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시럽급여 안돼” 실업급여 손질 신호탄…노동계 ‘부글부글’
양대 노총, 강력 반발하며 “노동자에 책임 넘기는 기막힌 발상”
(시사저널=이혜영 기자)
국민의힘과 정부가 실업급여(구직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대대적 변화를 예고하고 나섰다. 최저임금의 80%로 지급되는 실업급여가 '시럽급여'로 불릴 만큼 여러 부작용을 낳는 데다 노동 의욕을 꺾는 단계로까지 접어들어 손질이 불가피 하다는 게 당정 판단이다.
노동계는 즉각 반발했다. 양대 노총은 윤석열 정부가 질 낮은 일자리와 노동 구조의 병폐는 그대로 둔 채 저임금 노동자에게 고통을 전가하려 한다며 당정 결정을 맹비난했다.
"일 안하는데 근로자보다 돈 더 받는 기형적 구조"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12일 당 노동개혁특별위원회가 개최한 실업급여 제도개선 민당정 공청회를 마친 뒤 브리핑 열고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폐지하는' 방안을 포함해 근본적인 제도 개선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박 의장은 "일하는 사람이 (실업급여 수급자보다) 더 적게 받는 기형적인 현행 실업급여 구조는 바뀌어야 한다"며 "실업급여가 악용돼 달콤한 보너스란 뜻의 '시럽급여'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데 참석자들이 공감했다"고 강조했다.
박 의장은 '하한액 하향과 폐지 중 어느 쪽에 무게가 실리느냐'는 질문에 "모든 것(을 보고 있다)"이라며 의견 수렴을 거쳐 최종 방안을 확정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공청회 참석자들은 실업급여가 제도 도입 취지에서 벗어나 오히려 실직자의 복귀 의욕을 꺾고, 노동시장 불공정성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저임금 근로자보다 실업급여 수급자들이 더 많은 지원금을 받는 탓에 재취업 요인이 줄고,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속출한다는 것이다.
당정에 따르면, 지난해 실업급여 수급자 163만 명 중 28%인 45만3000명의 최저 월 실업급여는 184만7040원이다. 이는 최저임금 근로자의 세후 월 근로소득 179만9800원보다 많다.
노동개혁특위 위원장인 임이자 의원은 "실업이 일하는 것보다 더 버는 형태가 됐다"며 "개미보다 베짱이를 더 챙겨주느냐며 비난하는 여론이 있다. 내가 낸 보험료가 불공정하게 쓰인다면 누가 성실히 납부하고 싶겠느냐"고 비판했다.
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도 "일하며 얻는 소득보다 실업 급여액이 더 높다는 건 성실히 일하는 다수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노동시장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점에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인 실업급여 하한액과 관대한 실업급여 지급요건 역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당정은 180일만 일하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근무 기간 요건을 1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실업급여 수급 요건인 '권고사직'을 더 엄격하게 규정하는 방안, 실업급여 반복 수급 때는 지급 횟수를 기준으로 급여액을 감액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 차관은 현행 구조에 대한 문제점을 재차 지적하며 "외환위기 임시 조치로 크게 완화된 수급 여건이 지난 25년간 그대로 유지됐고 2017년 이후에는 최저임금과 연동된 하한액이 빠른 속도로 상승해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높은 하한액, 상대적으로 관대한 수급요건'이라는 독특한 특성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근 실업급여 수급자와 지급액이 가파르게 증가했다"며 "실업급여 재정의 연이은 적자로 인한 제도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도 커졌다"고 말했다.
당정은 반복적인 실업급여 수급과 부정수급에 대한 특별점검을 늘리고 허위로 구직활동을 한 수급자에게는 제재를 강화하는 방안도 추진할 방침이다.
박 의장은 "실업급여를 5년간 3번 이상 받는 반복 수급 사례는 2018년부터 계속 증가해 이미 연 10만 명을 넘겼다"며 "동일 직장에서 24번이나 실업과 재취업을 반복하며 실업급여를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올해 3월 기준 8280만∼9126만원 정도 부정 수급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노동계 "노동자에 고통 전가" 맹폭
노동계는 당정의 실업급여 제도 개선 검토 방침에 반대하며 정부가 노동자들을 더 열악한 환경으로 내몰고 있다고 성토했다.
민주노총은 논평을 내고 "청년들이 구직을 단념하는 것이 과연 실업급여가 높아서인가"라며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기업의 고용 관행과 양질의 안정적 일자리가 부족한 현실을 바꾸지 않고 실업급여를 깎아 취업률을 높이겠다는 발상에 기가 막힌다"고 일갈했다.
민주노총은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800여만 명의 특고(특수고용직)·플랫폼 노동자들에게 제도 적용을 확대하는 것이 실업급여의 바람직한 개선 방향"이라며 "민주노총은 실업급여 삭감을 저지하기 위해 저임금 청년,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노총 이지현 대변인도 "노동자 의사와 무관하게 이뤄지는 비자발적 실직에 대해서만 실업급여가 지급되는 등 수급 요건이 매우 엄격하다"며 "실업급여 부정 수급을 제대로 관리·감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노동자들이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취직과 퇴사를 반복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꼬집었다.
이 대변인은 "실업급여를 반복해서 받는 것은 퇴사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질 낮은 일자리가 많기 때문"이라며 "그런 실업 노동자들의 실업급여를 삭감하는 것은 열악한 처지의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것이다. 실업급여 삭감 논의가 아니라 계약 종료와 해고, 권고사직이 만연한 노동시장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괜찮은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고 직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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