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보다] ‘쇼를 하라’

기자 2023. 7. 1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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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똑같은 걸 하느니 차라리 죽지’라는 다소 도발적인 카피를 내세운 텔레비전 광고가 있었다. 끊임없는 변화로 이동통신의 지각변동을 꿈꾸는 기업과 건강한 상호 소통적 메시지를 경쾌하면서도 파격적으로 풀어낸 백남준의 예술과 버무린 한 통신회사의 ‘쇼(SHOW)를 하라’이다. 이 광고에는 3D작업으로 부활한 고 백남준을 비롯해 ‘물고기 하늘을 날다’ 등의 작품들 속에서 다양한 퍼포먼스를 벌이는 생전의 모습이 담겼다. 1003개의 모니터로 구성된 ‘다다익선’을 포함해 권위에의 저항 및 모든 격식에 대한 도전을 상징하는 ‘피아노 부수기(총체 피아노)’와 같은 전위예술 역시 주요 장면으로 삽입됐다. 이 중 시청각을 넘어 감각까지도 경험할 수 있도록 한 ‘피아노 부수기’는 도래할 영상시대의 다면성을 반영하는 장치였다. ‘파괴를 통한 창조’라는 백남준의 예술행위를 빌려와 기존 이동통신시대의 종언을 고하고 다른 차원의 세계가 열렸음을 알리기 위한 도구이기도 했다.

홍경한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

‘쇼를 하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닌 단어인 ‘쇼’를 혁신이라는 지향가치와 새로운 영상의 세기를 예고하는 브랜드 이름으로 사용한 역발상으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백남준의 행위예술 중에도 ‘쇼’로 비춰지는 퍼포먼스가 적지 않았으니 맥락도 잘 맞았다. 실제로 백남준은 1998년 백악관 인턴 르윈스키와의 성추문으로 곤혹을 치르던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앞에서 바지를 내리는 해프닝을 벌였으며, 1984년엔 미국 뉴욕과 프랑스 파리를 실시간으로 연결해 전 세계인과 교류한 최초의 인공위성 생중계 쇼인 ‘굿모닝 미스터 오웰’ 등을 선보였다. 이밖에도 공연 중 느닷없이 남의 넥타이를 가위로 잘라버리기 등의 기행도 숱했다. 독창성을 담보한 그의 ‘쇼’는 다다(DADA)와 플럭서스(Fluxus)를 계승한 백남준의 철학을 대리하는 다원주의적 예술이었다. 빼어난 상상력으로 건강한 미래를 견인하는 한편, 유익한 ‘충격’을 선사하는 이벤트로의 역할도 맡았다.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는 국민의힘 의원들의 ‘생쇼’가 빚은 충격이 있기 전까진 그랬다.

지난 6월부터 국민의힘 의원들은 ‘릴레이 횟집 회식’을 진행하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따른 국민 불안감을 해소하고, 문제가 없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겠다는 취지다. 같은 달 30일에는 횟감 생선이 들어 있는 노량진 수산시장 수조물을 떠 마시는 괴기스러운 광경까지 연출했다. 그야말로 국민을 개·돼지로 여기지 않는 한 실행 불가능한 ‘쇼’의 극치, 한심한 작태였다.

수산시장을 찾아 생선을 구입한 후 카메라 앞에서 함지박만 한 쌈을 입에 구겨 넣거나 오염수를 방류하기 전의 수조물을 마시는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의 ‘시음 쇼’는 보는 이들의 속을 메스껍게 만들었다. ‘한국 총독부’도 아니건만 일본 정부가 적극 해명해야 할 일을 앞장서서 증명하려는 그들의 행태는 분노를 유발했다. 후쿠시마 바닷물을 들이켤 용기는 없으면서도 어떻게든 튀기 위한 몸부림에선 ‘윤심’을 향한 측은한 읍소마저 읽힌다. 그렇게 일본의 국익을 우선한 채 우리 국민의 희생을 강요하고 싶다면 차라리 일본으로 귀화해 출마를 하지 왜 대한민국에 기생하며 세금을 축내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방사능 오염수 방류 문제는 ‘쇼’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앞날이 걸린 중대 사안이다. 떼로 몰려다니며 회와 수조물을 먹는다고 시민들의 불안감이 해소되지도 않는다. 국회의원이 할 일이란 방류를 막거나 정말 문제는 없는지 꼼꼼하게 검증하고 확인해주는 것이다. 혐오스러운 ‘먹방’ 코미디로 예술보다 더한 충격을 주는 ‘쇼’ 따위가 아니라.

홍경한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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