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진영]시청자 무서운 줄 몰랐던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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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요금에 합쳐 내던 공영방송 수신료를 따로 낼 수 있게 됐다.
1994년 수신료 전기료 통합징수제가 시행된 지 30년 만의 변화다.
불량 방송과 도덕적 해이로부터 시청자를 보호하기는커녕 수신료 안 내면 전기 끊겠다고 협박하는 야만적 제도가 통합 징수제다.
정지희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시청자의 선의에 의존하는 일본 수신료 제도에 대해 "공영방송이 소임을 다하지 않을 때 시청자가 변화를 촉구할 수 있는 최후의 무기"라며 "공영방송 존속의 중요한 열쇠"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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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방송 실패에 책임 물을 수 있어야
정부가 방송법 시행령을 바꿔 분리 징수제를 시행하자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의원들은 공영방송 발전과 징수의 효율을 명분으로 통합 징수를 못 박은 방송법 개정안을 내놨다. KBS도 시행령으로 수신료 징수 방식을 바꾸는 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한마디로 통합 징수제 시절로 돌아가자는 주장인데 동의할 수 없다.
TV 수신료는 방송법에 따라 TV가 있으면 KBS를 보든 안 보든 내야 하는 돈이다. 공영방송은 공공재이므로 누구나 공평하게 부담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런데 방송법에는 시청자의 수신료 낼 의무만 있지 수신료가 허투루 쓰일 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권한은 없다. 불량 방송과 도덕적 해이로부터 시청자를 보호하기는커녕 수신료 안 내면 전기 끊겠다고 협박하는 야만적 제도가 통합 징수제다.
KBS와 야당은 공영방송이 공적 책무를 다하려면 통합 징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통합 징수제 시절 KBS를 떠올려 보라. 안정적 재원으로 공영방송다운 방송을 해왔다고 인정해줄 시청자가 몇이나 될까. KBS는 2017년과 2020년 정부의 재허가 최저 기준 점수에 미달돼 간신히 조건부 재허가를 받았다. 당시 심사평을 몇 줄 옮겨본다. “한국 방송 문화의 표준을 제시해야 함에도 일반적 방송에 대한 기대에도 못 미치는 성과” “뉴스 공정성과 신뢰도가 지속적으로 떨어져” “2TV는 콘텐츠 차별성도 없고 재방송 비율이 타 방송사에 비해 높아 공영방송의 정체성 훼손…”.
수신료 쉽게 걷어 쓰다 문 닫을 위기에 처한 KBS와 달리 일본 NHK는 수신료 징수가 너무 어려운 덕에 세계적 공영방송으로서 명망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 방송법에는 수신료 납부 의무가 없다. NHK와 수신 계약 의무만 있을 뿐이다. 최근 법 개정으로 도입된 수신료 미납 시 할증료 규정을 제외하면 처벌 조항도 없다. 시청자의 자발적 납부에 생존이 달려 있으니 끊임없이 자정 노력을 하고 존재 가치를 증명해 보여야 한다.
2000년대 중반 NHK 내부 비리와 정권 외압설이 터져 나오자 시청자들은 수신료 납부 거부로 불신임을 표시했고 NHK는 대대적인 개혁과 창사 이래 첫 수신료 인하까지 발표했다. 정지희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시청자의 선의에 의존하는 일본 수신료 제도에 대해 “공영방송이 소임을 다하지 않을 때 시청자가 변화를 촉구할 수 있는 최후의 무기”라며 “공영방송 존속의 중요한 열쇠”라고 평가했다.
우리에게도 1980년대 전국적인 시청료 납부 거부 운동으로 ‘땡전 뉴스’를 단죄했던 경험이 있다. 당시 성명서 내용이 이랬다. “KBS는 공영방송임을 자처하며 시청료와 독점적 광고료 수입으로 운영하면서도 왜곡 편향 보도를 일삼는 등 … 시청료는 공정보도를 하고 그 대가로 받는다는 국민과의 계약으로, KBS가 이를 지키지 아니할 때 시청료 납부를 거부하는 것은 정당한 국민의 권리다.”
이후 통합 징수제로 가지 않았다면 KBS는 시청자 무서운 줄 알고 정신을 차렸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 전기료 합산이라는 꼼수를 부린 것이 결과적으로 KBS에 독이 됐다. 시청료 납부 거부 운동을 공영방송을 바로잡고 민주화를 앞당긴 자랑스러운 역사로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통합 징수제 시절로 돌아가자는 말은 꺼낼 수 없는 것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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