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날 강하게 했다” 우크라 엄마, 세계 1위 꺾고 4강
전쟁이 모든 걸 잿더미로 만들어도, 희망까지 빼앗을 순 없다.
우크라이나의 엘리나 스비톨리나(29·세계 76위)가 12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윔블던 테니스 대회 여자 단식 8강전에서 세계 1위 이가 시비옹테크(22·폴란드)를 2시간 51분 혈투 끝에 세트스코어 2대1(7-5 6-7<5-7> 6-2)로 누르고 4강에 진출했다. 시비옹테크의 마지막 샷이 네트에 걸리며 승리가 확정되자 스비톨리나는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자신조차 승리를 예상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윔블던 4강은 2019년 이후 4년 만이다.
한때(2017년 9월) 세계 3위까지 오른 그는 동료 테니스 선수 가엘 몽피스(37·프랑스·318위)와 2021년 7월에 결혼해 작년 10월 딸을 출산한 뒤 지난 4월에야 코트로 돌아왔다. 랭킹이 낮아 이번 대회 출전 자격조차 없었다. 하지만 특별 초청에 해당하는 와일드카드(wild card)를 통해 경기에 나섰다.
결과는 이변의 연속이었다. 스비톨리나는 승승장구했다. 특히 그는 지난 8일 대회 16강에 오르면서 당시 주말에 열릴 예정이던 가수 해리 스타일스(29·영국)의 콘서트 티켓을 양도하기도 했다. 16강에 오를 일이 없을 것이라고 예상해 미리 콘서트 티켓을 사놓았는데, 뜻밖의 돌풍에 이를 포기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8강까지 안착해 시비옹테크를 상대했다. 시비옹테크는 지난해 투어 37연승을 달리고 최근 4년 동안 메이저 대회를 4차례(프랑스오픈 3회·US오픈 1회) 제패, 여자 테니스계 ‘이가 시대’를 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선수. 그러나 스비톨리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악착같은 수비력으로 공을 받아내고, 허를 찌르는 기습적인 플레이로 승리를 쟁취했다.
스비톨리나는 경기가 끝난 뒤 “전쟁이 나를 정신적으로 더 강하게 만들었다. 코트 위에서 어려움이 있더라도 더는 재앙처럼 받아들이지 않는다. 살다 보면 더 힘든 일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막 돌아왔다. 다시 정상에 오르고 싶은 열망이 있다. 특히 아이가 생기고 전쟁을 겪으면서 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더 허비할 시간이 없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작은 행복을 선사할 수 있어 기쁘다”고 덧붙였다. 그는 우크라이나 오데사가 고향. ‘흑해의 진주’로 불리며 러시아군 주요 폭격지이기도 한 곳이다. 스비톨리나는 러시아 침공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러시아와 그 동맹국 벨라루스 출신 선수들과 맞붙으면 경기를 마치고 나누는 악수 관행을 계속 거부하고 있다. 전쟁 피해 복구를 위해 모금 운동을 벌여 수십만 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시비옹테크는 이날 우크라이나 국기 색을 상징하는 리본을 모자에 달고 나왔다. 패배에도 “스비톨리나는 더 당당하고 배짱 있게 (경기)했다. 계속 응원하겠다”며 찬사를 보냈다. 스비톨리나는 13일 한국계 제시카 페굴라(29·미국·4위)를 2대1로 제압한 마르케타 본드로우쇼바(24·체코·42위)와 결승 진출을 두고 다툰다. 스비톨리나는 아직 메이저 대회 결승에 오른 적이 없다.
남자 단식에선 통산 8번째 윔블던 우승을 겨냥하는 세계 2위 노바크 조코비치(36·세르비아)가 러시아의 안드레이 루블료프(26·7위)를 3대1로 제치고 4강에 올랐다. 신예 얀니크 신네르(22·이탈리아·8위) 역시 로만 사피울린(26·러시아·92위)을 3대1로 따돌렸다. 둘은 14일 준결승에서 격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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