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존의 窓] “초면에 나이와 연봉을 묻다니…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에릭 존 보잉코리아 사장·前 주태국 미국 대사 2023. 7. 13. 03: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만 나이 쓰게 된 한국 보며 40년 전 방한 당시 추억 떠올라
당황했지만 곧 적응… 美서도 초면에 묻다가 “형사냐” 비난받기도
한국도 이제 개인화가 대세지만 끈끈한 인간관계 가끔 그리워
일러스트=이철원

얼마 전 한 외신의 한국 특파원인 친구가 만 나이 도입에 대해 흥미로운 기사를 썼다. 한국도 세계 표준에 맞춰 만 나이로 통일하겠다고 선언하기 전까지는 깊이 생각해 본 적 없는 문제였다. 지난 십 년간 한국에 살면서 누구도 굳이 한국 나이와 만 나이를 둘 다 알려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기사를 읽으며 처음 한국에 왔던 40년 전의 기억을 소환하게 됐다. 당시 경험했던 수많은 문화적 차이는 오늘날 상당수가 크게 달라졌다.

1984년 2월, 김포공항 세관을 처음 통과한 뒤 출국장에 몰린 인파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미국 국무부에서 외교관들을 대상으로 제공하는 한국어 연수 과정이 있었는데, 교재에 ‘공항에 마중을 나가요’라는 제목의 챕터가 있었다. 하지만 공항 자동문 밖으로 나서자마자 얇은 펜스 뒤를 가득 메운 사람들을 마주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 챕터에는 ‘미국 출장을 다녀오는 친구를 마중 나가요’라는 문장이 있었다. 나를 비롯한 우리 반의 젊은 외교관들은 ‘택시 타고 혼자 이동하면 되지, 왜 굳이 동료들이 공항에 집단으로 마중을 나올까?’하면서 의아해했다. 하지만 이후 몇 년간 한국에 살면서 가족, 학교, 직장, 고향 등 다양한 집단 간에 유기적으로 연결된 한국 사회의 특성을 점차 이해하게 되었다.

이외에도 처음에는 도통 이해하기 어려운 문화적 격차가 존재했다. 특히 같은 초등학교를 나왔다는 사실 하나가 평생에 걸쳐 서로를 끌어주는 유대감으로 이어지는 것을 이해하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 신기하게도 미국과는 반대로 당시 한국에서 학연의 영향력은 고등학교, 대학교로 갈수록 되레 약화하는 양상을 띠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며 이 부분은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연고(緣故)에 대한 대화가 지배적이라는 특징을 재빠르게 습득한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정중하지만 직설적인 ‘심문’을 받곤 했다. 대부분 “정확히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로 시작되었다. 실제로 초면에 나이를 묻는 사람을 종종 만났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는 데, 몇 주가 걸리기도 했다. 사실 당시 맡았던 중책에 비해 나이를 숨기고 싶을 만큼 어렸다. 주부산 미국 영사관에서 영사가 미국으로 돌아간 후 몇 개월 동안 영사 권한대행직을 수행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젊다는 이유로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한다고 느낀 나는 자체적으로 ‘한국 나이’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자연스럽게 이번 만 나이 도입으로 한두 살 어려지는 변화에 동참할 수 있었다.

이번 계기로 오래된 한국어 교재를 훑어보면서 수십 년 전에도 납득하기 어려웠던 문화적 차이를 다시금 발견했다. 그중 ‘결혼’과 ‘고향’은 꽤 유용했던 챕터 중 하나였다. 결혼 여부, 지역별 특수성, 같은 고향 출신의 지연에 관한 질문에 어떻게 답할지를 다뤘다. 당시 미국에서 수업을 들을 때 한국에 가면 직업, 나이, 고향, 출신 학교, 결혼 여부, 심지어 연봉까지도 서슴지 않고 물어볼 것이라는 교사의 말에 우리 반 모두 일제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미국에서는 초면에 거의 묻지 않는, 아니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곧 부산에서 근무를 시작하자 정말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개인적인 질문 세례가 이어졌다.

주로 받는 질문에 대해서는 나만의 적절한 답변을 개발해 냈다. 결혼했느냐는 질문에는 “아직 국수 먹기 전입니다”라고 유머러스하게 대답했고, 연봉에 관해서는 “충분치 않게 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주로 이 전략이 먹혀서 다른 주제로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2년 남짓 한국에 살면서 학습된 것인지 미국에 돌아가서도 스스럼없이 초면에 개인적인 질문을 던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한 친구가 이를 보고는 나를 옆으로 불러내어 형사로 전직한 것이 아니라면 자기소개용 대화 문구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진지하게 조언한 적도 있다.

한국에서 사는 처음 몇 년간 중요한 교훈으로 삼은 것은 뜻밖에도 거침없는 질문에 대비하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깊은 관계 형성의 중요성과 일찍이 단도직입적 질문을 통해 효율적으로 관계를 형성하는 법이었다. 언젠가부터 초면에 오가는 질문이 덜 개인적으로 느껴지고 썩 불편하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한국에 꽤 오래 살았고 대다수의 지인이 내 전반적인 커리어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와서 걱정스러운 점은 한국 사회가 현대화되고 개인적인 양상을 띠게 되면서 구성원 간의 긴밀한 관계에 덜 의존한다는 것이다. 사실 끈끈한 인간관계야말로 한국에서의 삶을 근사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이기 때문이다. 다음에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단순히 “반갑습니다” 하고 무미건조하게 인사를 건네는 데 그치지 말고, 지난날을 추억하며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연봉은 얼마예요?” 하고 질문을 이어가는 것도 좋겠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