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의혹 입증 책임은 누가 져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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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기자는 안전한 직업인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요약하자면 의혹에 등장하는 시간, 공간, 행위가 구체적일 때는 의혹의 당사자가 충분한 증거를 제시해 의혹이 거짓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지만 시간, 공간, 행위가 구체적이지 않으면 의혹을 제기한 자가 입증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시했다.
"야당의 사과가 선행돼야 사업을 재개할 수 있다"는 주장은 어쩌면 의혹 제기자에게 입증 책임을 돌릴 제도적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내놓은 고육지책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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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기자는 안전한 직업인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기자는 자신이 쓴 기사에 일부 오류가 있더라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할 말은 많았지만 반박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는 이유가 있겠다 싶어서다.
예를 들어 2008년 4월 광우병 촛불시위를 촉발한 MBC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를 제작한 PD들은 아무런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 2011년 9월 대법원은 해당 프로그램의 주요 내용이 허위라면서도 PD들에게 적용된 명예 훼손 및 업무 방해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방송국 차원의 사과와 정정보도가 있었지만, 당시 시사교양국 부장은 훗날 MBC 사장까지 지냈다. 대놓고 편파적이기로 작정한 일부 지상파 방송사의 얘기지만 일반인들이 구분하기는 어렵겠다 싶다.
진실은 중요치 않은 정치인
거짓 의혹을 제기하고도 아무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치인은 언론인보다 훨씬 안전한 직업이다. 그나마 언론인은 오보에 따른 평판 위험, 사내 징계 및 언론중재위원회 제소 위험 등을 진다. ‘게이트키퍼’인 데스크가 기사가 팩트에 기반하는지, 관점이 상식에서 벗어나 있지 않은지 점검하고 걸러내는 이유다.
반면 정치인의 의혹 제기는 다르다. 실체적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휘발성 있는 의혹을 제기해 상대방에게 타격을 입히고 자기 진영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했느냐가 중요하다. 의혹 제기의 목적이 반드시 공익이 아니라는 것도 언론과의 차이점이다. 모든 아젠다가 해당 이슈에 빨려 들어가고 진영을 결집할 수 있으면 성공한 의혹 제기다.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이 대형 로펌 변호사들과 청담동 술집에서 술을 마셨다거나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일본의 사주를 받은 깡통 보고서를 내놨다는 의혹 등이 좋은 사례다.
의혹 제기자가 입증 책임져야
MBC PD수첩 판결에서 대법원은 언론이 제기한 ‘사실적 주장’의 입증 책임에 대한 중요한 판례를 남겼다. 요약하자면 의혹에 등장하는 시간, 공간, 행위가 구체적일 때는 의혹의 당사자가 충분한 증거를 제시해 의혹이 거짓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지만 시간, 공간, 행위가 구체적이지 않으면 의혹을 제기한 자가 입증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시했다. 막무가내로 의혹을 터뜨려 놓고 “사실이 아니면 당신이 입증해보라”고 하는 건 사회통념에 맞지 않는다는 취지다.
이 판결에 따라 MBC는 정정보도와 사과 보도를 내보내야 했지만, 정치인들이 자신이 제기한 의혹이 거짓으로 드러났다고 정정하거나 사과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 변경안이 김건희 여사 일가에 특혜를 주기 위한 것이라는 야당의 의혹 제기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사업 백지화’라는 초강수를 둔 건 그런 측면에서 이해가 간다.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입증할 방법도 없고, 경위를 소명해봐야 어차피 ‘답정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야당의 사과가 선행돼야 사업을 재개할 수 있다”는 주장은 어쩌면 의혹 제기자에게 입증 책임을 돌릴 제도적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내놓은 고육지책일 테다.
문제는 사회적 비용이다. 야당이 의혹을 제기할 때마다 이렇게 대처할 수는 없다. 국회 안에 의혹 제기자에게 입증 책임을 묻도록 하는 ‘의혹 심의위원회’라도 설치해야 하는 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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