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경계 허물기
동시대 연극은 다양한 양상으로 확장해 가고 있지만 특히 무대와 관객과의 경계를 무너뜨려 본질에 천착하려는 시도가 많다. 연극의 본질을 깨달음으로써 삶의 상실을 회복하는 관객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공연예술의 경계 허물기는 예술로서의 진정한 소통을 위한 시작점이라 볼 수 있다.
같은 맥락으로 공연예술은 작품, 관객과 배우가 만나고 느끼는 것인데 이를 통해 관객이 삶에서 겪었던 상실이 회복되는 ‘치유’를 목적으로 한다. 이 과정 간에 예술작품, 이를 연기하는 배우, 그리고 관객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그 틈에서 우리는 세상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다. 그렇기에 동시대의 영리한 예술가들은 이러한 경계 허물기에 의미를 두고 작품을 창조한다.
현대 공연예술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인 ‘융합’도 어떤 방향으로든 예술에서 경계 허물기의 일환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현대 공연예술의 진정한 단계적 경계 허물기는 ‘제4의 벽’이 무너진 것으로 시작해 최근 적극적으로 시도되고 있는 ‘배리어프리’다.
제4의 벽은 무대와 객석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보이지 않는 벽을 말하는 것으로 전통연극의 무대에 주로 존재했다. 전통연극에서는 제4의 벽으로 인해 관객들은 무대와 일정 거리가 나눠진 상태로 존재했고, 공연에 어떤 개입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현대 연극의 수행적 공연에서는 견고했던 제4의 벽이 허물어지고 관객도 공연의 공동 주체자가 될 수 있게 됐다. 물론 이는 프로덕션마다의 양식에 관한 것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현대 공연예술의 경향에서 1차적 경계 허물기는 제거된 제4의 벽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동시대 공연예술에서의 2차적 경계 허물기는 배리어프리다. 배리어프리는 물리적인 장벽을 제거한다는 건축학에서 1974년 파생된 용어로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장벽이 없다’는 뜻을 지닌다. ‘장애물’을 뜻하는 배리어와 ‘자유롭게 하자’는 의미의 프리가 합쳐져 만들어졌으며 최근 들어 한국의 문화예술계에서 이를 지지하고 지향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이러한 배리어프리는 예술의 본질을 추구함에 있어 작품과 이를 연기하는 배우, 그리고 관객 사이의 경계 허물기보다 한 차원 높은 개념의 것이다. 관객 간에 어떠한 경계도 없이 다 함께 삶의 상실을 회복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측면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삶의 본질에 대해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는 ‘공감과 통합’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장애인이 비장애인에게 배려와 도움의 대상일 때는 많지만 삶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치유 받는 공감과 소통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지는 때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이러한 배리어프리는 공연예술의 고유한 가치이기도 하다. 공연예술계는 현재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장애인들을 위해 장벽을 허문 극장 만들기에 한창이다.
그런데 다른 예술 분야에 비하면 공연예술에서의 배리어프리는 실천하는 데 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우선 연극이 주로 공연되는 소극장은 이름처럼 객석의 공간도 굉장히 협소해 이동 지원이 제공된다고 하더라도 이동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또 공연의 음성 해설이나 공연 도중 자막 사용, 그리고 수어 통역 같은 작품의 의미를 전달하는 부분은 프로덕션의 예산을 높이는 난관을 비롯해 그러한 서비스가 필요하지 않은 관객들의 몰입도를 깨는 등의 문제점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리어프리를 향해 예술계는 이동 중이다. 필자 역시 이러한 움직임에서 깊은 안도감과 더불어 설레는 기대감을 느낀다. 예술의 기본원칙인 소통이라는 개념에서 봤을 때 지금껏 함께하지 못했던 관객들과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드디어 함께라고 생각하니 설레지 않을 수 없다. 또 이러한 문화 예술적 움직임과 그로 인한 변화는 결국 사회에 인식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선순환을 가져올 것이라는 깊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경계를 없애기 위해 이러한 시도를 주도하는 것은 예술이기에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다. 예술에는 어떤 것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강력한 무언가가 있다. 삶 속의 아름다움을 예술로써 공유하고,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각자 내면에서의 해방감을 제공하며, 볼 수 있는 것도 보지 않을 수 있고,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는 힘. 그것이 바로 경계성을 잃었기에 더욱 빛나는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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