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원희룡, ‘양평’ 뒤집어 놓고 얻은 게 뭔가
태조王, 가짜뉴스에 과잉대처
‘백지화’ 결정도 역사 남을 오판
수원 기관(記官) 능귀와 용구 호장(戶長) 희진이 요망한 말을 만들어, “민간에서 흰 빛깔의 개·말·닭·염소 등을 기르지 못하게 한다”라고 하였으므로, 모두 참형에 처하여 여러 도에 전해 보이었다(태조실록 7권, 태조 4년 1월6일 신축 두 번째 기사). 사형제도는 삼심제였다. 왕이 허락해야 집행됐다. 그만큼 엄했다. 그걸 태조 이성계가 했다. ‘말을 만들었다’는 죄 치곤 과했다. 실록에 남은 가짜뉴스 처벌이다. 이성계는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그즈음 두문동 학살 사건이 있었다. 강화도, 거제도 학살 사건도 있었다. 왕씨의 씨를 말리는 작업이었다. 여론이 부글거렸다. 경기도가 특히 심했다. 신진 사대부의 수조권 대상지였다. 사실상의 강제수탈이다. 건들면 폭발할 민심이었다. 그런 수원에 등장한 가짜뉴스다. ‘나라님이 제정신인 거야? 우리 집 백구, 흰 닭을 죽이면 어떻게 살라고. 차라리 고려 때가 좋았어.’ 기반 못 잡은 태조가 벌인 사법살인이었다. (조선괴담실록·유정호 著).
양평고속도로가 백지화됐다. 고속도로 사업 하나가 통째로 사라졌다. 곧 착공될 거였는데 어느날 없어졌다. 그 황당하기가 실록에 남을 만하다. 국토부 장관이 생방송에서 발표했다. 백지화 이유로 가짜뉴스를 들었다. 분노도 숨기지 않았다. ‘날파리 선동을 멈추라’, ‘민주당 간판을 내리라’.... ‘김건희 악마화’를 특히 반복했다. 김건희 여사 측 땅 관련 노선 변경 의혹이다. 대여섯새 지났다. 변함 없다. 사과 없으면 고속도로 안 해준단다.
참형(斬刑)에 다름 아니다. 양평군민에겐 그렇다. 서울로 가는 생명길이다. 2시간을 20분으로 줄여줄 길이다. 개통되는 그날부터 서울생활권이 된다. 없던 진출입로도 만들었다. 연판장 돌려 어렵게 만든 노선이다. 그 길을 원 장관이 없앴다. 어떤 보수는 칭찬한다. “원희룡이 또 한 건 해냈다”, “민주당 가짜뉴스를 박살 냈다”.... 뭘 해냈다는 건가. 고속도로 백지화? 뭘 박살 냈다는 건가. 양평군민 희망? 양평·하남·광주시민 속만 천불이 난다.
설명하면 될 일이다. 김 여사 측과 통한 국토부 직원이 있었는가. 없으면 없다고 밝히면 된다. 노선 변경의 첫 기안 공무원은 누구인가. 그를 언론과 만나게 해주면 된다. 열람 및 의견 수렴 절차는 적법했는가. 관련 서류를 몽땅 공개하면 된다. 장관의 책임이기도 하다. 그 뒤는 민주당 일이다. 거증 책임은 의혹 제기 쪽에 있다. 결코 쉽지 않은 증명 과정이다. 그런데 이 모든 짐이 정부 여당으로 넘어왔다. 사업 백지화가 부른 자책골이다.
민주당 의혹이 미덥잖다. 땅 있고, 노선 지났으니 특혜라는 얘기다. 이러니 나오는 게 역공이다. 민주당 소속 전(前) 군수, 전 국무총리다. 거기 땅 있고, 노선 지난다. 의혹은 이렇게 의혹과 섞여 간다. 그럴수록 남는 게 ‘고속도로 백지화’다. 원희룡식 정치인가. 고양인가 수원인가 출마한다던데. 그래선가. 그 지역엔 이런 평이 생겼다. ‘지역 관심 없을 사람’, ‘정치 이슈만 쫓을 사람’. 경기도 유권자는 무섭다.
‘금민간견마, 고지색백자(禁民間犬馬, 羔之色白者)’. 쉽게 가려질 가짜뉴스였다. 하지만 태조는 불안해했다. 관리 둘을 참했다. ‘양평 고속도로는 김건희 로드다.’ 해명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원 장관은 도로를 없애 버렸다. 1395년과 2023년 사이, 다른 듯 닮은 오만함이 있다. ‘백성은 왕을 따르라’는 600년 전 오만함과 ‘양평군민은 장관을 따르라’는 600년 뒤 오만함이다. 그때 오만함은 생명을 빼앗았고, 지금 오만함은 희망을 빼앗았다.
대통령까지 힘들어졌다. 지지율 40%가 붕괴됐다. 장관 생명 다한 것 같다. 여권도 힘들어졌다. 야권은 신바람 났다. 정치생명 다한 것 같다. 우선 장관직 내려 놔라. 양평 군민 가지고 논 책임이다. 다들 차고 넘치는 경질 사유라 할 것이다.
김종구 주필 1964kjk@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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