좋은 것으로 닭 요리만 한 것이 없으니, 다양한 요리 방식으로 우리 앞에 전개된다. 런치백의 ‘치킨은 살 안 쪄요 살은 내가 쪄요’, “영계백숙 오오오오”라는 후렴으로 유명한 ‘영계백숙’, 기관지 강화와 피부 미용에도 좋다고 하는 하현곤팩토리의 ‘삼계탕’ 등이 그것이다. 치킨은 역시 맥주와 함께할 때 빛을 발하는 법이다. 김진호의 ‘치맥’이 잠이 오지 않는 여름밤에 생각나는 것이라면, 안소미의 ‘치맥’은 스트레스 받는 날 기분 전환에 필요할 것이다.
음식이 등장하는 노래는 대체로 경쾌하고 발랄한 분위기의 ‘코믹 송(comic song)’이다. 이런 노래는 듣고만 있어도 군침이 돌고 미소가 절로 번지며 없던 기운이 솟는다. 중복과 말복이 아직 남아 있는 지금, 음식 노래를 들으며 건강하고 행복한 여름날을 보내기로 한다. 맛있는 음식 노래를 듣는 일은 살은 찌지 않으면서도 기분을 유쾌하게 만든다. 물론 이 글을 읽자마자 식욕이 당겨 주체하지 못하는 것은 내 영역 밖이지만, ‘맛있게 먹으면 0 칼로리’란 말을 믿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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