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학자가 반복해 듣는 방탄소년단 RM의 영어 인터뷰
로버트 파우저 | 언어학자
영어는 한국인들의 학창시절 필수 과목이다. 진학이나 취업을 위해 꼭 배워야 한다. 그런데 영어에 익숙해지는 걸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꼭 해야 한다’는 그 마음이다. 그렇다 보니 사회에 나와서 영어와는 아예 담을 쌓고 지내게 된다.
학교에서 음악이나 미술 또는 운동을 배우지만 누구나 다 대학에서 그 분야 전공을 꿈꾸는 건 아니다. 조금만 익혀도 취미로는 충분히 즐겁다. 취미라고 늘 쉬운 건 아니다. 하지만 어려운 고비를 훨씬 유연하게 넘길 수 있다.
그렇다면 영어도 발상의 전환을 해보면 어떨까. 영어를 꼭 해야 하는 대상이 아닌 취미로 바라본다면 배우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미 한국사회에서 영어에 대한 인식은 달라진 지 오래다. 몇차례 의미있는 시기가 있지만 비교적 최근을 꼽자면 2010년 무렵을 들 수 있다. 세대마다 주도적으로 만들어가는 라이프 스타일이 있게 마련인데 이 시기 젊은이들이 눈길을 준 것은 해외여행이었다. 자연스럽게 자유여행을 위해 영어를 취미처럼 연습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그런 한편으로 국제무대에서는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처럼 전혀 어색함 없는 영어로 활동하는 이들이 자주 노출되기 시작했다. 거기에다 ‘강남스타일’이 인기를 끌면서 해외 매체와 능숙하게 인터뷰하는 싸이의 모습도 자주 볼 수 있게 되면서 영어에 대한 거리감이 확실히 줄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은 영어권에서 오래 활동했거나 해외에서 대학 과정을 마친 이력의 소유자들이어서 어쩐지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경향도 없지 않았다.
영어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뒤바꿔 놓은 이를 꼽자면 나는 2013년 데뷔한 방탄소년단을 들겠다. 세계적으로 그야말로 인기가 폭발하면서 이들이 해외 매체와 인터뷰하는 장면은 더이상 낯설지 않다. 멤버 중 소위 유학파는 한사람도 없다고 했다. 인터뷰에 나서는 건 주로 알엠(RM)인데 그 역시 특별한 영어교육을 받은 경험이 없다고 했다. 미디어를 통한 정보에 의하면 그는 학창 시절 어머니가 사주신, 미국 시트콤 <프렌즈> 디브이디(DVD)를 반복해 들으면서 영어를 배웠다고 한다. 처음에는 자막을 봤지만 반복해서 보다 보니 언젠가부터는 자막을 보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프렌즈>의 밝고 유쾌한 대화를 통해 영어를 접했기 때문인지 RM의 영어는 무척이나 부드럽고, 어렵지 않으며 상대방과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태도가 느껴진다. 나는 그의 영어 인터뷰를 볼 때마다 그가 최고의 학습법을 통해 영어를 익힌 듯해서 무척 흐뭇했다. 확고한 목적의식과 끈기를 가지고 좋아서 하는 것이야말로 외국어 학습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다녀온 일본 삿포로에서의 일이다. 한 시민단체가 홋카이도대학의 무료 영어안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토요일 정해진 시간에 맞춰 나가니 자원봉사자 두명이 반갑게 맞아준다. 이들은 약 90여분 동안 학교 곳곳을 영어로 안내했다. 평소 쓸 기회가 많지 않은 영어를 연습할 수도 있고, 모교와 고향을 외국인들에게 소개할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들의 영어는 간결했지만 소통에 지장이 없었고, 매우 즐거웠다.
영어를 취미로 익히려는 동기는 개인의 영역이다. 누군가의 요구로 그런 동기를 갖게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등산을 좋아한다고 해서 누구나 히말라야를 오를 필요는 없다. 가까운 동네 뒷산을 찾는 것도 즐거운 등산이다. 진학이나 취업을 위한 영어 공부에 좌절했다고 해서 영어를 포기하는 건 어쩐지 아쉽다. 난도 높은 말이 아니어도, 즐거움을 위해 할 수 있는 만큼만, 딱 그 수준의 영어를 즐겁게 익혀 나가는 것이야말로 영어에 가까이 가는 최고의 방법이다. 영어가 아닌 다른 외국어에도 똑같이 적용해볼 이야기다.
나는 가끔 RM의 영어 인터뷰를 찾아 듣는다. 그의 영어를 듣고 있으면 나부터도 무척 기분이 좋아진다. 어쩌면 그의 영어는 수많은 아미들에게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외국어를 즐겁게 배워보고 싶다는 자극과 격려가 돼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언어학자로서 그의 학습 과정이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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