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사’ 산재 인정 다 됐는데···서울대, 청소노동자 손해배상소송서는 “업무 강도 과장됐다”
2021년 6월, 서울대 기숙사 휴게실에서 청소노동자 이모씨가 사망했다. 이씨의 유족은 이씨가 평소에 만성적 과로로 힘들어했다며 그가 업무상 요인으로 사망했다는 점을 입증하려 했고, 6개월 만에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유족은 지난해 6월 또 다른 싸움에 돌입했다. 서울대를 상대로 학교 측 관리 소홀에 대한 책임을 묻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그 첫 재판이 12일 열렸다.
사건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씨는 본인 담당이었던 서울대 관악학생생활관 925동 휴게실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어 이씨는 하루에 4개 이상의 100ℓ 쓰레기봉투를 직접 들어 건물 밖으로 옮겨야 했다. 코로나19로 쓰레기량이 증가하면서 업무 부담도 덩달아 커진 상황이었다. 이씨는 사망하기 전 12주 동안 꼬박 주6일 근무를 계속했다.
이씨의 유족과 동료들은 이씨가 직장 내 괴롭힘에도 노출돼 있었다고 주장했다. 관리자인 안전관리팀장이 A씨로 바뀐 후 업무 회의에서 정장을 착용하라고 요구받거나, 건물명을 영어나 한자로 쓰게 하는 등 시험을 치러야 하는 등 ‘갑질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이씨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과도한 업무에 시달렸다는 사실은 공식 조사를 통해 확인됐다. 고용노동부는 같은 해 7월 이씨의 죽음과 관련해 일부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다고 판단하고 서울대에 개선을 지도했다. 근로복지공단도 그해 12월 이씨가 ‘업무상 질병’으로 인해 사망했다면서 산업재해 판정을 내렸다. 산재 판정이 나온 이후에도 서울대는 공식적인 사과를 내놓지 않았다. 이에 이씨 유족은 지난해 6월 학교도 관리 소홀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서울대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1억4600여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제기한 지 1년1개월 만인 이날 열린 첫 변론기일은 10여분 만에 종료됐다. 양측은 당시 업무 환경으로 건강장해가 발생하리란 것을 서울대가 예측할 수 있었는지, 서울대가 근로자의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한 보호의무를 위반했는지 등을 두고 다퉜다. 이씨의 사망과 청소업무 간 상당인과관계가 있었는지도 쟁점이 됐다.
서울대 측은 ‘이씨의 업무 강도가 과장됐고, 이씨의 사망은 예측할 수 없는 건강장해였으며 업무와도 인과관계가 없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반면 유족 측은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기숙사에서 배출되는 월 쓰레기량이 2배 넘게 늘어나 업무량이 증가할 것이란 점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상황이었다”고 했다. 새로 발령된 팀장의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이씨가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고, 이는 근로복지공단에서도 상당한 인과관계를 인정했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이날 법정에 참석한 이씨의 남편 이홍구씨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학교에서는 법을 위반한 게 없다고 하지만, 그 ‘합법’이란 말 뒤에서 일어난 일들은 일어나선 안 되는 일들이었다”며 “법의 판단으로 학교가 잘못했다는 점을 인정받고 싶다”고 밝혔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김문기의 추석 선물’ ‘딸에게 보낸 동영상’···이재명 ‘선거법 위반’ 판결문
- 조국 “민주주의 논쟁에 허위 있을 수도···정치생명 끊을 일인가”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사라진 돌잔치 대신인가?…‘젠더리빌’ 파티 유행
- “민심의 법정서 이재명은 무죄”···민주당 연석회의 열고 비상행동 나서
- 40대부터 매일 160분 걷는 데 투자하면···수명은 얼마나 늘어날까?
- 드라마인가, 공연인가…안방의 눈과 귀 사로잡은 ‘정년이’
- 중학생 시절 축구부 후배 다치게 했다가···성인 돼 형사처벌
- 은반 위 울려퍼진 섬뜩한 “무궁화꽃이~”···‘오징어게임’ 피겨 연기로 그랑프리 쇼트 2위
- ‘신의 인플루언서’ MZ세대 최초의 성인···유해 일부 한국에 기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