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순수한 마음은 돼지고기까지입니다
계산은 결국 세금으로 떠안긴다
선거 지더라도 긴축하겠다는데
이기려면 반드시 해야 할 일
“소고기 사주는 사람을 주의하세요. 대가 없는 소고기는 없습니다. 순수한 마음은 돼지고기까지예요.”
얼마 전 저녁 모임이 있었던 서울 교대역 근처 삼겹살집 벽에 붙어있는 문구가 걸작이었다. 비싼 소고기 사주는 사람은 따로 이유가 있을 테니 조심하란다. 호주머니 구멍 날 일 없게 부담 없는 삼겹살 드시라고 눙치는 말이 솜씨가 있었다. 그 집은 1인분(160g)에 1만8000원인 냉동 삼겹살을 판다. 서울 강남의 유명한 대형 고깃집 한우 등심은 130g에 8만8000원을 받는다.
10조원 정도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 현금 복지 예산 퍼주기에 빗대면, 정치인들은 소고기 사주겠다는 수상쩍은 사람들이다. 대가가 없을 리 없다. “소고기 드셨으니 표를 달라”고 할 테고, 표를 주면 빚내서 더 많이 사주겠다 약속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 5년간 국가채무가 400조원 불어나 1000조원이 됐다. 더 오래 그런 일이 벌어졌던 나라들이 어떻게 됐는지는 아르헨티나를 보면 알 수 있다.
5년으로는 부족한지 더불어민주당은 여전히 비싼 소고기 사주겠다고 한다. 지난 5월 민주당 의원 10명과 코인 의혹으로 야반도주 탈당한 무소속 김남국 의원은 노인 빈곤이 심각하다며 기초연금법 개정안을 냈다. “2026년부터 기초연금을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지급하자”고 한다. 지금은 상위 30%에게는 지급하지 않고 있는데, 그럴 것 없이 다 주자고 한다. 국회예산정책처 추산대로면, 2026년에 9조9000억원이 필요하다. 2027년에는 10조원이 넘고, 2028년에는 11조원으로도 모자란다. 노후 빈곤 해결하려면 “하위 30%에게는 좀 더 주자”고 해야 말이 된다. 상위 30%에게도 주자는 건 말이 아니다.
한결같은 민주당이야 그렇다 쳐도 대통령이 긴축 예산, 재정 다이어트 하겠다는 정부에서 일부 관료들은 “현실과 맞지 않는 지시”라고 툴툴댄다. 기획재정부가 내년 예산안을 원점 재검토해서 과감하게 추가 삭감하라고 요구한 뒤로 벌어진 일이다. “예산 다 들어내면 어떻게 일 하느냐”, “긴축 예산이 내년 경제 성장률 떨어뜨릴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나온다. 문재인 정부 때처럼 국민들에게 소고기 사주려면 돈이 모자란다는 말처럼 들린다.
윤석열 대통령은 6월 말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내년 4월) 선거에서 지더라도 재정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허리띠 풀 줄만 아는 관료들은 졸라매려니 숨이 차는 모양이다. 한 전직 경제 관료는 “공무원은 쓸 수 있는 돈만큼 힘을 갖기 때문에 의원들이 지역구 예산 챙기려는 것과 별로 다를 것도 없다”고 했다. 그동안 소고기 턱턱 사주면서 행세했는데 내년에는 못하게 될까 속이 타는 모양이다.
이리저리 보조금, 지원금, 수당이 꽉꽉 들어찬 예산안은 600조원이 넘어선 지 오래다. 추경 중독, 재정 중독이라고 했던 문재인 정부는 공무원들에게 “어디 돈 쓸 곳 좀 찾아보라”고 했다.
대통령은 “진정 국가와 국민을 생각한다면 긴축 건전 재정이 지금 불가피하다”고 했다. 정부의 각오가 단단하다면 내년 예산안은 달라야 한다. 더는 빚내서 소고기 사줄 순 없다고 해야 한다. 세금으로 걷었다고 정부의 돈이 아니다. 나랏돈 따위는 없다.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어렵게 벌어서 낸 납세자들의 돈이 있을 뿐이다. 선거에 지더라도 해야 할 일이 아니다. 이기려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그 삼겹살집에는 네온 글씨로 이런 문구도 있었다. “사장님이 초심 잃으면 귓방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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