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나토 정상들 보란 듯 ICBM 고각 발사
미 정찰 비행·대북 규탄 성명 반발
고도 6000㎞ 이상 ‘미 전역 사정권’
일 방위성 “74분 비행 역대 최장”
윤 대통령, 나토서 화상 NSC 주재
북한이 미국 전역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12일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최근 미국 측의 북한 배타적경제수역(EEZ) 상공 정찰 비행에 강력하게 반발해온 북한이 이를 명분 삼아 강력한 군사 도발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이날 합동참모본부(합참)에 따르면 군은 평양 일대에서 동해상 일본 오쿠시리섬 방향으로 ICBM 1발이 발사된 것을 오전 10시쯤 포착했다. 합참은 “미사일은 고각으로 발사돼 약 1000㎞ 비행 후 동해상에 탄착했다”고 밝혔다.
마쓰노 히로카즈 일본 관방장관은 “미사일의 최고 고도가 6000㎞를 넘고 비행거리도 약 1000㎞에 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오전 9시59분 발사된 미사일이 11시35분 낙하해 총 74분을 비행했다고도 밝혔다. 이는 지난해 3월24일 발사된 북한 ICBM의 역대 최장 기록 71분을 넘어선 것이다.
일본 방위성은 정각 발사 시 탄두 무게 등에 따라 최장 사거리가 1만5000㎞를 넘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이 경우 미국 본토 전역을 사정거리에 두게 된다.
이번 ICBM이 액체 연료 기반 화성-17형인지, 신형 고체연료를 사용한 화성-18형인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분석이 엇갈린다. 최고 고도는 북한이 지난 4월13일 처음으로 시험 발사한 화성-18형(3000㎞ 미만)보다 화성-17형의 역대 최고 고도(6100㎞)에 가깝다. 그러나 비행 시간이 화성-17형의 역대 최장 시간(70분)보다 길었던 점을 고려하면, 이미 전력화 단계에 들어선 화성-17형보다는 개발 단계에 있는 화성-18형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화성-18형의 최초 시험 발사 결과를 토대로 지속적으로 개발·발전시켜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지난달 15일 윤석열 대통령의 한·미 연합 합동 화력격멸훈련 참관에 대한 반발성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 두 발을 발사한 지 27일 만이다.
최장 사거리 1만5000㎞ 넘어…‘목표는 미국 본토’ 분명히
고체연료 신형 화성-18형 무게…“미 EEZ 침범” 트집 잡아 시위
한·미 안보 밀착 겨냥 ‘체제 결속’…27일 북 전승절 앞 긴장 고조
ICBM은 지난 4월13일 화성-18형 시험 발사 후 90일 만이다.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는 미국을 상대로 한 군사 도발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북한은 지난 10일부터 국방성 대변인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명의의 담화를 잇따라 발표하고 미군 정찰 자산이 북한 EEZ 상공에서 비행하는 것이 ‘주권 침해’와 ‘무단 침범’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미 정찰 자산을 격추할 수 있다고도 위협했다.
한·미 군 당국이 “EEZ는 상공 비행의 자유가 있는 곳”이라며 이 같은 문제 제기를 일축하자 북한이 미사일 발사로 재차 경고의 뜻을 전한 것으로 분석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ICBM 발사는 압박 대상이 미국 본토임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밝혔다.
오는 27일 정전협정 70주년을 앞두고 한·미가 대북 안보결속을 강화하는 데 대한 경계차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미는 오는 18일 핵협의그룹(NCG)을 차관급으로 격상해 서울에서 첫 회의를 열기로 했고 미국 오하이오급 전략핵잠수함(SSBN)이 조만간 한국에 기항할 것임을 시사했다. 7월27일을 전승절로 기념하는 북한으로서는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번 발사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기조에 반발하는 차원으로도 해석된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 참가한 31개국 정상은 11일(현지시간) 공동성명을 통해 북한에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를 요구했다. 양 교수는 “시기와 내용을 볼 때 나토 정상 성명의 대북 규탄을 배격하고 정찰위성 실패의 충격을 벗어나 체제결속을 이끌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나토 정상회의 참석차 리투아니아를 방문 중인 윤 대통령은 12일 현지에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었다. 윤 대통령은 국가위기관리센터와 화상으로 연결해 회의를 주재하고 “북한의 불법행위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한·미 핵협의그룹 회의를 통해 확장억제 실행력을 더욱 강화해나갈 것”을 지시했다고 대통령실은 밝혔다.
합참은 “우리 군은 북한의 추가 도발에 대비하여 한·미 간 긴밀한 공조하에 관련 동향을 추적 감시하면서 북한의 어떠한 도발에도 압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기초로 확고한 대비태세를 유지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유새슬 기자 yoos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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