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년 만에 공개된 로마시민상·인간 닮은 그리스신…

이한나 기자(azure@mk.co.kr) 2023. 7. 12. 18:4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
빈미술사박물관서 공수한
그리스·로마 유물 126점
박물관 3층서 4년간 전시
그리스로마실에서 가장 큰 대리석 조각 로마시민상(기원전 1~2세기경) 이한나기자
100년 넘게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됐던, 2m 넘는 남자 조각이 대중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로마시민만 걸칠 수 있던, 수미터에 달하는 모직 천 ‘토고’를 걸치고 막 걸어 나오는듯 하다. 1~2세기경 제작된 이 대리석 조각의 주인공은 로마 황제이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시민으로 추정된다. 제작 당시처럼 대리석 위에 입힌 색이 남아있었더라면 정체 파악이 어렵진 않았을 것이다. 토가로 사회적 지위를 드러낸 때문이다. 황제는 성공적 원정을 기념하는 개선행렬에서 값비싼 보라색 염료로 물들인 토가를, 원로원은 보라색 줄무늬 토가를 입었다.

서양문명의 근간이 되는 그리스·로마 문명을 우리나라 박물관에서도 상설전시로 보게 됐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이 상설전시관 3층에 설치된 ‘고대 그리스·로마실’이다. 세계문화실이 2019년부터 이집트실, 세계도자실, 메소포타미아실 등 세분화해 소개된 4번째 전시다. 빈미술사박물관 유물 126점을 공수해 2027년 5월 30일까지 전시된다.

이번 전시는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란 제목처럼 그리스와 로마 두 문화의 관계성에 초점을 맞췄다. MBN 교양예능 ‘신들의 사생활’과 최근 개봉한 여름 대작 영화 ‘인디아나 존스 5’에서도 볼 수 있듯 그리스·로마 시대는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가 가득하다.

미네르바상 국립중앙박물관
그리스를 계승발전한 로마문화는 서양문명의 근간이다. 고대 신화가 기독교 미술에까지 이어져 염소다리를 하고 성적 욕망을 대변하는 목동의 신 판(파우누스)은 악마의 모델이 됐고, 날개 달린 사랑의 신 에로스(아모르)는 천사 이미지로 차용됐다. 문학과 미술은 물론 책, 영화, 만화와 컴퓨터 게임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고대 그리스 도시 아테나의 수호신인 미네르바 흉상은 긴 머리카락 위에 투구를 머리에 얹은 듯한 모습으로 전략에 능한 전쟁의 여신을 이상적인 미(美)로 표현한다. 그리스 조각가 프락시텔레스의 나체상을 표본으로 만든 베누스상은 완전한 나신이 아니라 욕조에 서 막 나오는 순간을 포착해 인간 신체미 탐구가 절정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언급했던 ‘칼로카가티아(kalokagathia)’의 원리는 아름답다(kalos)와 선하다(agathos)가 합쳐진 단어다. 그리스 청동상은 로마제국 시대 대리석 복제품으로 되살아나 당대 상류층 주택에 장식된 느낌을 살려 전시됐다.

베누스상 국립중앙박물관
그 시절 신화는 인간에게 살아가는 방식을 알려줬다. 오늘날 동네 모퉁이에서 발견할 법한 경고문도 흥미롭다. 2~3세기 로마의 신성한 장소에 설치된 대리석 부조 ‘헤카테의 경고’다.

“이 구역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거나 용변을 보지 않는 자에게는 그녀(헤카테)가 자비로울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 부주의하여 그런 일을 벌인다면 무슨 일을 겪을지 두고 봐야 할 것이다.”

이 라틴어 문구는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교차로에서 저승으로 인도하는 그리스 여신 헤카테가 세 명이 한몸이 되어 뱀 칼을 든 팔 6개로 위협한다. 사람들의 행동을 통제하려는 욕구가 신화의 힘을 빌어 표현됐음을 알게 된다.

헤카테의 경고를 새긴 부조 국립중앙박물관
1부 ‘신화의 세계’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세계관을 소개한다. 2세기경 로마에서 만든 ‘청동 유피테르(제우스) 전신상’과 ‘곤봉을 든 헤르쿨레스(헤라클레스)와 아들 텔레푸스 대리석 전신상’은 그리스를 흡수해 로마 신화가 더욱 다채로워졌음을 보여준다.
에우로페를 납치하는 제우스를 그린 킬릭스 국립중앙박물관
2부 ‘인간의 세상’에서는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이되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로마 조각상에 주목했다. 그리스 두상이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면, 로마는 생생한 묘사를 더했다. 곱슬곱슬한 머리 모양과 처진 눈꺼풀을 조각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초상’이 대표적이다.

3부 ‘그림자의 제국’은 무덤을 장식한 망자 조각들을 통해서 죽음 이후에도 영원히 기억되길 바랐던 고대 그리스·로마인의 사후관을 소개했다. 전시장 한켠에 음악평론가, 배우, 물리학자 등 각계 명사 8인이 전시품 중 한점씩 골라 감상법을 소개한 대목도 흥미롭다. 또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의 ‘Chroma(채도): Ancient Sculpture in Color’기획전에서 다뤘듯 당대 대리석 조각에 색이 입혀졌음을 소개하는 영상도 볼 만하다.

전시는 무료.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초상 국립중앙박물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