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문화강국 자부하긴 이르다
"20여 년 전 베트남에 갔을 땐 하노이 시내에 다니는 차들이 대부분 일본 브랜드였어요. 지금은 베트남 자동차 시장에서 현대차와 기아차가 각각 점유율 1위, 3위를 하고 있잖아요. 그건 문화의 힘이라고 봐요. 한류 붐이 가장 크게 일어난 곳 중 하나가 베트남이니까요."
몇 달 전 진행한 송제용 마포문화재단 대표이사와의 인터뷰에서 크게 공감하며 맞장구쳤던 말이다. 한국의 문화예술 위상이 높아졌음을 해외 곳곳에서 체감했다는 얘기도 들을 수 있다. 실제로 미국 U.S뉴스·와튼스쿨 조사에서 글로벌 한류 열풍으로 한국의 문화적 영향력은 2017년 80개국 가운데 31위에서 지난해 85개국 중 7위로 급등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7~2021년) 한류 확산으로 발생한 생산액은 총 37조원이고, 부가가치는 13조2000억원 유발했다. 한류가 문화콘텐츠 수출뿐 아니라 해외시장에서의 한국 제품 선호도를 높임으로써 소비재 수출에도 기여하는 등 경제적 가치가 상당하다는 게 수치로 나타났다.
한국무역협회 조사를 보면 지난해 한국의 게임·음악 등 콘텐츠 수출 규모는 약 133억달러(약 17조3232억원)로 가전(80억달러)과 섬유제품(123억달러) 수출액을 앞섰다. 하지만 전체 수출액의 절반 이상이 게임에서 발생해 분야별 편중에 따른 한계가 존재한다는 게 무협의 설명이다.
콘텐츠 지원 분야가 편중된 건 정부뿐 아니라 기업도 마찬가지다.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이 다양화하고 있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미술·전시나 클래식 음악에 집중 지원하고 있었다.
한국메세나협회가 최근 공개한 '2022년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현황 조사'에 따르면 미술·전시 분야(약 309억원)와 클래식 음악 분야(약 169억원) 지원은 각각 60.9%, 45.1% 증가했다. 반면 국악·전통예술(약 41억원), 문학(약 27억원), 영상·미디어(약 24억원), 연극(약 23억원), 뮤지컬(약 20억원), 무용(약 7억원) 분야 지원금은 지난해보다 감소했다.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의 경우 콘텐츠보다 공연장·미술관 등 인프라 분야 지원 금액(약 1185억원)이 전체의 60%에 달해 더 큰 아쉬움을 남긴다. 협회는 "문화예술 인프라 확충만큼이나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예술 콘텐츠에 대한 기업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협회는 "연극, 무용, 문학과 같은 순수 예술의 발전 없이 문화콘텐츠 개발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SK그룹은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코리안 아츠 위크' 페스티벌의 전방위 지원에 나서면서 종묘제례악의 일무(佾舞)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서울시무용단의 '원 댄스'를 집중 홍보하고 있다. 전통을 넘어 화려한 색채와 폭발하는 에너지, 절제의 미학이 공존하는 작품이라고 SK는 전했다.
얼마 전 만난 한 대형 뮤지컬 제작사 대표는 "정부가 지원하는 K컬처에 뮤지컬은 없다, 일시적 지원이 아닌 산업 육성책이 필요하다"고 한탄했다. 그의 한탄이 무겁게 느껴지던 와중에 최근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K-뮤지컬 비전 발표회'에서 약속한 내용이 반갑게 다가웠다.
박 장관은 "문화매력국가의 근간인 K컬처 중 뮤지컬은 국내 공연시장의 76% 이상을 차지할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K뮤지컬이 아시아를 넘어 미국, 유럽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민관이 힘을 합쳐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팝과 게임뿐 아니라 그동안 민간의 노력으로 지탱해온 문화예술 분야의 성장을 정부도 알고 있다는 점만으로 다행스럽다. 소외된 문화예술 분야를 챙기겠다고 지역 예술단체에 지원금을 나눠주는 그동안의 방식에서 탈피해 적극적인 육성책이 나올지도 눈여겨볼 일이다.
가상공간에서의 창작 활동이 활발해지고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예술의 정의에 대한 논란이 확대되는 등 문화예술 창작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정부와 기업이 함께 여러 문화예술 분야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읽고 적극적으로 콘텐츠를 발굴·지원해야 진정한 문화강국으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이다. 환경이 바뀐 만큼 지원 방식의 다양화도 강구해야 한다. 한국 문화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아직 보여줄 게 많다. eh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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