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된 패배는 결코 헛되지 않았다… ‘현미즈’ 김다인-이다현-정지윤은 한층 더 성장했다
2023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12전 전패. 3세트를 따내는 동안 내준 세트 36개. 결과만 처참하다는 표현도 쓸 수 있다. 이 기사를 쓰고 있는 본 기자 역시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아무런 결과 없는, 패배로만 점철된 성장은 아무 쓸모도 없다’라고도 쓴 적 있다.
부끄럽지만, 본 기자의 기사를 스스로 반박해야 할 것 같다. 처참한 결과를 내는 와중에도 그 안에 뛴 선수들은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그리고 성장했다. V리그 내에서는 수준급, 혹은 최상급 기량을 보여준 어린 선수들이 태극마크를 달았지만, 자신들의 기량이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의 맞대결에서는 아직 통할 수 없다는 것을. 이것 하나만 느꼈어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선배의 이름이 더 이상 나오지 안게, 그들이 자신을 더욱 채찍질하고 구슬땀을 흘릴 이유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낱 같아진 2024 파리올림픽 출전 티켓이 아쉽긴 하지만.
2022~2023 V리그 플레이오프 2전 2패로 탈락한 이들은 숨가쁘게 달려온 6개월 여정의 피곤을 풀 틈도 없이 진천 선수촌에 입소했고, 2023 VNL을 마칠 때까지 약 세 달여를 또 달렸다. 튀르키예와 브라질 원정으로 장거리 비행을 하면서 그들의 육신은 더욱 지칠대로 지쳤다.
세 선수에게 체력적으로 문제는 없느냐고 묻자 삼구동성으로 말했다. “감독님이 처음엔 4일 휴식을 주셨다가 7일 휴식을 주셨어요. 그래서 괜찮아요”
강성형 감독은 이들을 배려했지만, 과제도 내줬다. 김다인은 “감독님이 휴식일을 늘려주시긴 했지만, 과제도 주셨어요. 웨이트 트레이닝을 3번 하라고요”라고 말했다. 이다현은 “어제 팀에 복귀해 운동을 해보니까 게임 감각은 올라와있지만, 힘든 건 사실이에요. 그래도 좀 쉴 시간이 주어져서 리프레시 됐어요”라고 거들었다. 정지윤은 “VNL 막바지쯤에는 정말 많이 지치더라고요. 힘들다 힘들다 생각했는데, 막상 일주일 쉬니까 금방 회복이 되더라고요”라며 웃었다.
세 선수 모두 국가대표로 뛰면서 승리 없이 연전 연패했지만, 소득은 있었다. 특히 김다인은 배구계 안팎에서 ‘향후 3~4년 이상 여자배구 대표팀을 이끌 세터를 얻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김다인 역시 이런 평가가 나오는 것을 몇 번 들었다며 수줍게 웃었다.
김다인은 “제가 지난해 대표팀에 못 갔어서 이번 대표팀에 가는 것 자체가 되게 소중했어요. 높은 레벨의 선수들과 맞붙어볼 수 있는 게 아무한테나 주어지는 게 아니니까요. 많지 지긴 했지만, 저를 더 많이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됐던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V리그에선 리시브가 잘 안되거나 수비로 걷어올린 이단볼은 외국인 주포에게 올리는 게 공식화되어 있다. 그러나 대표팀에선 다양한 선수를 활용해야 한다. 공식이 없는 상황에서 세터의 선택이 더욱 중시되는 셈이다. 김다인은 “리시브가 되지 않았을 때 세자르 감독님이 추구하는 게 공격수가 최대한 때리기 좋게, 공격수를 최대한 믿고 올려주라는 주문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리고 영상이나 피드백을 많이 주셔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미들 블로커 이다현은 이주아(흥국생명)나 정호영(KGC인삼공사), 박은진(KGC인삼공사) 등 또래 미들 블로커들과 많은 대화와 피드백을 주고 받았단다. 그는 “세자르 감독이 미들 블로커들에게 주문하는 게 많다. 속공은 물론이고, 이단 상황에서도 속공을 연결하려고 시도라도 해서 상대 블로커들을 교란할 수 있도록 하라고 했다”라면서 “지난해에는 세대교체 첫 해라 언니들 없이 하는 게 저희도 다 처음이라 혼란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올해는 지난해에 겪어던 시간들이 있어서 그런지 서로 말도 편하게 하고, 미들 블로커 넷이서 계속 소통을 많이 하면서 시너지가 좋았던 것 같다. 네 명 모두 장점이 달라서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시간이었다”라고 답했다.
V리그에서의 정지윤은 리시브 능력은 다소 떨어져도, 공격력 하나는 일품이란 평가를 받았다. 국내에서는 180cm의 신장은 아웃사이드 히터에서는 작지 않은 키였고, 힘 하나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지윤보다 훨씬 큰 미들 블로커들이 즐비한 국제무대에서는 정지윤의 공격은 그다지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단점으로 지목됐던 리시브는 준수한 모습이었다. 정지윤은 “국내에서 하면 포인트가 날 상황이 국제대회에선 차단되거나 수비로 걷어올려지는 그런 상황을 몸소 경험하다 보니 생각이 많아졌다. 세자르 감독님 역시 제가 힘들어하는 것을 아니까 어떻게 해야 포인트가 날 수 있는지 많이 가르쳐주셨다. 이제 그 기술을 습득할 수 있도록 연습을 많이 해야한다. 스트레이트 코스도 잘 때릴 수 있어야 하고, 원래 많이 때리는 크로스 코스도 더 각을 깊게 낼 수 있는 기술적인 부분을 더 연마하려고 한다”고 답했다.
이다현은 지난 시즌을 돌아보며 “최근 몇 년간 초반엔 압도적으로 잘하다가 시즌 끝에 힘이 떨어지니 더 아쉬웠다. 그래서 다가올 시즌엔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시즌 초반에 잘 된다고 신날 필요도 없고, 반대로 너무 안 된다고 해서 희망을 내려놓을 이유도 없다. 그냥 묵묵하게 시즌을 치러내서 마지막에 웃고 싶다”고 말했다.
이를 듣던 정지윤도 “저도 다현이 말에 동의해요. 지난 시즌 막바지에 팀 분위기도 안좋아졌고, 그게 시합에도 드러났다. 그래서 그런 안 좋은 분위기를 빨리 잡아야할 것 같다. 변화된 선수들과 함께 저희의 색깔을 찾아간다면 좋은 성적이 날 것이라 생각한다. 제 역할이 크다고 생각해서 책임감을 느끼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들을 이끌 김다인의 생각도 비슷했다. 그는 “마무리가 중요한 것 같아요. 새로운 분위기 속에 좋게 맞춰가다 보면 시너지 효과가 나지 않을까요. 시즌 끝에 웃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라고 답했다.
고성=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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