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 칼럼]수능이란 함정 속에 깔아 놓은 덫, 킬러 문항
획일적 수능으로 학생들 줄만 세우면 안 돼
서열화 대학체계 바꾸고 지역대 경쟁력 높여야
킬러 문항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불과 2년 전에는 미국 스탠퍼드대의 관련 분야 석학교수도 “터무니없이 어렵고 사실상 풀기 어렵다”고 비판한 생명과학 문제 때문에 당시의 평가원장이 1년도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사퇴했다. 그 후 작년 봄에 임용된 원장도 이번에 물러났으니 킬러 문항은 수험생만을 저격하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왜 이런 황당한 출제가 계속될까? 사교육 카르텔 때문이라면 발본색원이 마땅하다. 그러나 카르텔만 추적하면 앞으로 원장은 물론이고 출제자 모시는 일도 어려울 듯싶다. 근본을 해결해야 한다.
수능은 우리 학생들로서는 스스로의 일생이 걸렸다고 느끼는 가장 중요한 시험이다. 올해도 50여만 명의 꽃 같은 청춘들은 11월 하순 하루 종일 수능을 치를 것이다. 처음 80분간은 국어 시험인데, 이를 위해 학생들에게는 A3 용지에 빽빽하게 인쇄된 16쪽의 문제지가 주어진다. 평균 5분에 한 쪽을 읽으면서 문제를 파악하고, 어지럽게 흩트려 놓은 다섯 개 중에 정답 하나를 찾는 일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빨리 읽어야 한다. 속독이 과연 21세기 디지털 문명 시대를 살아갈 우리 학생들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능력일까?
교육자는 물론이고 교육에 관심 있는 우리 사회 기성세대라면 다른 과목은 너무 부담스러울 것이니 수능 국어시험 문제를 한번 풀어보기 바란다. 문제와 정답은 모두 교육과정평가원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다. 딱 20분 혹은 40분만 정성스레 시험을 치른 후 어디까지 풀었는지 그리고 몇 점 정도 받았는지 검토해 보면 좋겠다. 이를 경험하면 누구라도 수능에 대한 커다란 분노와 미래 세대에 대한 죄스러움을 느낄 것으로 확신한다. 수학도 과학도 모두 마찬가지다. 적절한 것 혹은 적절하지 않은 것, 그리고 있는 대로 고르기 등 실수를 유발하기 위해 정성을 다한 문제들이다.
왜 이렇게 되었나? 그 이유는 수능의 목적이 학생들을 1등부터 한 줄로 세우는 철저히 비교육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소위 변별력을 위해 우리는 학생들을 한날한시에 험하고 깊은 구덩이, 즉 함정(陷穽)에 몰아넣고 이를 헤집고 나오는 순서를 매기고 있는 듯싶다. 그것도 모자라 구덩이 여기저기에 흩어 놓은 덫으로 발목을 잡는 것이 소위 킬러 문항이다. 덫을 제거하는 일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근본은 구덩이를 손보는 것임이 자명하다.
그러면 수능은 왜 확실한 변별력을 추구하나? 그 바탕에는 SKY를 위시한 수도권 대학 입학에 치열한 경쟁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수험생이 여기에 몰리고 있다. 이를 완화하고 사교육 부담도 줄이기 위해서는 서열화된 대학 체계를 바꾸고 지역 대학들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교육부가 지역 대학들을 지원하는 글로컬 사업은 대단히 바람직한 방향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사교육비로 매년 30조 원 가까이 지출하고 있는데 앞으로 5년간 3조 원을 투입하는 글로컬 사업으로 이 문제가 얼마나 해결될까?
혹자는 수능이 가장 공정한 대입 전형 방법이라 주장하고 있다. 공감이 가는 측면도 있지만 그러나 우리는 수능으로 잃는 것이 너무 많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본보 칼럼 “수능의 존재 이유를 고민할 때다”(2020년 1월 2일) 혹은 “수능, 공정하지도 평등하지도 않다”(2022년 2월 24일) 등에서 수차례 밝혔기에 반복은 피하겠다. 참으로 아쉬운 일은 조국 가족이 빚은 입학비리로 여론이 악화되자, 이를 돌파하기 위해 2019년 문재인 정부는 16개 수도권 대학을 특정해 40% 이상의 입학생을 수능으로 선발하게 강제한 사실이다. 수능의 비중을 훌쩍 높이며 동시에 대학 서열을 정부가 지정해 준 셈이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이제는 우리 학생들을 획일적 수능으로 줄 세우는 일을 버려야 한다. 학생들은 인간이다. 점수 기계가 아니다.
김도연 객원논설위원·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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