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칼럼] 노년 예찬
불행이 아닌 축복의 시기
김진식 로마문학 박사·정암학당 연구원
소크라테스는 축제 구경을 마치고 아테나이 시내로 돌아가다가 길에서 그를 보고 따라온 사람의 강압에 못 이겨 잔치에 합석하게 된다.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초대자의 부친을 만나서 노령의 문턱에 선 주인에게 노년이 어떤지를, 거칠고 어려운 것인지, 아니면 쉽고 순탄한 것인지를 묻는다. 이때 노인은 둘로 갈린 의견을 전한다. 일부의 사람들은 지난날은 잘 살았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성생활과 음주와 잔치의 즐거움도 사라졌고 주변 사람들이 늙은이에게 존경심을 표하지 않음을 한탄한다. 일부의 사람들은 반대로 정욕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큰 안전을 얻게 되었으며, 미치광이 주인 같은 욕망에서 해방되었다며 노년을 칭송한다. 이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짧은 대화는 노년을 주제로 삼은 최초의 토론이 되었다.
논의를 정리하면, 노년에 찾아온 쾌락의 감소가 행운이라는 측과 불행이라는 측으로 의견이 갈린다. 불행이라는 측에게 노년의 삶은 루쉰의 말처럼 온통 암울하다. “올려다봐야 비뚤어지고 갈라진 하늘이고, 내려다봐야 뒤죽박죽으로 망가진 땅이어서, 마음과 눈을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노년은 쇠약과 질병과 가난에 시달리는 데다가, 죽음의 위협이 가까이 다가오는 시기이며, 즐거움과 위안이 되던 직업도, 재산도, 잔치도, 취미도, 명성도, 친구도 멀리 사라져 힘겨운 때이기 때문이다.
노년의 논의를 소크라테스 이후 350년쯤 지나 로마 공화정 말기의 키케로가 다시 인생의 중요한 주제로 무대에 올린다. 키케로는 고령까지, 아니 죽는 날까지 로마를 위해 애썼던 정치가 가운데 한 명인 카토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가 생각하는 노년을 우리에게 들려주도록 이야기를 꾸민다. 카토, 아니 키케로는 노년을 칭송하는 편이다.
먼저, 사람은 누구나 오래 살기를 원한다. 바라던 대로 살게 되었으니 노년은 얼마나 큰 행복이란 말인가! 자연이 인간에게 유년과 소년과 청년이라는 밝고 즐겁고 활기 넘치는 삶의 시간을 마련해 주었으니, 똑같은 자연이 인간에게 고통이 되라고 노년을 허락했을 리 만무하다. 인간을 “참으로 위대한 기적 magnum miraculum”이라 한 것도 미숙하지만 생기가 넘치는 소년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며, 성급하지만 활기 넘치는 청년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며, 미혹됨이 없는 중년의 진중함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닐 것이며, 분명 그것은 노년의 원숙함까지 인간 삶의 전체를 두고 인간의 탁월성과 존엄성을 강조한 말이다. 물론 노년이 체력과 건강이 점차 소진되고 쾌락은 점차 멀어지는 때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모든 쾌락이 아주 사라지고 없는 것도 아니다. 젊은 날 성취한 선행들을 되새기고 기억하는 것과, 지난날의 업적으로 얻은 존경과 권위를 누리는 것은 노년의 달콤한 열매가 아닌가? 또 줄어든 쾌락과 함께 과거 쾌락으로 인해 저질렀던 과오도 함께 줄어든 것은 오히려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노년은 오히려 큰일을 하기에 제일 적합한 시기다. 체력이 줄고 질병과 쇠약에 노출되기 쉬운 때이면서 동시에 영혼과 지혜, 그리고 분별력은 더욱 커지는 때이기 때문이다. 사실 큰일을 하는 것은 육체의 힘이나 순발력이나 민첩성이 아니라 지혜와 위엄과 판단이다. 싸우자고 덤비는 전사 아킬레우스의 과도한 치기를 설득과 지혜로 잠재우고, 실력과 유능함을 깔보는 아가멤논 왕의 어리석은 오만을 현명한 판단과 조언으로 인도한 자는 인간의 3세대를 목격한 노인이 아니었던가? 또한, 노년의 파비우스 막시무스는 로마군 사령관의 임무를 맡아 그의 지혜와 판단력을 과시했다. 그는 이탈리아를 침공한 한니발에 맞서 전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느려터진 ‘굼벵이’라는 조롱을 당하면서도, 당대의 최고 전략가 한니발과의 전면전을 피하여 전쟁을 오래 끌었다. 적진에 들어와 싸우는 한니발의 군사력을 소모시키는 지연 전략을 폈던 것이다. 굼벵이 전략에 지친 젊은 정치가들과 선동가들이 전면전으로 빠른 결정을 요구하다가 결국 칸나이 전투에서 로마군 6만 명의 희생을 자초하고 자멸한 것과 달리, 노년의 사령관은 얼마나 지혜롭고 현명했던가? 마침내 한니발은 이탈리아를 떠나 북아프리카로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현명하고 지혜로운 노년은 우리 인생의 언제부터인가? 키케로가 ‘노(老)카토 노년론’를 쓸 때 그의 나이가 62세였음은 좋은 참고사항이다. 물론 로마는 법률적으로 군역이 면제되는 나이인 46세 이상을 노년으로 보았지만, 키케로를 보면 우리처럼 로마인들도 환갑을 전후한 나이에 오랜 세상살이를 토대로 욕망과 격정에 쉽게 휘둘리지 않으며 높은 지혜와 현명한 판단을 보여줄 노년에 진입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환갑을 넘어서도 자신의 무능과 무지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자신의 한계를 깨닫는 것도 지혜일지니, 지혜를 얻고자 하는 자는 노년을 축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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