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 우크라에 가입 일정 제시 안 해…젤렌스키 "터무니 없다"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우크라이나가 희망했던 나토 가입에 대한 구체적 일정을 제시하지 않은 채 가입 절차 단축만을 약속하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실망감을 표시했다. 나토가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태평양 지역 4개국 정상을 초청하고 정상회의 공동성명에서 중국을 도전으로 언급한 데 대해 중국 쪽은 "검은 손을 거두라"며 반발했다.
나토 31개 회원국은 11일(현지시각)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열린 정상회의 첫날 채택한 공동성명에서 "우리는 우크라이나가 나토 회원국이 될 것이라는 2008년 부쿠레슈티 정상회의 내용을 재확인했다"며 "회원국들이 동의하고 조건이 충족되면 우크라이나에 동맹 가입 초청을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 가입 일정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가입 경로에 대한 명확한 제시를 요구한 우크라이나 쪽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나토는 2008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열린 정상회의 공동성명에서도 우크라이나가 나토 회원국이 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구체적 일정은 제시하지 않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가입 일정이 제시되지 않는 것은 "터무니 없다"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나토가 "우크라이나를 초대하거나 동맹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 이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두고 러시아와의 협상 여지를 남겨두는 것을 의미한다"며 "러시아에게 테러를 지속할 동기를 주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나토는 다만 우크라이나의 가입 절차가 개시될 경우 절차의 일부인 회원국 활동 계획(MAP·Membership Action Plan)을 면제해주기로 했다. MAP 절차는 나토 가입을 희망하는 국가에 대해 정치, 경제, 국방 등 폭넓은 범위의 목표치를 제시하고 이를 평가하는 과정이다. 북마케도니아의 경우 1999년 MAP 절차에 돌입해 2020년에야 나토에 가입할 수 있었다. 반면 MAP 절차를 건너 뛴 핀란드의 경우 신청 뒤 1년이 안 돼 나토에 합류했다. 스웨덴도 이 절차를 면제 받았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MAP 면제, 나토-우크라이나 평의회 창설, 부쿠레슈티 정상회의 약속 재확인 등이 우크라이나에 "나토 회원국으로 향하는 명확한 경로"를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하며 우크라이나를 달랬다.
한 동맹국에 대한 공격을 나토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는 집단방위조약을 아래 놓인 나토 입장에선 전쟁 중 우크라이나를 동맹으로 받아들일 경우 러시아와 직접 대결하는 셈이 돼 위험 부담이 크다. 전쟁 뒤 즉시 가입안에 대해서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막기 위해 오히려 전쟁을 연장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다만 러시아와 직접 국경을 맞댄 동유럽 회원국들은 우크라이나 가입이 나토의 동쪽을 강화하는 빠른 길이라며 우크라이나의 합류를 촉구했다.
가입에 대한 일정 제시는 거부했지만 나토 회원국들은 정상회의를 계기로 우크라이나에 추가 지원안을 쏟아냈다. <로이터> 통신 등을 보면 영국은 우크라이나에 챌린저2 전차 탄약 수천 발과 전투 및 군수 차량 70여대 지원을 포함해 5천만파운드(약 845억원) 추가 지원 계획을 밝혔다. 프랑스는 사거리 250km 가량의 장거리 미사일인 스칼프(SCALP) 순항 미사일 제공을 약속했고 독일은 레오파르트 전차 25대, 패트리어트 미사일 발사 장치 등 7억유로(1조원) 규모 추가 지원 계획을 준비했다.
이날 나토 공동성명에선 중국도 "도전"으로 여러 차례 언급됐다. 나토는 성명에서 "중국의 야심과 강압적 정책은 우리의 이익, 안보, 가치에 도전한다"며 "중국의 악의적인 하이브리드 및 사이버 작전, 대결적 수사와 허위정보는 (나토) 동맹을 겨냥하고 동맹의 안보를 해친다"고 비판했다. 성명은 이어 "중국은 주요 기술 및 산업 부문, 핵심 기반시설, 전략 물자와 공급망을 통제하려 한다. 또 경제적 영향력을 이용해 전략적 종속을 만들고 영향력을 강화하며 우주, 사이버, 해양 영역에 이르기까지 규칙 기반 국제 질서를 전복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미국 CNN 방송은 이번 정상회의에 윤석열 대통령을 포함해 일본, 호주, 노르웨이 등 아시아·태평양 4개국 정상이 초청된 것을 들어 나토의 초점이 유럽과 북미에서 이 지역까지 확장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방송은 미 평화연구소(USIP)의 수석 정책분석가 미르나 갈릭이 4개국 정상 참석은 나토가 "인도·태평양 지역에 관심을 갖고 있고 그 초점은 중국이 동맹에 제기하는 도전에 맞춰져 있다는 증거"라고 짚었다고 전했다.
나토는 일본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할 계획까지 갖고 있지만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반대 중이라고 일본 NHK 방송이 지난주 보도하기도 했다. 방송은 프랑스 대통령궁 관리가 반대 이유로 나토가 "북대서양" 동맹이라는 지리적 경계를 지켜야 한다는 원칙적 근거를 들었다고 설명했다. 올 초 중국을 국빈 방문한 마크롱 대통령은 국빈 방문해 유럽이 대만을 둘러싼 중·미 긴장과 거리를 둬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중국은 즉각 반발했다. 유럽연합(EU) 주재 중국 대표부 대변인은 나토 공동성명이 "기본적 사실을 무시한 채 중국의 입장과 정책을 자의적으로 왜곡하고 고의적으로 비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나토의 아시아 태평양 동진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도 이날 사설을 통해 "오만한 나토에 경고한다"며 "나토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향해 뻗은 검은 손을 조속히 거둬야 한다"고 비판했다. 매체는 "아시아의 대다수 국가는 나토를 환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끔찍한 괴물로 보고 있다"며 "나토가 오직 안보 위기, 전쟁 위협, 개발 어려움만을 가져오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매체는 "주변국의 강한 반대에도 핵 오염 폐수를 바다에 버리려는 계획을 고집스럽게 밀어 붙이고 있는 일본"이 "나토의 군사적, 정치적 문제를 아시아에 지속적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며 이는 "파시스트 침략에 이은 일본의 아시아에 대한 두 번째 배신이자 범죄"라고 규탄했다.
한편 정상회의를 앞두고 튀르키예(터키)가 스웨덴의 나토 가입에 대한 반대를 전격 철회한 데 대해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던 튀르키예가 서방 쪽에 손을 내민 것이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관측이 나온다. 튀르키예는 최근 러시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전쟁 초 우크라이나 남동부 마리우폴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 항전하다 러시아군에 포로로 잡힌 아조우연대 지휘관들을 우크라이나로 돌려 보내기도 했다.
<로이터>는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칼립 달레이 연구원이 최근 튀르키예의 행보는 튀르키예가 러시아에 치우쳐 있다는 지적을 반영한 "분명한 (관계) 재조정"이라며 배경엔 서방과의 긴장이 경제와 투자 흐름을 악화시켰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짚었다. 미국은 튀르키예가 스웨덴 나토 가입 반대 철회를 선언한 지 하루 만인 11일 의회와 협의를 통해 F-16 전투기를 튀르키예에 이전하는 방침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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