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문항 사태의 본질 ‘상대평가’ 바꿔야

한겨레 2023. 7. 1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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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서울의 한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당정은 지난달 19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 이른바 ‘킬러문항’(초고난도 문항)을 배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왜냐면] 장승진 |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위원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무엇을 아는 사람은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은 못하다). 배움과 관련한 공자의 유명한 말이 최근의 ‘킬러 문항’ 논쟁을 되짚게 한다. 킬러 문항이란 교육과정의 수준과 범위를 벗어남으로써 학교 교육과정으로 대비하기 어려운 문항으로, 최상위권 변별을 겨냥해 왔다. 하지만 실상 킬러 문항이 저격한 것은 학생들의 호(好)와 락(樂)이었으며, 배움의 즐거움은 사라진 채 시험에 나오는 것만 알아야 한다는 기계적 학습만이 살아남았다.

킬러 문항에 대한 비판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알면서도 총구를 거둬들이지 못한 이유는 4%, 7%, 11%를 지켜내야 하는 9등급 상대평가라는 전제 때문이다. 다수의 학생이 올바른 답을 찾아서는 안 되고, 다수가 높은 성취를 이뤄서도 안 되며, 다수의 만점자가 나올 경우 사달이 나고 마는 ‘상대평가의 역설’을 지녔음에도 우리 사회는 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올해 1월5일 교육부 장관은 대통령 업무보고 자리에서 ‘모두를 위한 교육’을 주창했지만, 상대평가 아래에서 모두의 성공은 교육 참사가 되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이 현 수능체제의 참모습이기에 상대평가로는 결코 총구를 거둬들일 수 없다.

벌써부터 준 킬러 문항에 대한 우려가 생겨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킬러 문항 사태의 본질은 우리 사회의 과도한 줄 세우기에서 비롯된 부작용인데, 이러한 문제의식을 놓치면 관련 문제는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당면 과제는 킬러 문항 폐지를 계기로 학생 변별의 올바른 기준을 정립하는 것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목적도 명확히 해야 한다. 수능은 명칭에서 알 수 있듯 대학에서 수학할 수 있는 능력을 변별하는 것이 목적이지, 철저한 학생 비교를 통해 서열을 매기는 것이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선진국 대부분이 상대평가를 활용하지 않는 이유는 학습자 간 비교를 통해 이뤄지는 평가로는 미래 역량도, 미래 인재도 기를 수 없어서다.

이러한 측면에서 최근 홍콩과 프랑스의 대학입시개혁은 배울 바가 많다. 홍콩은 높은 교육열과 입시경쟁으로 인해 1990년대까지 상대평가 기반의 입시 위주 교육을 실시했고, 그만큼 사교육 시장도 발달한 곳이다. 또한 높은 시험점수와 달리 학생들의 학습 흥미도가 아주 낮다는 점도 우리의 교육 생태계와 닮았다. 하지만 2012년부터 대입시험(HKDSE)을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논·서술형 문제를 확대해 주입식·암기식 교육을 벗어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시위가 발생할 만큼 개혁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으나, 멈추지 않았다. 평가체제 개혁이 기존 문제를 극복하고 또 교육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가야만 하는 길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반면 프랑스는 우리와 다른 점이 더 많다. 대학은 평준화돼 있고, 선발시스템도 운영하지 않았다. 최근 프랑스도 대학입시개혁을 통해 선발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절대평가 체제만큼은 견고하게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학생 선발이 반드시 학생 서열화로 이어질 필요가 없음을 확인케 하기 때문이다. 수능 역시 선발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되 지나친 학생 서열화로 귀결할 필요는 없다. 절대평가로도 학생 선발이 충분히 가능함을, 합리적인 대학 입시가 가능함을 두 국가의 사례를 통해 모색할 수 있다.

지금의 킬러 문항 사태를 단순히 킬러 문항 폐지로 끝맺어서는 안 된다. 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대한민국 교육을 정상화하려면 ‘상대평가의 역설’을 극복해야 한다. 아이들을 저격하는 평가를 내려놓고 모두가 살아날 수 있는 평가를 마련하는 것은, 이 시대를 걷는 어른들의 책임이며 우리 교육이 분명 가야 할 길이다. 한시라도 빨리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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