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 볼!] 이강인의 팀, 파리 생제르맹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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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인이 드디어 프랑스 명문 구단 ‘PSG FC(Paris Saint-Germain F.C.)’에 입단했습니다. 파리 생제르맹(PSG) 구단은 9일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이강인과 2028년까지 5년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죠.
이강인의 이적료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2200만유로(약 314억원)로 추정됩니다. 이적료의 20%를 이강인이 가져간다는 보도도 나왔고요.
이강인은 홈페이지를 통해 “팀을 최대한 돕는 것이 나의 임무”라며 “팀이 모든 경기에서 이기고 최대한 많은 우승 트로피를 따내는데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PSG에 오기 전부터 프랑스 리그를 자주 봤다. 한국 선수들이 이전에도 많이 뛰어 잘 알고 있다”며 “PSG에 왔으니 프랑스 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최대한 빨리 프랑스어를 배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강인은 프랑스 리그에서 뛰는 13번째 코리안 리거가 됐습니다.
1998년 스트라스부르에서 ‘세오(SEO)’라 불리며 프랑스 현지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서정원을 시작으로, 이상윤(로리앙), 안정환, 강진욱, 어경준(이상 메스), 박주영(모나코), 남태희(발랑시엔), 정조국(오세르·낭시), 권창훈(디종), 석현준(트루아·랭스), 황의조(보르도), 윤일록(몽펠리에)이 프랑스 1부 리그 무대에서 뛰어본 선수들입니다.
물론 PSG는 이강인이 처음이죠. PSG는 1970년 창단해 역사가 비교적 짧지만, 프랑스 리그1(1부)에서 11회 정상에 오른 명문팀입니다. FA컵 격인 ‘쿠프 드 프랑스’에선 14회 우승을 차지했고, 리그컵인 ‘쿠프 드 라 리그’에서는 9회 챔피언이 됐죠. 세 대회 모두 PSG가 최다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 생제르맹은 무슨 뜻일까
이강인의 소속팀이 되면서 손흥민의 토트넘이 그랬듯 PSG는 이제 ‘국민 구단’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인이 선호하는 유럽 여행지 중 대표 도시가 파리인데 PSG 경기 관람이 주요 관광 코스 중 하나가 될 수 있겠네요.
그런데 PSG란 이름을 보면 궁금증이 생깁니다. 파리는 그렇다 치고, ‘Saint-Germain’은 어디서 유래한 이름일까요?
얼핏 보면 ‘Germain’이 있어 독일(영어로 Germany)과 연관성이 있다고 착각할 수 있지만,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프랑스어로 독일은 ‘Allemange(알르마뉴)’거든요.
생제르맹은 사실 지역 이름입니다. 프랑스엔 기초자치단체를 코뮌(commune)이라 하는데 파리 근교에 ‘생제르맹 앙레(Saint-Germain-en-Laye)’란 코뮌이 있습니다.
이 코뮌을 연고로 한 스타드 생제르맹이란 팀이 있었던 거고요. 이 팀은 1904년에 창단한 유서 깊은 클럽입니다. 생제르맹 앙레는 기부 활동에 앞장서 ‘가난한 자의 아버지’라 불린 제르맹(496~576) 파리 주교의 이름을 딴 지명(地名)입니다.
PSG는 1970년 파리 풋볼 클럽(파리 FC)과 스타드 생제르맹이 합병해 탄생했습니다. 당시 수도 파리에 빅클럽이 있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2만여명의 시민들이 서명 운동을 하기도 했죠.
파리 FC가 1969년 창단해 역사가 일천한 상황에서 스타드 생제르맹이 PSG의 모체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타드 생제르맹의 홈구장과 훈련장을 그대로 썼고, 감독과 주요 선수 등 선수단도 대부분 승계했습니다. 파리 FC는 재정적 지원을 주로 했고요.
PSG는 창단 첫해인 1970-1971시즌 프랑스 2부 리그 중부 그룹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1부 리그로 승격했습니다. 1971-1972시즌엔 20팀 중 16위로 잔류에 성공했지만, 파리 시 의회가 파리 팀이란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팀 이름을 파리 FC로 바꾸라고 요구하면서 격랑에 휩싸였죠. 결국 경영진이 분열되면서 팀이 파리FC와 PSG로 다시 갈라졌습니다.
시 의회 지원을 받은 파리 FC는 1부 리그에 남았고, PSG는 3부 리그로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창단 과정에서 열렬한 지지를 보냈던 파리 시민들은 대부분 PSG를 응원했습니다. 진정한 시민의 팀은 PSG였던 거죠.
패션 디자이너 다니엘 에스테 등 파리 사교계의 유명 인사를 등에 업고 급성장한 PSG는 1973-1974시즌 2부 리그 플레이오프를 거쳐 1부 리그로 승격했고, 공교롭게 같은 시즌 파리 FC는 2부 리그로 강등됐습니다.
PSG는 1974-1975시즌부터 파리 한복판의 ‘파르크 데 프랭스(Parc des Princes)’를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후 한 번도 2부 리그로 떨어지지 않으면서 수도 파리를 대표하는 클럽이 됐습니다. 파르크 데 프랭스에서 PSG 팬들이 자주 선보이는 응원 구호가 ‘Ici c’est Paris(여기가 파리입니다)’죠.
참, 이 경기장은 1998년 프랑스월드컵 당시 유상철이 벨기에전에서 동점골을 터뜨린 장소이기도 합니다. 당시 한국은 멕시코에 1대3 패, 네덜란드에 0대5 패를 당하며 차범근 감독이 대회 도중 경질되는 초유의 사태로 뒤숭숭했죠. 남다른 각오로 조별리그 최종전에 나선 한국은 유상철의 골로 1대1 무승부를 거둡니다.
2021년 세상을 떠난 유상철 전 인천 감독이 ‘슛돌이’ 감독 시절 꼬마 이강인을 참 아꼈던 것을 생각하면 이강인에겐 또 다른 의미로 특별한 경기장이 될 것 같습니다.
◇ 서서히 리그1 강호로
PSG는 1981-1982시즌 쿠프 드 프랑스 우승컵을 들며 주요 대회에서 첫 정상에 올랐습니다. 결승전에서 미셸 플라티니가 버틴 생테티엔과 맞붙었죠.
PSG는 차드 출신 스트라이커 남바팅그 토코의 선제골로 앞서가지만, 플라티니에 두 골을 내주며 역전을 허용합니다. 패색이 짙던 후반 막판 도미니크 로슈토가 동점골을 터뜨렸고, 승부차기 끝에 PGS가 감격의 우승을 차지합니다.
PSG는 1982-1983시즌에도 쿠프 드 프랑스 결승전에 오릅니다. 이번 결승 상대는 낭트. 2-2로 맞선 후반 37분 토코의 결승골로 PSG는 2연패를 이뤘습니다.
국내 축구 팬들에게 리버풀과 올랭피크 리옹 사령탑으로 유명한 제라르 울리에(2020년 별세) 감독이 PSG를 이끌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는 1985년부터 3년간 팀을 맡았는데 1985-1986시즌 팀에 첫 리그1 우승을 안겼죠. 당시 주축 멤버는 조엘 바츠, 도미니크 바트나이, 도미니크 로슈토(이상 프랑스), 루이스 페르난데스(스페인), 사페트 수시치(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등이었습니다.
PSG는 1991년 5월 프랑스 최초 민영방송인 ‘카날 플러스’가 인수한 뒤 공격적인 투자로 전력이 더욱 강해집니다.
1993-1994시즌 역대 두 번째 리그1 정상에 오르죠. 최대 라이벌인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가 직전 시즌에 벌인 승부조작이 드러나면서 1992-1993시즌 우승 박탈과 함께 1994년 2부 리그로 떨어지며 PSG 팬들은 더욱 신이 났죠.
PSG는 1994-1995시즌엔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에서 사상 처음으로 4강에 올랐습니다. 조지 웨아(라이베리아)와 히카르두 고메스, 하이(이상 브라질), 알랑 로슈, 다비드 지놀라, 폴 르갱(이상 프랑스) 등이 팀의 주축으로 활약했죠. 비록 4강에선 AC밀란(이탈리아)에 밀려 탈락했지만, PSG가 세계적인 강호의 면모를 충분히 보여준 시즌이었습니다.
하지만 PSG는 2000년대 초반 경영난에 처합니다. 2000-2001시즌에 앞서 니콜라 아넬카(프랑스), 2001-2002시즌에 앞서 호나우지뉴(브라질)를 데려오지만, 리그1 우승을 이루진 못합니다.
2003년 여름 영입한 파울레타(포르투갈)는 2005-2006, 2006-2007시즌 2연속 리그 득점왕에 오르죠. 하지만 점점 더 재정 상황이 나빠지자 카날 플러스는 PSG에 손을 뗍니다.
PSG는 쿠프 드 프랑스 등 컵대회에서 트로피를 몇 차례 들며 자존심을 세우지만, 리그에선 고전을 면치 못했죠. 2000년대 초반엔 올랭피크 리옹이 2001-2002시즌부터 2007-2008시즌까지 7연패를 하는 등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 카타르 자본 앞세워 스타 수집
그러던 2011년, PSG의 운명을 바꾸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타민 빈 하마드 알사니(2년 뒤 그는 카타르 국왕이 됩니다)가 카타르 국부펀드 자회사인 스포츠 인베스트먼트를 통해 PSG의 구단주가 된 것입니다. 이 배경엔 당시 대통령이자 PSG 팬인 니콜라 사르코지의 설득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PSG는 단숨에 세계적인 부자 구단이 됩니다.
PSG는 미친 듯이 선수들을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2012-2013시즌을 전후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스웨덴)와 데이비드 베컴(잉글랜드), 치아구 시우바(브라질), 에세키엘 라베치(아르헨티나), 마르코 베라티, 티아고 모타(이상 이탈리아)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PSG의 일원이 되었죠. 이탈리아 명장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이 2011년 12월부터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PSG는 2012-2013시즌부터 2015-2016시즌까지 리그 4연패를 달성합니다. 2012-2013시즌 30골로 득점왕을 차지한 즐라탄은 2013-2014시즌에도 26골로 득점 선두에 오릅니다. 2013-2014시즌부터 PSG에 합류한 에딘손 카바니(우루과이)도 입단 첫해에 리그 16골로 힘을 보태죠.
2014-2015시즌엔 즐라탄이 19골, 카바니가 18골로 득점 3~4위. 이 시즌 득점왕은 리옹의 알렉산드르 라카제트(27골)였습니다.
PSG는 2015-2016시즌에는 승점96으로 2위 리옹(승점 65)에 승점 31이 앞서는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합니다. 즐라탄이 38골로 득점왕, 카바니는 19골로 득점 3위에 오르죠.
하지만 즐라탄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2016-2017시즌엔 모나코가 PSG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챔피언에 등극합니다. PSG는 카바니가 35골로 득점왕을 차지한 것을 위안으로 삼았습니다.
모나코에 우승을 내준 PSG는 2017-2018시즌을 앞두고 설욕을 다짐하며 다시 돈다발을 풉니다. 당시 FC바르셀로나에서 리오넬 메시, 루이스 수아레스와 3각 편대를 이루고 있던 브라질의 수퍼스타 네이마르를 데려온 것입니다. 네이마르는 당시 최고 이적료인 2억2200만유로(당시 환율로 3000억원)에 PSG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또한 ‘신성’ 킬리안 음바페도 1년 임대 이적으로 PSG에 합류했습니다. 파리 태생의 로컬 보이가 PSG 유니폼을 입게 된 거죠. 이적료는 1억8000만유로(당시 환율로 약 2400억원)였습니다.
네이마르와 음바페를 데려오며 5000억원 이상을 쓴 PSG는 기대대로 2017-2018시즌 리그1 우승을 탈환합니다. 카바니가 28골로 득점왕에 올랐고, 네이마르는 19골로 득점 3위에 랭크됐죠. 네이마르는 어시스트 13개로 도움왕에도 올랐습니다. 음바페도 리그에서만 13골을 터뜨리며 가능성을 입증합니다. 쿠프 드 프랑스에서도 2014-2015시즌부터 4시즌 연속 우승컵을 들었습니다.
PSG는 2018-2019시즌을 앞두고 분데스리가에서 젊은 명장으로 손꼽힌 토머스 투헬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깁니다. 여유 있게 리그 2연패를 이룬 가운데 음바페가 33골로 리그 득점왕에 등극했습니다. 카바니가 18골, 네이마르가 15골을 보탰죠.
하지만 문제는 UCL이었습니다. 카타르 자본으로 유럽 최정상급 라인업을 꾸려왔지만, 유독 UCL에선 힘을 쓰지 못했죠. 2012-2013시즌부터 4년 연속 8강에서 탈락하더니 2016-2017시즌부터는 3년 연속 16강에서 좌절했습니다.
◇ 못 이룬 UCL 우승의 꿈
PSG는 2019-2020시즌도 리그1에선 손쉽게 우승을 차지합니다. 음바페가 리그 18골로 득점 공동 1위에 오른 가운데 네이마르가 13골, 마우로 이카르디가 12골을 넣었습니다. 쿠프 드 프랑스에서도 정상에 오른 PSG는 드디어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올라 트레블(3관왕)에 도전합니다.
상대 역시 트레블을 눈앞에 둔 바이에른 뮌헨. 코로나 여파로 8월에 열린 결승전에서 PSG는 음바페와 네이마르, 앙헬 디 마리아, 마르퀴뇨스 등을 선발로 내세웠지만, 한 골도 넣지 못하며 뮌헨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바이에른 뮌헨은 후반 14분 킹슬리 코망의 결승 골을 앞세워 UCL에서 역대 6번째 정상에 오릅니다. 사상 처음으로 UCL 결승에 오른 PSG는 첫 우승 기회를 다음으로 미뤄야 했죠.
2020-2021시즌, 까다로운 성격의 투헬 감독이 레오나르두 단장과 마찰을 빚으며 2020년 12월 PSG 지휘봉을 놓습니다. 손흥민의 토트넘 시절 스승으로 유명한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이 이어 사령탑에 올랐지만, UCL 준결승에서 맨체스터 시티에 밀려 탈락했습니다. 리그1에서도 릴(승점 83)에 승점 1이 모자라 2위(승점 82)로 밀렸습니다.
리그 우승을 내준 PSG는 2021-2022시즌을 앞두고 리오넬 메시를 영입하면서 메시와 네이마르, 음바페라는 꿈의 3각 편대를 구성합니다. 바르셀로나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할 것으로 보였던 메시의 이적은 세계 축구계에 큰 충격을 안겼죠.
하지만 천하의 메시도 PSG에 UCL 우승컵을 안겨주진 못했습니다.
메시가 뛴 PSG는 2021-2022, 2022-2023시즌 리그1에서 2년 연속 챔피언이 됐지만, UCL에선 연거푸 16강에서 탈락했습니다. 2021-2022시즌 리그 6골 14도움으로 기대에 못 미친 메시는 2022-2023시즌엔 도움왕(16도움 16골)에 오른 것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 이강인이 새로운 PSG에 희망 될까
PSG는 2023-2024시즌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습니다. 크리스토프 갈티에 감독이 인종차별 발언을 한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되면서 루이스 엔리케 감독이 새로 지휘봉을 잡게 됐습니다. 엔리케는 2014-2015시즌 바르셀로나의 트레블(3관왕)을 이끈 명장으로 유명하죠.
메시가 미국 MLS의 인터 마이애미로 이적한 가운데 이강인을 비롯해 슬로바키아의 센터백 밀란 슈크리니아르,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한 마르코 아센시오(스페인), 우루과이의 중앙 미드필더 마누엘 우가르테, 프랑스 국가대표 수비수 뤼카 에르난데스가 새로 PSG 유니폼을 입게 됐습니다.
다만 음바페와 네이마르의 거취가 아직 불투명하죠. 특히 음바페는 계약 기간이 1년 밖에 남지 않은 상태입니다.
PSG가 내년 여름 음바페가 자유계약으로 풀리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는 상황에서 음바페가 과연 팀과 재계약을 할지 관심을 끕니다. 음바페는 현재 PSG와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라 이적료를 챙겨야 하는 입장인 PSG가 올여름 음바페를 레알 마드리드 등에 팔 수도 있죠.
음바페는 최근 한 시상식에서 PSG가 UCL 우승을 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가란 질문에 “그건 내 문제가 아니다. 팀을 만들고 선수단을 꾸리는 사람들이 할 이야기”라고 밝혀 논란을 빚었습니다.
그는 “PSG에서 많은 골을 넣었지만, 사람들은 이를 과소평가한다”며 “PSG에서 뛰는 것이 내 축구 인생에 큰 도움이 안 된다. PSG는 분열하는 팀”이라고 말했습니다. PSG를 대표하는 스타임에도 자신과 팀을 별개로 생각하고, 팀을 비난한 그의 발언에 동료들도 화가 났습니다.
영국 익스프레스는 “음바페의 인터뷰에 일부 PSG 선수들이 반발하며 나세르 알 켈라이피 회장에게 항의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레오나르두 전 단장은 “음바페는 팀을 이끌어갈 선수가 아니다. PSG를 위해서라도 그를 내보내야 한다”고 일갈했네요.
어쨌든 어수선한 상황이지만 이강인은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위치를 찾아야 합니다. 그는 입단 직후 인터뷰에서 “공격적으로 어시스트를 올리거나 직접 슈팅을 때리는 능력이 있다. 수비적으로도 항상 도움이 되려고 한다”며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이강인은 공격형 미드필더와 윙어, 처진 스트라이커 등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워낙 스타들이 즐비한 팀이라 주전 경쟁은 치열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엔리케 감독은 4-3-3 포메이션을 선호합니다. 이강인은 오른쪽 윙포워드나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용될 것으로 보입니다. 음바페와 네이마르가 스리톱에서 두 자리를 차지한다고 본다면 이강인은 스리톱의 나머지 한 자리를 놓고 아센시오나 카를로스 솔레르와 경쟁해야 합니다.
이강인이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나 메짤라(중앙과 측면을 오가는 미드필더)로 나선다면 더욱 경쟁력이 있습니다. 마르코 베라티와 파비안 루이스, 비티냐 등은 중원에서 활약하지만, 공격적인 역할에선 이강인이 나을 수 있죠. 이강인이 10살 때부터 발렌시아 유소년 팀에서 뛰어 스페인어를 한국어보다 편하게 쓰는 점도 엔리케 감독이 스페인 출신인 것을 감안하면 긍정적인 부분입니다.
물론 엔리케 감독이 다른 전술을 들고 나올 수도 있고, PSG가 추가 영입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강인의 주전 투입 가능성을 높게만 볼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적어도 부상 선수가 나오면 가장 먼저 대체 선수로 투입되는 준주전급으로는 무난히 뛸 전망입니다. 훈련 과정에서 엔리케 감독의 눈에 든다면 의외로 붙박이 주전이 될 수도 있고요. 이제는 설레는 마음으로 이강인의 활약상을 기다려볼 시간입니다.
참, 이강인의 등번호는 19번입니다. PSG 유니폼의 이름은 ‘LEE KANG IN’을 쓰네요. 발렌시아 시절 현지 팬들이 ‘KANGIN’을 칸진으로 읽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확실히 띄어쓰기를 했으니 팬들도 ‘이강인’을 분명히 발음할 것 같네요. 곧 김민재의 바이에른 뮌헨행도 결정되는 분위기라 올여름은 한국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국내 팬들은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이강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올해 여름 투어에 나서는 PSG는 8월 3일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전북 현대와 친선 경기를 치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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