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읽고 걷고 쓰고’... 명품 교육정책 브랜드 기대한다
20여년 전 ‘나는 걷는다’라는 책이 독서계를 풍미했다. 프랑스 언론인 베르나르 올리비에. 퇴직 후 그는 700여년 전 마르코 폴로가 떠났던 실크로드 횡단에 도전한다.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부터 중국 시안까지. 1만2천㎞의 이 길을 1천99일간 걸었다. 1999년 시작해 2002년 마침내 시안에 입성했다. 그 무렵, 실크로드 지역은 정치정세나 치안이 매우 불안했다. 대부분 이름이 ‘스탄’으로 끝나는 나라들이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 수도 없이 길을 잃었다. 도둑과 들짐승의 위협, 병마에 시달리기도 했다.
원칙은 단호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걸어서 갈 것, 서두르지 말고 느리게 갈 것. 떠나기 전에는 관련 자료를 읽고 또 읽었다. 힘들여 걷고 난 후에는 그 체험들을 드라마처럼 써내려갔다. 그 기간 그는 ‘쇠이유’ 협회를 설립했다. 소년원에 수감된 청소년이 낯선 나라에서 3개월 동안 2천㎞를 걸으면 석방을 허가하는 프로그램이다. 대성공으로 평가받았다. 걷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 직면하는 위대한 그 무엇이라는 소신이다.
서두가 길어진 것은 ‘읽·걷·쓰’를 얘기하기 위함이다. 읽고 걷고 쓰고, 인천시교육청의 정책 브랜드다. 읽기를 통해 지식과 지혜를 쌓는다. 걷기를 통해 신체적 건강과 사유의 힘을 기른다. 쓰기를 통해 자신 또는 타인과 소통하고 성찰한다.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학습역량과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는 학생들의 통합 또는 개별 활동이다.
왜 읽·걷·쓰인가. 도성훈 교육감이 설명한다. “챗GPT가 답을 주는 시대, 내 생각을 찾는 교육이 필요하다.” 걷기는 낯선 세계로 건너가 질문하고 상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통합 활동은 함께 글이나 책을 읽고 관련 장소를 답사하거나 생각하며 걷는다. 개별 활동은 읽기 걷기 쓰기가 분절적으로 이뤄지는 활동으로, 더 자율적인 방식의 학습이다. 인천시교육청은 학생 학부모 교직원 시민 누구나 자발적으로 개인 또는 단체별로 읽·걷·쓰에 참여토록 했다. 개인은 자기 SNS에 그날 활동을 기록하고 #읽·걷·쓰 해시태그를 달아 참여한다.
그간 교육 정책도 정치에 물들어 소리만 요란했다. 우리는 우선 이 정책 브랜드가 학생들의 일상에 변화를 끼칠 수 있는 구체성에 주목한다. 단순히 편의점에 가기 위한 걷기가 아닐 것이다. 자기 성찰의 과정이 뒤따르는 오랜 걷기를 경험한다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 읽·걷·쓰가 처음의 취지대로 퍼져나가 인천의, 나아가 대한민국의 교육 브랜드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다만, 관료주의가 끼어들어 겉치레 실적 위주로 흐르는 것은 미리부터 경계해야 할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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