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를] 그날이 오면
우리집 나비의 어미는 개고기 농장에서 구조됐습니다. 학대와 도축이 일상이 된 농장에 갇혀 강아지를 생산하던 모견을 동물보호단체가 구조했고, 당시 배 속엔 이미 나비가 있었으니, 우리 나비도 보신탕이 될 운명이었습니다. 덜컥 겁이 납니다. 뽀얗고 말랑한 배를 쓰다듬고 있자면, 이런 천사 같은 아이를 기르고 죽여, 고기를 취하려던 사람들은 대체 어떤 이들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하지만 사람이 개를 먹어온 역사는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반도 전역에선 신석기 시대 유물과 함께 개의 뼈가 흔하게 출토됩니다. 조선시대 <규합총서>에는 개 요리법이 상세하게 기술돼 있고, <동의보감>은 개고기의 성질과 효능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농경사회 필연의 모습입니다. 집을 지켜주던 개를 먹는 것은 달걀을 낳아주던 닭을 먹는 것, 밭을 갈아주던 소를 먹는 것과 크게 다른 의미가 없었고, 크게 다른 잔인함도 없었습니다. 우리네 음식문화이고, 풍습이라 불러도 무방합니다.
개의 식용이 문제가 된 것은 1970년대 ‘축산물 가공 처리법’에서 개가 제외된 것이 시초입니다. 독재자는 외국인들 눈치를 보느라 바빴고, 못내 부끄러워, 남의 나라 시선으로 빚어낸 촌극이 지난한 논쟁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개고기를 먹지 않는 유럽과 북미의 나라들이 우리보다 선진국으로 보였고, 그들에게 조롱거리가 된다는 이유로 우리의 음식문화를 우리 스스로 부끄러워했습니다. 보신탕이나 개고기를 옹호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부끄러워하는 것은 잘못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나라의 음식문화를 폄훼하는 것은 혐오나 증오 이외 그 어떤 것도 아닙니다. 얼마나 자존감이 없고 못나면 수천년 된 우리 음식이 그깟 프랑스 여배우의 말 한마디에, 미국 코미디언의 농담 한마디에, 대통령이 우왕좌왕할 만큼 부끄러울 수 있나요?
올해도 어김없이 그날이 왔습니다. 복날이 되면 개 식용을 반대하는 단체들은 전국 각지의 개고기 시장, 보신탕 집 앞에서 반대시위를 합니다. 다른 나라 문화에 대한 혐오가 폭력이듯, 다른 사람의 선택에 대한 증오와 강요 또한 폭력입니다. 올해는 대통령 부인까지 거들고 나섰습니다. 그 시작은 또 부끄러움입니다. 개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선진국으로 가는 발판이라 하셨습니다. 내친김에 애처가 대통령은 법제화와 처벌을 들고 나왔습니다. 개 식용문화는 반대론자들의 폭력과 더불어 국가폭력에도 마주했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개를 먹는 문화는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나비 같은 천사들 덕분에 개를 먹는 것은 상상도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맛있는 고기가 싸고 흔한 요즘, 굳이 개를 찾아 먹을 이유도 없습니다. 뜨거운 여름의 화기를 개가 가진 금기로 중화한다는 주술적 의미를 믿는 사람도 없고, 무언가 먹어 몸을 채우기보다 굶는 것이 제일가는 보양이 된 요즘입니다. 보신탕은 가만히 두어도 스스로 없어질 ‘옛것’입니다. 다만 무서운 것은 보신탕이 사라지는 것을, 폭력적인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승리라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떤 문제에도, 어떤 논쟁에도 폭력적인 해법부터 들이대는 버릇이 들까 무섭습니다. 동물을 너무 사랑하시는 여러분, 걱정 마세요. 보신탕은 곧 사라집니다. 다만 여러분 덕분이 아닌 것만 알아주세요.
김재윤 수의사·우리동물병원생명사회적협동조합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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