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킬러가 아닌 통합으로
수능을 불과 몇 개월 앞둔 시점에 느닷없는 ‘킬러 문항’에 대한 논쟁으로 온 나라가 들썩거린다. 정부가 내놓은 킬러 문항 배제 정책이 곧 쉬운 수능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대학 재학생마저도 다시 수능에 응시하려고 학원으로 몰리는 조짐이 보인다고 한다. 사교육을 줄인다는 취지로 나온 정책이 오히려 부추기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상황이다. 교육부는 킬러 문항을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으로 사교육에서 문제 풀이 기술을 익히고 반복적으로 훈련한 학생들에게 유리한 문항’이라고 정의하지만 사실 교육계에만 종사하다 정년퇴직한 필자에게 킬러 문항이라는 용어는 무척 생소하다. 그래서 이 용어를 처음 접했을 때 “수능에 무슨 ‘살상용 문항’인가?”하며 섬뜩함마저 느꼈다. 동시에 작금의 정치권과 자동으로 연결됐다. 어떻게 해서라도 상대의 약점을 들춰내 흠집을 내려고 애쓰는 형태가 그야말로 ‘killer question’을 일삼는 한심한 작태로만 보였기 때문이었으리라.
지금의 수능은 필자가 고교 교사로 재직하던 1993년 처음 시행됐다. 암기에 의존해 과목별로 치러지던 그 이전의 예비·학력고사와는 성격 자체가 다른 평가였기에 당혹스럽기도 하고 기대되는 바도 컸다. 수능, 즉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대학 교육에 필요한 수학능력을 알아보기 위해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내용과 수준에 맞추어 ‘통합 교과적 문항’으로 평가하는 것이었다. 평가 패러다임이 크게 바뀌어 당혹스러웠지만, 기대했던 부분은 평가 시스템에 ‘통합’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학교 현장은 해직 교사, 또 그들의 복직 문제로 어수선할 때여서 교직사회 통합이 절실한 시기이기도 했다.
필자의 형제는 일곱이다. 어머니께서는 생전 우리 7형제에게 늘 “내가 100점짜리 자식을 두었다”고 흐뭇해하시며 말미에 반드시 “일곱을 합하여”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젊었을 때는 “당신의 자식 사랑을 그렇게 표현하시나 보다” 정도로 받아들였으나 세상을 더 많이 살고서야 그 진정한 뜻을 가슴에 새기게 되었다. 그리고 보니 집안의 큰 그림을 그리는 큰형, 집안 살림을 꾸려가는 작은 형, 법률에 근거해 적법한 업무처리를 지향하는 아래 동생과 창의적이면서도 합리적 경영을 도모하는 막냇동생, 그리고 언제나 어머니의 대역을 하시는 누님, 알게 모르게 집안 대소사의 빈틈을 메꾸는 여동생, 이렇게 함께 어우러지면서 더욱 그 뜻을 제대로 헤아리게 되었다. 그것은 어느 하나의 개인 능력만으로는 이 세상을 살아가기 어려우니 각자의 역량을 통합해 살아가라는 것이었다. 서로 간의 차이를 존중하고 상호 지지하며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때 실로 큰 힘을 발휘했다. 이러한 통합이라는 개념은 필자의 교육경영 활동에도 자연스럽게 적용되었고, 그 결과도 만족스럽게 나타났음은 물론이다. 이처럼 교육 전반에서 통합이라는 개념을 중요한 화두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경험했다.
그런데 최상위권 학생의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초고난도로 출제된다는 킬러 문항은 그 자체로 수험생을 차별하는 개념이 되어 어떠한 측면에서도 통합이라는 개념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통합 교과적 문항으로 출발한 수능이 오늘날 킬러 문항으로 이슈화되는 것은 지난 정부의 대입정책 연장선에서 살펴볼 수 있다. 지난 정부는 대입제도의 공정성 강화에 주력했는데 그 수단의 한 방법으로 서울 주요 16개 대학에 학생부종합전형을 축소하고 수능 위주 전형을 40% 이상을 요구했다. 필자가 재직하던 고교에서는 학생부종합전형의 효과로 교실 수업이 변화되고 학생의 학교생활 만족도가 높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 중심의 교육정책의 결과, 학교에서 학생들의 다양한 활동이 사라지고 다시 교과서에 갇힌 지식을 암기하는, 핵심 내용을 정리하고 반복적으로 문제 풀이에 매달리는 그야말로 예비고사, 학력고사 시대로 퇴보하게 된 것이다.
킬러 문항으로 쟁점화된 수능, 수능 위주의 대입제도에서 이야기하는 공정이라는 잣대로는 자칫 파편화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시키기에 십상이다. 따라서 학교에서의 다양한 활동으로 학생 저마다의 가능성을 키워가며 서로 간의 차이를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함께 어울려 큰 힘을 발휘하게 하는, 사회통합을 지향하는 교육에 대해 다 같이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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