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에 생각한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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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최근 학기를 마감했다.
성적을 집계하고, 학생들의 이의신청을 받는 학사 일정이 7월 첫주까지 이어졌다.
에이(A)에서 에프(F)까지 등급을 놓고 기준점을 매번 고민하는데, 나름 후한 성적에도 학생들은 박하다 여기기 일쑤여서 항의하는 학생들을 일일이 설득해야 한다.
드디어 마스크를 벗어 던진 지난 학기는 그런 학생들의 입을 어떻게 열게 할 것인가로 고심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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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
[크리틱] 강혜승 | 미술사학자·상명대 초빙교수
대학은 최근 학기를 마감했다. 성적을 집계하고, 학생들의 이의신청을 받는 학사 일정이 7월 첫주까지 이어졌다. 학생들도 신경을 곤두세우지만, 교수자 입장에서도 여간 고역이 아니다. 에이(A)에서 에프(F)까지 등급을 놓고 기준점을 매번 고민하는데, 나름 후한 성적에도 학생들은 박하다 여기기 일쑤여서 항의하는 학생들을 일일이 설득해야 한다. 누군가를 실망시킬 수밖에 없는 마무리는 매번 어렵다.
올 1학기를 돌아보면 대학 수업이 비로소 정상 궤도로 진입한 기점이 아니었나 싶다. 코로나19 유행 여파로 한동안 온라인 수업이 진행됐고, 대면 수업으로 전환된 지난해에도 마스크를 의무 착용해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강의실만 들어서면 말을 잃는 학생들은 마스크를 쓰면서 표정까지 잃게 됐다. 팬데믹 3년여 동안 온라인에 익숙해진 학생들은 면대면 상황에서도 스크린 앞에서처럼 무표정을 짓는다.
드디어 마스크를 벗어 던진 지난 학기는 그런 학생들의 입을 어떻게 열게 할 것인가로 고심했던 시간이었다. 개별 발표과제는 대형 강의 특성상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고, 조별 과제는 학생들이 기피했다. 궁리 끝에 강의마다 서술형 논제를 제시하고 각자의 생각을 글로 정리하게 했다. 10분 정도 시간을 주고 발표를 유도했다. 점수와 연계하겠다는 규율 장치도 동원했다. 학생들은 하나둘 손을 들고 제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학생들의 글을 제출받아 검토하다 보니 같은 문장이 여러 글에서 반복되고 있었다. 게다가 수업에서 다룬 맥락을 벗어난 엉뚱한 내용으로, 오답을 여럿이 베껴 쓴 형국이었다. 사정을 묻고 난 뒤 한 학생에게서 “부끄럽고 죄송하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학생은 챗지피티(ChatGPT)를 사용했다고 실토했다. 대화하는 인공지능(AI)에 물어 과제를 대신 해결하도록 했다는 얘기다. 챗지피티가 대신 생각하게 한 셈이다.
마침 수업은 디지털혁명 시대의 예술을 다루고 있었다. 세계를 닮고자 하는 예술은 온통 0과 1이라는 코드로 전환된 오늘을 디지털 매체를 통해 가시화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과거 맨눈으로 보던 한정된 세계는 시청각 전파 매체를 통해 확장된 데 이어 이제는 디지털 코드로 무한증식하고 있다. 가상인지 현실인지 구분 자체가 모호해진 오늘을 다루는 현대미술을 미디어아트로 특정하기도 한다.
오스트리아 출신 페터 바이벨은 미디어아티스트로 손꼽힌다. 올 상반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을 갖던 중 별세한 그의 방대한 작품 가운데 2017년 작 〈YOU:R:CODE〉는 급변하는 매체 환경 속 우리를 환기한다. 스크린 4대와 거울을 통해 코드화된 ‘나’를 관객 스스로 대면하게 한 작품이다. 각각의 스크린은 관객의 안면을 인식해 게놈 코드, 바코드, 소셜미디어 데이터로 전환해 보여준다. 나를 비춘 거울상이 내가 아니듯 여러 형태의 디지털 데이터 역시 실제 나는 아니다.
그런데 현실을 사는 우리는 가상 이미지에 잠식돼 버리곤 한다. 소셜미디어 속 타인의 행복한 이미지를 좇다 현실의 내가 불행해지는 경우는 흔하다. 가상이 현실을 압도한 현상을 보며 실재의 위기를 말하기도 한다. 발전하는 기술을 탓할 수는 없다. 인간이 기술에 발목 잡혀서도 안 된다. 과학기술을 강조할수록 대학교육에서 인문학이 제 역할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판적으로 사고하기를 포기하면 결국 잃는 것은 ‘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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